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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출 15:22-26

by 최수근 2024. 3. 10.

2024년 1월 7일 주일예배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15:22-26]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요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광기의 시대처럼 여겨집니다. 사람들의 분노 게이지가 한계치를 넘어선 것 같습니다. 이 상태로 지속되다가는 큰일이 나도 정말 큰일이 날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 사람이 진단해보고 처방을 내리지만, 백약이 무효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집단을 넘어 개인의 삶도 위기입니다. 연말에 나온 수치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습니다. 뭔가 얹힌 듯한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어요.

참으로 전방위적인 처방과 치료가 필요하지만, 엉터리 약만 투여할 뿐이지 올바른 진단에 따른 처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제대로 이런 일을 해결해갈 만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아 더욱 마음만 무거울 뿐입니다.

개인의 삶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를 새롭게 하고 회복시켜가는 일도 그렇게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그러니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은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지난 한 해 못했다면 새해 그 일을 해내야 합니다. 병들어 있는 영역들을 하나하나 치료하다 보면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치료가 과연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일까요? 우리는 애굽을 떠나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에 기근을 피해 들어가 거주한 지 400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은 거대한 민족으로 세가 늘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이방의 문화 속에서 그들의 정체성은 상실되었고, 노예 민족으로 전락하여 애굽의 권력에 종속되어 살아왔기에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출애굽 했지만, 광야에서 어려움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종살이했던 그 자리를 동경했던 모습에서 얼마나 그 습성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실은 이들이 병들어 있던 거죠. 치료가 필요했고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은 출애굽 하여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경험하고 약속의 땅을 향한 걸음을 지속했습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애굽의 군대를 수장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이시기에 이들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전망과는 달리 이들 앞에 어려운 일이 닥쳐왔습니다.

15: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변 길인 왕의 길로 인도하셨더라면 쉽게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길에서 돌이켜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14: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실 일이 있었던 겁니다. 그들을 예배공동체로 새롭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이 갖고 있었던 모든 병약한 면들이 다 드러나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광야 길에 들어섰는데 바로 시험이 닥쳐왔죠.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사흘 동안 물을 공급받지 못했으니 얼마나 목이 말랐겠습니까? 그런 그들 앞에 물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너도나도 물을 마셨다가 인상을 쓰고 뱉어내고 말았습니다.

15: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곳 이름이 마라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쓰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이들의 내면의 병이 바로 드러납니다. 특히 내적인 질병을 악화시키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망입니다.

15: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물론 그 당시에 백성들의 걱정은 극에 달하였을 겁니다. 마시기에 적당하지 못한 물이 있 는 데로 인도되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된 사실이 그들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제 모세가 할 일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그건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응급처치할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셨습니다. 가리키기만 하셨는데, 모세는 그 나무를 물에 던졌습니다. 가지를 꺾어 던졌는지, 아니면 나무 전체를 뽑아 던졌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만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서 생각합니다. 나무가 효능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모세가 순종했기에 물이 달게 된 건지 여러 생각들을 갖습니다. 그러나 퍼포먼스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나무도 순종도 그 물을 달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치료하여 주신 거죠. 쓴 물이 단물이 되도록, 본래 맛있는 물로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쓴 물을 단물로 치유해주신 하나님께서 바로 그들을 시험하셨습니다. “거기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왜 그들을 시험하셨을까요? 그들을 보시겠다는 의도이십니다. 정확히 말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도와 율례를 저들이 과연 어떻게 대할지를 살펴보시겠다는 것입니다.

갈증의 고통이 만족스러운 공급으로 변한 바로 그 지점이 하나님의 기대를 확립하고 선택권을 제공해 주는 데 적합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기적으로 말미암아 애굽 사람들에게 생긴 일로 그렇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물을 가지고 행하신 일로 보증된 선택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시하고 계신 겁니다.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하셨고. 따라서 그들이 자기를 경외하게 만드셨던 것처럼 그 과정을 이루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이들 앞에는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26절은 그와 같은 선택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선택권의 내용은 순종과 심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먼저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라고 하셨습니다. 듣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요즘 세태가 경청의 상실에 있습니다. 듣지 않습니다. 정말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실 때 막 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귀가 있으면 뭐합니까? 듣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과 소통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 있어 들었다면 말씀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씨가 뿌려졌는데 건강한 밭이라면 결실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의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 합당한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규례를 지키면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법도와 규례를 정하시고, 저들을 시험하고자 하신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행동들을 이들이 행할지를 보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기로 하고 행하기를 기뻐한다면 하나님은 이들에게 엄청난 약속을 하셨습니다.

15:26b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이스라엘에게 내리지 아니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질병을 내리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은 그들의 신앙적인 행태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듣고 순종하면 내리지 않으시고 그렇지 않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심판자로 우리 앞에 서시는 것보다는 치료자 하나님으로 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열망이 더 크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라

이 선언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이들에 대한 특별한 축복의 선언입니다. 치료자 하나님 안에서 모든 삶에 회복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들이 무너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하여 주시어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건 건강한 신앙과 삶이 더욱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한 동행을 이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15: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물과 종려나무들이 풍부하게 있는 장소인 엘림, 오아시스에 당도하게 되었고. 거기서 그들은 출애굽의 가운데 가장 어려운 부분을 앞에 둔 채 즐겁게 장막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마실 수 없는 물을 정화하여 마실 수 있게 하셨고 그들을 물과 과일들이 넘쳐나는 오아시스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부각하기 위해 대조적인 주제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백성들이 어려움 가운데서 불평하는 것 그들을 구원하시고 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여호와께서 주신 백성들의 의무 그리고 그의 백성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치료해 주시는 치료자로서의 여호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여정은 그런 시험과 연단의 과정입니다. 바로 이들을 새롭게 하시기 위한, 즉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공동체로 부름을 받음에 순종하여 그 일을 감당하기를 목적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그들을 치유하여주시기를 결정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치료자이심을 인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치유하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관계를 치유하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치유하여주십니다.

사람이 치료하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무턱대고 치료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시험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아지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지, 그 열망이 삶으로 표출이 되는 지를 살펴보실 것입니다.

그 시험을 통과합시다. “라파하나님, 치료자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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