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5일 주일예배설교원문
[하나님의 전신 갑주(2): 엡 6장 16-17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오늘 우리는 76주년 광복절을 맞았습니다. 36년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기쁜 날입니다. 매년 광복절을 기념하고 있지만, 우리가 지난 76년간 진정한 광복을 이루었을까요? 일본제국의 패망 이후 해방을 맞았지만, 주권 독립이 준비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815해방 이후 해방의 기쁨은 잠시뿐이었습니다. 극심한 혼돈이 나라를 덮었습니다. 종전 이후 열강의 판짜기가 우리의 소원처럼 흐르지 않아 갈등이 증폭되고, 남북이 나뉘고, 수없는 비극적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
극도로 혼란한 시기, 차분히 나라가 하나 되어 부국강병을 위한 마음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일제 강점 시기보다 더 많은 국민이 죽었던 전쟁으로 나라는 초토화되었고, 이어지는 독재자들의 폭정에 신음해야만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지난 시간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뤄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물론 민주화의 시기를 지나 좋은 세상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사회 저변에 여전히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외부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외세에 대하여 우리의 소리를 마음껏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외세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니 사방에서 함부로 공격하고 말하고 흔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그 어떤 세력이라도 독자적으로 막아 낼 힘이 없으면, 의존하게 되고, 예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기도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와중에도 지속되고 있는 열강들의 패권 싸움의 와중에서 우리나라가 이제 지금까지 내부에서의 지루한 모든 소모전을 끝내고 하나가 되어서, 진정 해방된 민족과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한 걸음을 뗄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불편함이 없습니다. 배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지 못한다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즉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예외 없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보이는 것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과의 영적 싸움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된 것 같고, 악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 같은데, 여전히 많은 이들이 마귀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저들 세력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러니 대적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만당하고 끌려다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불쌍한 것은 그렇게 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간계입니다.
아직 우리에게서 영적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이 싸움에 이기는 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억압과 종속이 아닌 해방과 자유의 시간을 누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그분의 능력으로 채워지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해야만 합니다. 엡 6:10-11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고 있지만, 그 은혜 안에서 우리에게 준비해주신 것들로 자신을 채워가는 능동적 신앙의 모습이 절실할 때입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한 우리 믿음의 응답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삶입니다. ‘믿사오니’라고 외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무능함이 아닙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하나님의 전신 갑주의 아이템 세 가지는 몸에 장착되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허리에 두른 진리의 허리띠, 가슴을 보호하는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신이 그렇습니다. 이 세 가지 위에 다른 세 가지를 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귀찮아하고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전쟁은 끝입니다. 이기기 위해선 무장해야만 합니다. 거기에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의 네 번째 아이템은 “믿음의 방패”입니다. 엡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했습니다. “믿음의 방패”가 다른 전신 갑주 아이템보다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앞에서 말하고 있는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신과 더불어 나머지 세 가지, 즉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을 취하라는 말씀입니다. 여섯 가지의 아이템이 전신 갑주로서 필수 아이템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고 이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방패는 가로 1.2미터, 세로 0.75미터에 달하는 긴 직사각형으로 전신을 가릴 수 있는 장비입니다. 라틴어로 “스쿠툼”(scutum)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원거리에서 적이 쏘는 불화살을 막기 위해 고안한 장비입니다. 전쟁 영화를 보면 성에서 불화살을 쏘면 접근하던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장면들이 있어요. 그때 스쿠툼이 불화살로부터 안전하게 병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300이라는 영화에서도 보면 페르시아군이 엄청난 양의 화살을 쏠 때 스파르타 군대는 방패로 함께 뭉쳐 방패 뒤에 몸을 숨겨 수많은 화살을 막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아온 화살이었어요.
이런 쓰임새를 생각하면서 바울은 말합니다.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여기에서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마귀는 참소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무너질 수 있도록 정죄하고 이간질하고 자존감이 무너지도록 공격합니다. 현대적인 의미로 말하면 악성 댓글과 같은 공격입니다. 그와 함께 의심, 불순종, 악의, 두려움 등 그리스도인들을 흔들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하여 불화살을 날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불화살이 날라와 마음에 꽂히면, 그 음해에 시달리다가 우울증에 빠지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습니다.
