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6일 주일설교동영상
[그리스도의 양입니까? 요 10장 22-29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사람들은 자기가 선호하고 옳게 여기는 것만 들으려고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자기의 틀 속에 갇혀 듣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들어야 할 것을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가장 종교적이고 거룩하다고 스스로 여기는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구원자가 나타났다는 어떠한 징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가운데 다수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간주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거룩한 전승이 요구하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말과 행동으로 종교지도자들의 신경을 건드리며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니 계속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련의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하는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말씀이 배경이 수전절이라고 했는데, 수전절은 주전 164년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폭정에 맞서 유다 마카비가 성전을 회복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렇듯이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에 맞서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고 말씀할 것 같으면서도 그들의 구미에 맞는 선포를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24절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메시아인가에 대한 공개적이고도 분명한 언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의심할 바 없이 예수님의 대답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닐 경우 예수를 정죄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면 밝히 말씀하소서”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진리의 소리를 들을 준비가 불행하게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셨지만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2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과 행위들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힌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불 신앙입니다. 들어도 그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표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기대한 것과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그들의 수준에서 규정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신앙인들이 범하는 잘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조정하려고 합니다. 자기 구미에 맞는 은혜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셨지만 자기 기대에 맞지 않으면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물을 주셨지만 흘려버립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확실하게 보여 주십시오.” 그러니 계속 겉돌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적 태도입니다. 우리를 불신의 깊은 늪에 빠지게 만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들의 불신적 태도에 대해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6절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양인 자들만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른 양들은 그의 음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따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입니까? 오늘 믿음의 선상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진정 예수님의 양인가를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양일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의 문이시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우리의 생명이 보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저 자신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주님께 “넌 나의 양이다” 라고 확신을 주는 양인가를 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들은 내 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의 양인지를 확신케 하는 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신 주님께 속한 양의 조건을 보아야만 합니다. 그것은 나의 기대가 아닌 주님의 기대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27절에서 그리스도의 양이라면 갖고 있어야 할 조건들을 말씀하셨습니다.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첫째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 분의 말씀에 익숙해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이 부르심을 경청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나는 그들을 알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0장 14절에서는 그와 함께 양들은 목자를 알며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아시듯이 우리도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알기 위해선 그 분에 대한 학습이 필요합니다. 정확한 믿음의 정보가 입력되어야만 합니다. 거짓된 정보로 인해 우리의 신앙이 왜곡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셋째로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앎으로써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따라야만 합니다. 참으로 순종하는 자가 믿는 자인 것입니다. 실은 주님을 신뢰할 때에 나의 것을 드릴 수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주를 알고 따르는 예수님께 속한 양에 대해 주시는 축복이 놀라운 것입니다. 28절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첫 번째 선물은 영생입니다.
믿는 자는 누구나 살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새 생명이 그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들은 더 이상 악한 자의 권세 아래 있는 이 덧없는 ‘세상’의 일부가 아니므로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것입니다.
두 번째 선물은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도록 우리를 견고하게 붙잡고 가시는 것입니다. ‘양 떼’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것이며 아버지는 아들이 그 양 떼를 보호하는 일을 후원해 주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배후에 있는 참된 능력은 아버지이십니다. 양의 보존자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반대와 파괴의 세력들은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 아버지의 두렵고 무한하신 능력과 대결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한 안전장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 아버지보다 더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29절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불신이라는 신비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간의 불신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비하심이 있기에 우리가 거기에 손들고 나올 수 있었고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우리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의 메시지를 온 세상 사람들과 나누는 일에 헌신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위임받은 자들입니다. 이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여 너는 나의 양이라는 선포와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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