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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장 1-3절

by 최수근 2020. 12. 13.

2020년 12월 6일 주일예배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장 1-3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래하는 말에는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적 반응입니다. 역시 기독교인이라 달랐구나 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부정적 반응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서 왜 그것 밖에 안 되는 거지? 형편없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인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 후자의 반응이 더 많다고 느껴져요. 살면서 믿음의 고백처럼 삶이 따라가지 못하고 믿음 따로 삶 따로 되어질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많은 그리스도인의 고민입니다. 고민이 거듭 되다보면 자기가 제대로 믿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일어나게 되죠. 그런 자기 자신이 용납되지 않아 안타깝게도 교회를 떠나는 이도 있습니다. 

이런 갈등은 두 가지 원인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입니다. 처음부터 상세하게 믿음으로 사는 삶을 안내하며 양육하기보다는 교회 안에서 주님께 다 맡기라”, “성령님이 도와주시도록 기도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 말에는 우리가 잘 몰라도 주님이, 성령님이 알아서 도와주실 거야라는 뉘앙스가 있어요. 그러나 이건 무책임한 일이요, 책임 전가입니다. 주께 맡긴다는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본적인 것들은 감당해야 하는 거죠. 그 일은 온전한 신앙적 지식을 습득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정확히 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와 같은 믿음의 지식이 삶으로 흘러 들어가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야만 이런 갈등이 그치게 될 것인데, 그 믿음의 지식이 삶으로 들어와 적용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초기에 적극적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방치되는 순간에 우리의 신앙은 건강함을 잃고 왜곡되고 말 것입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누누이 권고한 것처럼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야 하고 그 앎을 삶으로 확장해 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교인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구조입니다. 물론 에베소서를 명확하게 둘로 나눌 수는 없지만, 에베소서의 전반부인 3장까지는 교리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나 4장부터는 실천을 이야기하기 시작해요. 그는 언제나 일반적인 원리를 먼저 이야기하고 그 후에 구체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이 과정 없이 많은 사람이 구체적인 일에 뛰어들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사도 바울은 3장까지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이 역사 내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고,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완전히 새로운, 개인을 위한 새로운 삶뿐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를 창조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화목하게 되고 연합하여 우주적인 교회를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 만물이 연합하는 그림입니다. 이것은 다시 오실 주님을 통해서 완전하게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엡 41절에서 그러므로라는 도입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행동으로부터 개인적인 삶을 위한 그래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있습니다. 1-3장 전체의 한 구절 한 구절을 그러므로라는 말로도 연결시킬 수 있고, 3장의 맥락 전체를 그러므로라는 말로도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지식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모습의 명확한 근거, 기준이 되는 겁니다.

41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입은 자들입니다. 교회를 의미하는 에클레시아도 부름을 입은 자들이란 뜻입니다. 어두운 데서 불러냄을 입은 자입니다. 벧전 2:9b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부르심은 사망에서 생명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죄에서 성결로, 어둠에서 빛으로, 분리에서 연합으로의 부르심입니다. 따라서 그런 부르심 앞에선 교회공동체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합당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균형의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응하는 삶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거죠. 믿음과 삶의 균형인 것입니다. 이 균형이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실은 믿음과 삶이 괴리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아는 건 많은데 삶이 따라가지 않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어울린다라는 의미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저 사람이 기독교인일 수 있지라는 말은 그 사람의 삶이 기독교인답지 않다는 거죠. 우리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향기, 그 분의 모습이 보여야 하는 거죠. 나는 과연 부르심을 받은 일에 균형 잡혀 있고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균형잡히지 못하고 이 옷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왜 그럴까요?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어떤 유형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전격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내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불려짐을 당하는 것이죠. 능동적인 것이 아닌 수동적 사건이에요.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그러므로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끌어가는 영적이고 신적이고 힘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계시의 말씀이 필요한 거에요. 

그렇다면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어떤 기준을 말씀하고 있는걸까요?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어요. 이것은 전부 하나님의 영광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분명 이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단지 우리를 지옥에 가지 않게 하거나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서 3장까지의 말씀이 실은 우리들의 삶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요 주님의 몸된 교회로 부르신 거에요. 이 부르심의 일에 어떻게 해야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차원의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4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다섯 가지 성품을 이야기 합니다. 먼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말씀합니다. 

겸손과 온유는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성품이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온유는 마냥 착하기만 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강외유의 모습이죠. 지지만 이기는 것입니다. 온유의 모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겸손과 온유로 행하고, 거기에 오래 참음과 사랑을 더함으로써 서로를 용납하도록 말씀합니다. 겸손 온유 오래참음 사랑 용납으로 우리를 대하셨기에 오늘 우리가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거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심판의 대상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사랑과 용서를 받았어도,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누군가를 용납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그 일로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먼저 참아 내고 사랑함으로 서로 용납하기를 명령하십니다.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하셨습니다. 이 다섯 가지 성품은 우리로 하여금 균형잡히고 조화로운 그리스도인으로 세워갈 뿐만 아니라, 모든 연합을 지속지키는 요소입니다. 교회가 깨어지는 일이 왜 생깁니까? 겸손과 온유가 상실되었고, 오래 참지 않고, 사랑 없이 서로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2절의 말씀은 우리를 하나 됨으로 이끌어가는 힘입니다. 겸손, 온유, 오래참음, 사랑, 용납은 우리가 하나되는데 필요한 기초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어떤 외적인 연합도 실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와 같은 성품을 지님으로써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를 부르심의 목적이 연합에 있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상이 통일되도록 목적하셨습니다.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목적이 그와 같기에 하나님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4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죄악은 분열의 세력입니다. 죄는 언제나 나누고 분리시키며 찢어 쪼갭니다. 그러나 구원의 중심되는 목적은 결합시키고 연합시키고 타락 이전에 누렸던 연합을 회복시키는 데 있습니다. 그것을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셨고, 그 연합을 지켜내도록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3절에서 평안의 매는 줄로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셨는데, 평안, 즉 샬롬은 우리를 하나로 단단히 묶어주는 역할입니다. 이 샬롬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선물이에요. 이 샬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나 자신과 이웃과 모든 것이 원만한 상태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연합의 모습인거죠.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 그 부르심의 목적을 항상 기억하는데 있습니다. 1:4-6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의 거룩함이, 우리의 하나 됨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일임을 늘 기억하여 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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