이렇게 마귀가 수없이 날리는 불화살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는 세상에 단 하나 “믿음의 방패” 뿐입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 의심이 싹트고, 의기소침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게 합니다. 시험의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잠언 30: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불변하신 사랑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시어서 적의 모든 불화살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는 겁니다.
다섯 번째 아이템은 구원의 투구입니다.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구원의 투구란 무엇일까요? 구원을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 부분을 보호하는 투구와 관련하여 비유한 것은 성도의 영적 안전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구원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머리를 감싸주는 투구로서의 역할을 구원이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때 교회에 집착했다가 모든 일이 보람이 없다고 느끼고 포기한 사람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이런 일은 예외 없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비극입니다. 어떤 이는 목숨까지 내어놓으며 믿음의 길에 당당히 서 있는 반면에 어떤 이는 쉽게 그 길을 버릴 수 있는 걸까요?
초대교회 안에도 후자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복음을 듣고 이를 믿었고,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잠시 동안 그들은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믿음 안에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박해의 상황이 닥쳐옵니다. 다시 오신다고 하시는 주님의 재림의 징조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의심이 일어나고 결국 과거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처음에는 뭔가를 기대하며 기독교에 입문했다가 기대와는 달리 삶의 어려움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마귀의 은근한 소리 “봐라! 기독교 뭐 별거 없잖느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렇게 보다 보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보다 모든 것이 더 악화 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것은 구원에 대한 확신, 구원의 소망, 구원의 기쁨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예상보다 많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니 확신에서 나오는 구원의 소망도 구원의 기쁨도 없는 거죠. 이런 상황이라면 마귀에게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올 때 구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과 그로 인한 기쁨이 없으면 쉽게 흔들리게 되는 겁니다. 계속 이 길을 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를 붙잡아 주는 힘이 없어서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어떻게 구원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이 확신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상황 가운데 있어도 구원받은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 대한 확신과 거기로부터 나오는 기쁨이 있을 때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구원의 투구를 취해 써야 합니다.
여섯 번째 전신 갑주의 장비는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다른 다섯 가지 아이템은 주로 우리 자신을 지켜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검은 공격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검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은 갖고 계십니까? 성경책이 검이 아닙니다. 기록된 그 말씀이 나의 입술을 통해 선포될 때 하나님의 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무장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적재적소에 말씀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무기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다른 말씀으로 시험을 이겨내지 않으셨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일일이 인용하심으로써 마귀를 대적하셨습니다.
여러분을 다양하게 공격해오는 마귀를 이겨내기 위해 수많은 말씀의 검을 장착하고 계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라고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잘 모릅니다. 진리의 말씀을 통해 큰 구원의 계획도 알아가야 하고,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 판에 새기고 입술에 담아서 그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에게 어떤 기적들이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기대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평화 시대를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수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필히 무장해야만 합니다. 이 일에 귀찮아하지 마십시오.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안심하라고 무장을 풀라고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향해 기만전술을 사용할 것입니다. 세계사를 보면 준비되지 못해 엄청난 희생을 보는 일들이 넘쳐납니다. 1941년 독소 전쟁에서도 히틀러는 스탈린과 맺은 불가침조약을 어기고 소련을 침공했습니다.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믿고 있다가 천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지난 20년간 아프카니스탄 정부는 외세의 세력에 의존하다가 다시 나라가 탈레반에 의해 점령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끊임없이 무장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역사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허무하게 망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그와 같은 일들이 허다함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이미 십자가로 인해 패전하였음에도 성도들을 기만하고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자기 수하로 삼으려 합니다. 우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냥 쉽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십시오. 물론 대형교회들이 교회 내의 분쟁으로 문제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광성교회, 명성교회, 사랑의 교회, 서울교회 등이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각성 되고 무장되지 못한다면 어느 교회, 어느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일어날 일들입니다. 우리는 괜찮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동일하게 작은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어서입니다. 이건 교회가 아닙니다. 사탄의 놀이터가 된 듯합니다.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있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거짓된 종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들은 주로 종교권력을 휘두릅니다. 이 권력에 휘둘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새로운 속박의 사슬 아래 놓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지 인간의 종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해야만 합니다. 진리가 나를 붙잡아 주고, 그리스도의 의가 죄 된 나를 감싸주고, 복음이 우리를 지지해주고, 믿음과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히 사탄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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