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0일 주일설교동영상
[포도나무와 가지: 요 15장 1-8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포도나무입니다. 이사야 5장 1-7절에서 이사야도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포도원에 심은 포도나무로 노래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포도원의 굳은 땅을 갈아엎고, 그 속에서 거친 돌을 골라내고, 포도밭을 잘 정지하여 그곳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시는 농부이십니다. 포도나무를 위해 수고하신 하나님은 극상품의 포도나무이기에 좋은 포도 맺기를 기대했습니다.
또 예레미야 2장 21절에서도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이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좋은 열매 맺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고 성실하게 보살폈지만 들포도가 맺히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순전한 종자인 포도나무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로 전락 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의 열매가 없고, 오히려 그들 속에 불의와 불신앙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사야 5장 4절-6절에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은 그들을 향한 심판밖에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수고한 포도원이었지만 심판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주변의 강대국들의 먹잇감으로 전락 되어 짓밟히고, 뿌리째 뽑히며 많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철저하게 파괴된 이후 다시금 ‘하나님의 포도나무’의 구원과 회복을 위한 기도가 울려 퍼지는 곳이 바로 시편 80편입니다.
시인은 시편 80:12-15절에서 호소합니다. “12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 숲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시인은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그렇게 애지중지 가꾸신 포도원의 담을 허물고, 포도나무를 황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참으로 아프셨을 것입니다.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의 문제는 열매였습니다. 극상품의 포도나무였기에 좋은 포도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들포도가 맺혔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치는 그 열매에 있는데, 효용 가치가 없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렇게 성실하신 농부이신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셨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였을까요? 당연히 좋은 열매가 맺혀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그들 안에 꽈리를 틀고 있었던 불신앙으로부터 야기된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삶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꾸준히 자신들이 뭔가를 해보려고 했지만, 그들이 주도하는 모든 것은 헛된 결과로 귀결될 뿐이었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그들이 성취하도록 부름을 받은 역할, 곧 ‘이방의 빛’(사 49:6)이 되고 하나님의 구원을 ‘땅끝까지’ 이르게 하는 데서 하나님을 실망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열방에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동시에 일어난 것인데 그들은 그들만의 유익 속에 함몰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점점 그들은 선택하심의 자리로부터 멀어져갔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에스겔 15장에서는 쓸모없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그들이 불태워짐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이 포도나무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이 심으신 포도나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회복되어 다시금 풍성함의 열매가 맺히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자기들이 여전히 포도나무라고 믿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더는 너희는 포도나무가 아니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요 15장 1절에서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말씀하셨고, 15장 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은 충격적인 선포였습니다.
“너희는 가지라” 너희는 포도나무가 아니고 가지라는 선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에게 더는 스스로 이루어갈 수 있는, 그래서 열매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제로라는 것입니다. 오직 그들의 정체성과 사명이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선민의식 속에 있던 저들에게는 매우 급진적인 변화였습니다.
실은 성경의 이야기가 이것을 향해 진행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선택하시고 함께 가시기를 원하셨지만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마음, 주체가 되려고 하는 교만으로 인하여 인간들은 점점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자신의 왕국을 세워가려고 했지만 언제나 그 끝은 파국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들은 자기 인생의 주인 되기를 꿈꿉니다. 홀로서지 못하는 이를 저 평가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예속되는 것을 불편해합니다. 그래서 독립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독립하려고 하는 인간을 향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지라” “너희는 가지일 뿐이야!” 이 말씀은 우리 인간 안에 주인 되고자 하는 마음을 꺾어 버리시는 선포입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주장한다 해도 우리는 포도나무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가지 됨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낱 가지인 우리가 독립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화병 속에 꽂혀 잠깐 연명할 수는 있겠지만, 가지의 모체이자 생명의 근원인 포도나무로부터 떨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의 기운이 단절되어 시간이 지나 말라비틀어질 것입니다. 가지는 언제나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단지 가지일 뿐이라는 정체성의 비참함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요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관계에 대한 설정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설정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우리 믿음은 관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믿노라고 하면서 예수님 안에 있지 않으면, 다시 말해 내 삶의 목자 되시는 주님의 목양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공허한 것입니다. 말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노라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 삶의 주인 된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드리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계획과 자기 기호가 먼저 고려됩니다. 자신의 열심만으로도 대단한 것들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물론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외침일뿐입니다. 그러면서 그 결과를 하나님께서 보장해주시지 않으실 때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평하곤 합니다.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역사를 통해 반복했던 불신앙의 싸이클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들도 그들의 열심으로인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에 대해 2절에서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제자 공동체 내에는 자기가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주장해도 죽은 가지임이 드러나는 상황도 올 것입니다. 시작은 제대로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각자 자신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벧후 2: 10) 하지 못하면 결국은 거짓됨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말입니다. 결국 그렇게 열매맺지 못한 가지는 베어져 불태워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직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안에 거함으로써 만이 우리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님은 극단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게 예수님과의 결속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열매를 맺고, 그 열매 맺음은 기도 응답의 조건이 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과실을 맺는 데 의미와 목표가 있습니다. 과실을 맺는다는 것은 주님과의 연합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와 함께 제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관계를 거부할 때 우리는 결국 쓸모없는 가지처럼 버려져 불에 태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거하여 가지로서 충실하게 서 있을 때, 주님의 능력 안에 거할 때 우리에게 풍성한 열매가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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