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8일 주일설교동영상
[하나님의 전신갑주(1): 엡 6장 14-15절]
우리나라 오랜 역사에서 비극적인 상황 등을 잘 들여다보면 외부의 위협 앞에서 번번이 나라가 둘로 갈라져 싸웠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쪽은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다른 한쪽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서로 뒤엉켜 싸웁니다. 그렇게 전쟁에 대비할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마침내 온 나라가 전란에 휩싸이곤 했었습니다. 유비무환, 임전무퇴라는 말이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것은 국가적인 일뿐만 아닙니다. 우리 일상에도 깊이 들어와 어떤 상황을 대비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무기력하게 당하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우리의 영적 영역에서도 이런 슬픈 일이 반복되곤 합니다. 너무 쉽게 여겨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 없이 가다가 실족하거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마귀의 간계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단지 우리가 준비하는 것으로만 결코 이겨낼 수 없습니다. 구속사의 그림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참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계속되는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으로 채워주시고, 싸움을 수행할 수 있게 외적인 아이템들을 지원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로서 준비시키는 시스템에 자신을 내어드리고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한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 길에서 출발할 때 갖추어야 하는 필수적인 행동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다른 어떤 새로운 장비를 고안해 내고자 궁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미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것을 얻으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싫어 거부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싸울 수 있도록 준비된 군사가 아니어서입니다.
윌리엄 거널은 이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신 갑주를 밤낮으로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입고서, 걷고 일하고 잠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참 군사가 아닙니다”라고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서술해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선택적인 것이 아닙니다. 필수 아이템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가 임할 영적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적을 바라지만 실력 차가 현격하면 결과는 뻔합니다. 그것을 좁혀서 이기도록 할 수 있는 도움, 즉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엡 6장 14절에서부터 이것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엡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그런즉 서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기 위해서는 굳게 서야 합니다. 정신없이 달려 가면서 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패배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다 장착하고 우리는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많은 분들이 그냥 갑니다. 이 길을 동네 산책길처럼 가볍고 쉽게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만 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쉬운 산책길이 아닙니다. 마귀가 뿌려놓은 수많은 지뢰들이 널려 있는 길입니다. 그것을 안전하게 넘어 이 길 끝에서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서기 위해선 오늘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기기 위해선 우리에게는 거룩한 전략과 전술이 있어야 합니다. 강력한 무기와 안전한 보호장구 등이 있어야 합니다. 불안전한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지 마십시오. 괜찮다고 하는 마귀의 기만전술에 속지 마십시오. 우리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또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 전쟁을 수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항상 영적인 방법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고 입고 있는 자신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결국 복음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적용에 달려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장착해야 할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서 여섯 가지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허리 띠입니다. 여기에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고작 허리 띠가 첫 번째 전신갑주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형제 분들! 벨트 없이 나갔다가 종종 고생한 적들 있지 않습니까? 옷이 자꾸 흘러내립니다. 신경쓰이는 일입니다. 허리 띠는 내가 입고 있는 것을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너풀거리는 것들, 흘러내리는 것들을 단단히 고정시켜 줍니다. 거추장 스러운 상태에서 어떻게 전투를 치를 수 있겠어요. 그런 점에서 허리에 띠를 띤다는 것은 행동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허리띠는 단순히 가죽이나 천으로 만들어진 띠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우리 자신을 고정하라는 것입니다. 진리로 우리 삶의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묶어내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허리에 띠를 띠어야 할 진리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붙잡아 주는 진리는 세상적인 진리가 아닌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여러분은 기독교 진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고,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많은 이들이 진리를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기독교 진리의 중심에는, 아니 진리 그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자신을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어주신 구원의 진리와 함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 넘치는 진리가 우리를 붙잡아주고 흔들리지 않도록 띠를 띠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잘못된 진리를 붙잡고 있어서입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가짜 진리를 두르고 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 처음 교회가 세워진 이래로 기독교 안에는 유사기독교, 사이비, 이단 등 수많은 가짜 진리들이 판을 쳐왔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아예 진리를 몰라서입니다. 그러니 항상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렇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행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 말씀 속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누리는 구원은 오직 은혜로 이루어졌지만, 어린아이 신앙에서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러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며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기독교 진리를 배워가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깊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힘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성실할 때 우리는 온전한 진리로 허리 띠를 띠는 것입니다.
