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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자신의 말에 책임지며 삽시다 : 마5장33-37절]

by 최수근 2014. 9. 14.

2014년9월14일 주일설교동영상

[자신의 말에 책임지며 삽시다 : 마5장33-37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맹세를 지키라

하나님은 구약의 여러 말씀을 통해서 맹세는 존중되어야 하며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민수기302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2321네 하나님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무엇보다도 율법에서의 맹세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두려운 이름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맹세한 사람들은 그들의 약속을 조금이라도 깨뜨려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바를 반드시 지켜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음에도 그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하신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맹세하는 일을 엄격히 억제하고, 이것을 엄숙한 경우에만 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랍비들이 가르쳤던 33절의 말씀은 율법의 적절한 종합처럼 보입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맹세에 대한 33절의 말씀에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랍비들은 맹세에 관한 율법들을 단지 거짓맹세를 금하는 것으로만 제한시켜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맹세에 대한 신중함과 사람들이 내뱉은 말에 대한 신실함을 요청하시는 것인데, 유대의 랍비들은 거짓 맹세만 아니라면 쉽게 맹세해도 되는 것처럼, 그래서 사소한 모든 경우에 있어서까지 맹세를 남발하게끔 만들어버렸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맹세에 대한 부담과 구속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합법적인 방법들을 찾아내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맹세와 그것을 지킬 필요성은 중요시 여기지 않고, 단지 사람들이 맹세를 할 때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어떤 표현들을 허용할 수 있을 가에 골몰한 결과,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이나 성전으로 맹세하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은 하나님의 율법을 경시하는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말이 사용되든 상관없이 약속은 하나님 앞에서 구속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맹세와 서원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율법을 연구한다는 자들이 이런 엉뚱한 행동을 하고 말았고, 바리새인들에 의해 이것이 계승 발전되면서 일반유대사회까지 흘러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피조물로 맹세하는 것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고 죄의식 없이도 일상 대화에서 맹세를 남발하였던 것입니다.

맹세하지 말라

예수님은 이 일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셨습니다. 맹세에서 도망갈 구멍을 찾는 이런 경향 자체가 악하고, 참으로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34a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오히려 제자들로 하여금 유대 사회에서 잘못된 맹세의 관습에 따라 맹세를 함부로 남발하지 말라는 말씀이고, 그들의 잘못된 맹세의 관습을 멈추라는 의도이십니다. 율법을 통해서 주신 의도는 맹세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진실함, 신실함에 있는데 형식에 매여 버렸습니다.

34b-37절에서 예수님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맹세의 신실함을 보이기 위해 때로는 하늘을, 때로는 땅을, 때로는 예루살렘을, 때로는 자신의 머리를 걸고 맹세를 했습니다. 맹세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피조물을 두고 맹세했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와 같은 이유로 인해 예수님은 하늘로도, 땅으로도, 예루살렘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들이 맹세에서 하나님을 언급하는 표현과 언급하지 않은 표현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완전히 인위적이라고 보신 겁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유대 사람들의 태도가 얼마나 경솔하고 본질적으로 죄악된 것인가를 지적하시면 그와 같은 헛된 맹세를 금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맹세의 출발점이 자기 의를 드러내는 데 있다 보면 더욱 과장되고 결국 그 맹세가 거짓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성이 높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죄악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1912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오직 너희 말은

이렇게 잘못된 관습에 젖어 있던 제자들을 향해 맹세하지 말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더 이상 말장난하지 말고 진실되게 말할 것을 강력하게 명령하셨습니다. 37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37절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의 이중성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토를 달면서 자기가 마치 할 수 있는 것처럼 얼버무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런 순간이 실은 너무도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장황한 말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나 자주 거짓말쟁이가 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들은 화려하고 많은 데 실제 행동으로 열매를 맺는 것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지금 한국사회가 불신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에 천국 시민들로서 우리의 말은 어떠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참 제자라면 우리의 말이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어떤 맹세 없이도 자신의 진실함을 보여줄 수 있는 신실한 삶의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말에 절제와 말에 신뢰를 얻는 것은 참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일입니다.

진실합니까?

왜 사람들은 맹세를 하거나 약속을 할 때 말을 할 때 뭔가 엄청난 표현으로 시작하고 싶어 하는 유혹을 받는 걸까요? 한 가지 이유는 우리의 단순한 말로는 사람들의 신뢰를 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엄숙하거나 화려하고 대단한 표현을 맹세에 덧붙여서 사람들이 우리를 믿게 만들려 애를 쓰는 것 같습니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헌터라는 사람도 그와 같은 사람들의 속성을 알고 있기에 맹세는 사람들이 거짓말쟁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오늘 무슨 말을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하면 믿게 만들 수 있을 가에 신경 쓰지 말고 어떤 단순한 말 한마디라도 그 속에 진솔함이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심으로 말해야 하고 자신의 말이 진정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옳다 혹은 아니다 라는 꾸밈없는 말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짧은 말로 충분히 의미를 표현할 수 있는데 왜 뭔가를 더해서 쓸데없는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자기들의 하는 말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점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맹세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맹세 자체가 아니라 성실함이 주된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들의 단순한 말이라도 사인한 문서나 계약서처럼 신뢰할 만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땅에는 말을 너무도 쉽게 바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고 하셨는데, 속이기 위해서 어떤 것으로 맹세하는 것은 한 근원 즉 악한 근원인 사탄에게 의지하는 것임을 가리키시는 것입니다. 참된 제자로서 자신을 더 신뢰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 수많은 말보다는 신실한 삶이 우리들의 말의 신빙성을 반복적으로 확증하게 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자신의 정직을 보증하기 위해서 맹세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항상 진리만을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약속을 하거나 누군가에 말을 할 때마다 그리고 맹세를 할 때마다 우리는 그 순간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의 임재를 나타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더욱 진실 되고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벗어나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서 언제나 신실함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배울 때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진실 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지금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고백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무가치한 말을 함으로써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말만 많다는 평가가 이로 인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의 진짜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약속을 지켜야 하고 자신의 말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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