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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한복음 6장 60-71절

by 최수근 2019. 9. 1.

2019년 9월 1일 주일설교동영상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한복음 660-71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미국의 커버넌트 라이프 처치의 담임 목회자였던 조슈아 해리스가 충격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자신은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간 자신이 주장해왔던 일로 인해 동성애자들에게 사과까지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기독교계를 비롯해 전 세계 많은 그리스도인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많은 젊은이에게 신앙적 영향을 주었던 자가 기독교 신앙을 저버렸으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이 특별한 사건일까요? 기독교계를 뒤흔드는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앙의 길에서 실족하는 이들은 늘 있었습니다. 유명한 목사도, 유명한 신학자도, 기독교 베스트셀러 작가도, 무명의 목회자나 일반 평신도도 걸어가던 신앙의 길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습니다. 누구라고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가 없습니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이 말씀을 귀담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처럼 보이다가도 사람들은 믿음을 내려놓고 왜 떠나갈까요? 참으로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명분을 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대부분 자기중심적인 경향을 띱니다. 자신의 경험과 정보의 범주 내에서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행동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혀 새로운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힘들어하고, 게다가 제대로 된 정보조차도 왜곡되게 수용해서 참된 것을 보지 못하고 거부하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하는 유대인들의 반응이 그와 같습니다 

오랜 시간 진리의 말씀이 고착되고, 교조주의에 덫에 걸려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생명의 떡,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가리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 청중들로부터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군중들은 육체적 필요를 채워 주는 떡에는 많은 홍미를 보였지만 정작 영생을 주는 생명의 떡에는 관심이 없었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살을 먹으라는 말씀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어떻게 자기 살을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갈릴리 군중의 수군거림은 마침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까지 전염되기 시작하면서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제자들의 반응과 예수님을 신뢰하는 열두 제자의 반응으로 나누어졌습니다 

60절 말씀입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예수를 따르던 제자 중 여럿은 생명의 떡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어렵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아마도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지 않고서는 영생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매우 당황해하며 신성모독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씀이 어렵다고 불평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권위 있는 랍비로 여기고서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따라 다녔던 자들입니다. 물론 단순히 병 고침과 기적을 보기 위해 왔던 일반군중들과는 구별되지만, 예수님을 주로 믿고 충성을 맹세한 자들로서의 제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참 제자인지, 그 기준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31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제자가 되고예수님의 말씀에 계속해서 거하는 자들만이 진정으로 내 제자들이라고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60절에서 언급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계속해서 거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 하셨고, 자기 살을 먹고, 자기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을 때 이들은 그것을 절대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당시 유대인으로서는 불편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을 것이지만 그들이 참 제자라면 자신들이 갖고 있던 기준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수용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려워서 알아 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주장이 너무 심해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예수님의 제자로 머물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말씀이 불편한데 어떻게 거기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불평하는 그들을 향해서 6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습니까? 이 말씀이 여러분을 걸려 넘어지게 만들고 있습니까? 이것들이 만일 우리에게서 지속되고 반복될 때 우리를 불신과 의구심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참으로 큰 기적을 목격하였으면서도 믿음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62절의 말씀을 그런 맥락에서 보시면 됩니다. 의심하는 저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께서 그때는 이 사람들이 믿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말씀 하신 걸까요? 처음부터 그들이 갖고 있던 물질적 기대와 선입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더 큰 사건, 예수님의 승천과 같은 놀라운 일에 직면하여서도 그들은 믿지 못할 거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과 같은 사실을 외면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제자들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수를 먹고 마심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우리를 살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군중들과 제자들이 소망했던 떡은 육에 속한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는 무익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적인 것과 이 땅의 것에 꽂혀 살아간다면 둘 중 하나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거나, 자기의 작은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팔거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거짓된 믿음을 파악하시고, 사람들의 정곡을 찌르셨습니다. 64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 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끝까지 말씀이 걸림이 되면 사람들은 믿음을 저버리고 예수님을 떠납니다. 불신은 영구히 감출 수 없습니다. 불신은 마침내 공개적인 배역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66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제자는 언제든지 이탈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이 말씀은 열두 제자를 예수님께서 의심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열두 제자가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 속에서 하신 것입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시기에 제자들은 예수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갈 수가 없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열두 제자들은 대다수의 제자들과 함께 부화뇌동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외에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갖도록 하실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작정 붙어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하나님을 알 때, 예수님을 알 때만이 온전히 믿고 믿음을 지켜갈 수 있습니다. 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틈이 생기면, 그것은 의심일 수도 있고, 불편함일 수도 있고, 자기 기대와 동떨어진 상황에 대한 분노 등으로 인한 크랙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사탄은 교묘하게 파고들어 우리 믿음을 순식간에 사그라들게 하는 것입니다. 조슈아 해리스가 매우 젊은 나이에 커버넌트 라이프 처치의 담임 목회자가 되고, 그 짐의 버거움에 담임목회자 직을 내려놓고 다른 길로 갔을 때 이와 같은 상황들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 서 있습니다. 예수의 사람으로 혹은 마귀의 사람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70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주님이 택하셨지만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반하는 마귀로 전락이 되고 말았습니다. 71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열두 사도는 모두 예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선택한 그룹 내에 믿음과 불신이 공존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선택해서 부르셨지만, 그들에게는 예수님과 함께 있거나 그분을 떠날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오는 자를 절대 쫓아내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누구도 감언으로 회유하고 설득하고 매수하여 남으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그룹에는 항상 믿지 않는 자가 포함될 것이고, 마침내 배신하게 될 자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님 한 분에게만 온전히 의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것이 아닌 무익함이라 말씀하신 육에 마음을 빼앗기면 주님과의 연합은 곧 깨어질 것입니다. 주님과의 연합이 지속되는 일은 요한의 신학에 의하면 아버지가 믿음에 이르는 능력을 주실 때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라도 믿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이 친히 행동하심으로, 우리를 거룩한 처소 삼기 위해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우리는 그와 같은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를 떠나서 어디로 갈 수 있습니까?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는 곳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택하심 가운데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영적인 행함이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고 예수님을 판 자 유다도 될 수 있고, 끊임없이 불평하며 투덜거리다가 떠나가는 제자들도 될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오직 그에게만 영생이 있음을 깨닫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부름받아 헌신하는 참 그리스도의 제자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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