거저 가려고 하니까 다 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심은대로 거두게 된다고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의의 호심경, 즉 흉배입니다. 흉배는 병사의 상체를 보호해주는 장비의 역할을 합니다. 미쳐 막아내지 못한 적의 공격으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여기 의는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의 의로움으로 보호하라는 것입니까? 우리의 의는 완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불완전합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상대 마귀는 참소자입니다. 마귀는 성도들의 죄를 끊임없이 들추어내고, 생각나게 하고, 괴롭히는 악당입니다. 그러니 만약 마귀 앞에 자신의 의의 흉배를 하고 선다면 마귀에게 바로 농락당하고 말 것입니다. 우쭐 해하는 우리에게 우리의 의보다 더 멋져 보이고 완성도 높은 의를 우리 앞에 내어놓으면 우리는 그냥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거기에 살짝 숨겨져 있던 과거의 죄를 하나둘 들추어내고 정죄하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의의 흉배는 우리의 것이 아닌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의 흉배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간의 요소가 아닌 신적 요소입니다. 그러기에 이 의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후 5:21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새로운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의로 인해 의롭다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귀가 우리를 더는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는 자가 되어서입니다. 마귀가 들추어내는 모든 것을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마귀의 정죄함 앞에 있습니까?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나님의 의의 흉배가 있음을 확인하십시오.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마귀의 정죄함 앞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열심과 헌신은 있었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율법적인 의를 내세웠습니다. 그렇게 종교적으로 완벽하였지만, 주님은 그들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신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할 수 없는 행위를 내세워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여서입니다. 이렇게 마귀는 계속해서 인간의 완전함을 추구하도록 공작을 펼칩니다. 그래야 인간을 쉽게 공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 의를 믿고 있다가 우리는 마귀의 공격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의의 흉배를 확인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매일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 안에 온전하게 서 있는가 점검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고 그 은혜 앞에 항상 감사함으로 살고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 어떤 정죄함도 없습니다. 그것을 다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의의 흉배는 내가 분명하게 진리의 허리 띠를 띠고 있다면 당연하게 따라올 수 있는 갑주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신발입니다. 달리 말하면 군화입니다. 군화는 전투에 신속하고 안전하게 임할 수 있도록 발을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전쟁 중에 미끄러지거나 넘어진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의 발이 균형을 잡고 민첩하게 움직일 때 전투 수행이 수월할 수 있습니다. 군인에게 신은 그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제품을 신어야 할까요?
엡 6장 15절에서 신발을 이야기할 때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라고 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 말씀을 보면 핵심 키워드는 복음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복음으로 신을 신으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신발 삼는 일은 진리의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입은 자는 당연하게 이어지는 순서입니다. 이들은 복음의 신발을 신고 갈 수 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것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복음의 신발을 신을 수 있습니까? 만약 신었다고 한다면 가짜입니다. 짝퉁인 거죠. 이단과 사이비는 가짜 신을 신고 날뛰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없이 말입니다.
복음은 인간을 구원하시고 인간이 잃어버린 샬롬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래서 평안의 복음입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샬롬이, 나와 너의 샬롬이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서 말씀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우리는 영적인 전투를 위해 우리가 안전하고도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신을 신어야 하는데, 그 역할이 복음이 해주는 것입니다. “신을 신는다”는 것은 확신과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안일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깨어 있고” “강하고” “서고” 남자답게 처신하기 위해 불렸습니다. 마귀의 공격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마귀가 공격해 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얘기치 못한 모든 공격으로부터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세 번째 갑주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마귀의 간계와 정사와 권세와 이 모든 악마 같은 교묘함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리소스들로서는 결코 막아낼 수 없습니다. 하늘의 것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허리 띠를 두르십시오.
의의 흉배를 장착하십시오.
복음의 신을 신으십시오.
우리의 영적 싸움이 우리를 위하여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무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승리의 열매와 혜택을 만끽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갑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이것만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우리를 지켜내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힘의 능력으로 공격본능을 갖추고 전신 갑주를 입음으로써 마귀와 정사와 권세에 대한 우리의 싸움에서 철벽 방어본능을 갖출 때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이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승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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