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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셨습니까? 히 11장 8-10절

by 최수근 2019. 1. 12.

2018년 12월 30일 주일설교동영상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셨습니까? 히 11장 8-10절]

최수근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당면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삶과 그에 수반된 상황들을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 특히 알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어느 순간 엄습해 오곤 합니다. 불투명한 미래를 어떻게 헤쳐 나가고, 성취해 갈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대해 성경은 답을 제시함으로써 세상에서 닥치는 모든 일을 어떻게 직면할 것인지 가르쳐 줍니다. 성경에는 우리와 똑같은 세상에 살면서 이 가르침을 적용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다수의 인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우뚝 서 있는 위대한 인물들입니다. 이들을 기록한 이유는 이 편지를 받을 많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삶에서 곤경과 난관에 부딪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침체와 절망에 빠진 나머지 그리스도인이 된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었을까?’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곤경과 시련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우리가 믿는 메시지가 과연 참된 걸까?”라고 묻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히브리서는 하나님은 항상 믿음의 원리에 따라 자기 백성을 대해 오셨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111절에서부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면서 위대한 구약의 인물들을 한 사람씩 예로 들며 이들을 보라. 이들의 비결이 무엇인가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매번 믿음이라고 대답합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입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이방 사회에서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그를 불러, 큰 유업을 줄 테니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갈 곳도 알려 주지 않은 채 모든 소유를 챙겨 아내와 함께 믿음으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네게 줄 곳이 있다라고는 하셨지만, 그곳이 어디이며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무모하기도 한 선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삶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미래를 전혀 알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아브라함은 갈 곳이 어디인지 몰랐습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단지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뿐이었습니다. 장차 어찌될지 모르면서도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이나 삶에서 일어나는 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직면하는 방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원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장차 무엇을 얻을까, 무슨 일이 닥칠까,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관점에서만 삶과 미래를 생각하며, 그것을 토대로 움직이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내가 가진 것과 내가 겪는 일만 내내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따른 원리와 정확히 반대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용기이며 삶을 직면하는 방식입니다. 삶 자체와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겪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이미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장래 일을 알 수 있을까 노심초사해 합니다. 그렇게 잘못된 태도는 단지 초조함을 낳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갈 곳을 모르면서도 오직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갈 곳을 몰랐음에도 개의치 않고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오직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누구와 가는지 알고 나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이 힘차게 길을 떠난 것은 하나님이 함께 가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 의 중대한 두 번째 원리입니다. 하나님만 함께 가시면 어디로 가든 상관없습니다.

정녕 하나님이 함께 가신다면 무슨 일이 생기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단순히 여러 가지 원리나 개념을 고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벗이 되었습니다. 우주의 창조자,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사귀며 교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특권입니까? 이런 분이 함께 가신다면 지금 처한 환경과 장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성격은 어떻습니까?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을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하나님은 아브라함아, 네게 줄 곳이 있고 유업이 있으니 나와 함께 가자라고 하셨습니다. 길을 떠나 유업으로 주실 땅에 도착할 때까지 생길 일들에 대해서는 세세히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삶의 절대적 기초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올해 무슨 일이 생기느냐가 아니라 어디에서 영원히 지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정이 아닌 목적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찾아와 널 데려가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디로 데려가겠다고 하셨습니까? “유업으로 받을 땅입니다. 거기 도착할 때까지 생길 일들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일들이 아니라 유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10절 말씀에서 우리는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아브라함은 그 당시 갈대아 제국의 견고하고 웅장한 성들을 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카 롯은 세상의 웅장함, 세상의 부요함을 쫓아갔지만 아브라함은 그보다 더 나은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이 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장차 올 것을 고대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자기 소유가 아닌 땅에서 오랜 세월 동안 믿음으로 살았던 방법입니다. 이처럼 영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여되었다면 아브라함은 주저앉고 말았을 겁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의 여정 가운데 있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요청하십니다. 이 땅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의 시선이 고정되기를 요청하십니다. 이 땅의 것에 목숨 걸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확신이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영광으로 데려가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아는 사실은 하나님이 절대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장차 무슨 일이 생기든 변함없이 하나님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우리가 만나는 어떤 일도 하나님보다 강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전능하시기에 인생길에서 만나는 어떤 일도 그보다 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그는 고향과 조상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모든 소유를 챙겨 아내와 함께 떠났습니다. 그렇게 순종했습니다. 이런 믿음과 승리와 기쁨의 삶, 하나님과 함께 하기에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 삶을 알고 싶다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조건을 지켜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안전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염려를 주저 없이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러면 어떤 시련이 닥쳐도 상관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영원하신 하나님과 동행합시다. 그를 알고 그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일 외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맙시다. 영광의 유업을 소망하면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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