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2일 주일예배설교원고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엡 6장 18-20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영화 아이언맨을 보면 아이언맨 슈트 조각들이 날라와서 몸에 장착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주섬주섬 주워입는 게 아닙니다. 완전 자동입니다. 여기에서 업그레이드된 아이언맨 슈트는 더 대단합니다. 버튼을 누르면 나노 슈트가 온몸을 순식간에 감싸주어 천하무적이 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는 장면이 이와 같으리라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의 전신 갑주! 외치면 순간 척척, 장착되면서 우리 몸을 감싸 완벽하게 보호해주는 걸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전신 갑주가 기계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서의 무장은 우리가 항상 어느 때든지 하나님과 생생한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힘과 능력을 얻지 못한다면 이 모든 아이템이 그 자체로서는 우리에게 전혀 안전과 전쟁 수행 능력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전체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특별히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라는 마지막 부분에서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과 일상적인 신앙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호흡과도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아가 영적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하는 호흡입니다. 이 호흡을 멈추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명도 멈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전 5:17에서 말씀하죠.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가 우리의 생명을 이어가고 기도의 힘이 모든 영적 전투에 스며들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바울은 항상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표시입니다. 그와 같은 의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로써 표현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최후의 시금석은 우리가 이 기도에 바치는 시간의 양이 얼마인가에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수시로 기도하셨습니다. E.M.바운즈는 “시간은 기도에 투자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점에서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이자 의무이상입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을 향한 다양한 기도의 루트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우리의 기도는 여러 다양한 형태를 취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형식,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만을 기도라고 고집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어려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자꾸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니까 거기 표준에 미치지 못하면 기도를 하지 않게 되는 거죠. 모든 정형화된 것들은 처음 그것을 대하는 이들에게는 낯설고 힘든 겁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거대한 전쟁 중인데 그렇게 의전과 형식에 신경 쓸 수 있습니까? 자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우리는 기도의 문을 열어야만 합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통신선이 열려야 생명선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 연결선을 통해 먼저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안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다른 것에 신경을 쓰다가 이 중요한 일을 끝내 이루지 못하면 우리가 아무리 거창하게 시작했어도 용두사미 꼴 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라고 하지만 이것에 방점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기도되게 하는 것은 다양한 형식과 형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기도되게 만드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런 이유로 바울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와 간구는 항상 성령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항상입니다. 우리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하는 것은 말씀드렸던 것처럼 성령님만이 우리 안에서 기도를 주장하시고 조성하시며,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간구하는 힘을 제공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따라서 우리가 “성령 안에” 있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붙들 수 없습니다. 형식적인 기도나 기도문을 단순히 읽는 것은 “하나님을 붙드는” 방법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 거하는 것은 기도의 가장 중요한 근본 요소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님께 붙들리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지식에 빛을 비추시고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고, 자유로이 말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도록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령 안에서 기도하게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마귀를 대적할 뿐만 아니라 항상 이기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사도 바울은 언제나 어디서든지 평생토록 계속해서 기도할 것을 명합니다.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기를 항상 힘써야 합니다. 고통 가운데 있을 때뿐만 아니라, 일이 잘못되어 갈 때뿐 아니라 잘되고 있을 때도, 언제든지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귀는 번번이 우리를 영적인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들죠. 느슨하게 만듭니다. 이것에 우리는 맞서야 합니다. 우리는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하고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밀리다가 지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깨어 있을 것에 대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마다 거듭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기치 않은 때에 다시 오리라는 것과 예상치 못한 때에 시험에 들 것에 대비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마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하기에 예수님은 같은 경고를 계속 반복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훈계를 사도들도 반복하고 확대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깨어 있어 경계를 결코 늦추어서는 안 되는 것은 마귀가 언제나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고 있어서입니다. 땅에서는 거짓 교사들이 사나운 이리처럼 다니고 있으니 그들을 경계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시든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기도해야 할 때 자꾸 잠자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깨어 있을 것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촉구하셨지만, 그들은 그 명령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마 26:40b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사도들은 바로 이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참한 불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모두 도망쳤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깨어 있지 못하면 비슷한 실패로 인해 비슷한 불충에 빠지고 맙니다.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지 못하면 약하고 무기력에 빠져 악의 강한 힘에 맞설 수 없어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를 대적하고자 우리의 힘을 새롭게 하는 것은 기도로써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 영적 시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인내로서 견디며 그래서 기도하기를 멈추거나 쉬지 말아야 합니다. 멈추는 이유는 대부분 낙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기도하면서 낙망하지 말아야 이 기도가 지속될 것입니다.
바울은 18절 마지막 부분에서 매우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로부터 출발을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서신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그들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뿐 아니라 다른 성도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강조하고 있는걸까요? 그것은 우리 모두가 동일한 싸움에 참여하고 있어서입니다. 우리 모두 동일한 적과 대항하고 있으며 똑같은 문제들과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항상 문제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방법으로 보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문제들, 나의 어려움들, 나의 두려움들, 나의 희망 등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결과는 자기중심적이며 스스로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에게 일어나는 사건이나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것이라기보다는 아주 거대한 왕국의 전투에서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마지막 부분에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할 것을 이야기하면서 그 성도 가운데 한 사람인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엡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우리는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 일에 앞장 서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림으로써 어두움의 권세 아래 갇혀 있던 이들이 깨어나 그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도록 말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한 사람이 싸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바울을 이를 통해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고 이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꿈꾸는 것입니다.
예수생명교회를 세워 주신지 곧 10년이 됩니다. 지난 시간 저는 복음을 담대히 알리고자 애써 왔습니다. 그 일을 담대히 행하고 마지막 복음을 전하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가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은 저를 위해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이 땅의 것을 추구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이곳에 이루어지기를 꿈꾸며 강력하게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은 때때로 기도합니다. 약간의 기도를 합니다. 조금 힘써서 그것도 자기만을 위해 기도합니다. 형식적이고 해야만 하기에 그냥 습관처럼 하는 그래서 전심으로 언제나 행하지 못하는 기도로서는 하나님과 진중한 교제 안에 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변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간’ 이라는 말을 ‘모든’으로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힘써서 기도하고, 모든 성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의 새로운 차원을 맞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기고 나갈 수 있고 하나님 자녀 다움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하지만 나아가 모든 갑주의 부분이 기도로 무장 되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합시다. 깨어 기도합시다.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기며 나아가 온 땅에 복음이 담대하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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