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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나는 생명의 떡이니: 요 6장 26-35절

by 최수근 2019. 8. 12.

2019년 8월 11일 주일설교동영상

[나는 생명의 떡이니: 요 6장 26-35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신앙함의 목적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무슨 마음으로 교회를 찾고 예수님을 찾고 있는지 살펴본 적이 있습니까? 서로 다른 다양한 목적과 마음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에서입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목적이 신앙함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우리만의 현실적인 목적이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그것은 우리를 신앙적 오류에 빠지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결국 신앙의 궤도에서 탈선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서도 사람들의 잘못된 목적이 나오고 있고, 그로 인해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게 되는 것까지 볼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열심히 찾아 만나고자 하는 이유가 하나님 나라에 있지 않고, 이 땅의 목적에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26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무리는 오병이어 기적 속에서 표적을 보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는 표적을 통해서 믿음에 이르렀던 다른 이들처럼 그 사건이 이들의 믿음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병이어가 주는 영적인 의미는 주목하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현실적인 생각, 빵 생각 만을 품었던 것입니다.

무리가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그들의 배를 채워 주신 것에 놀라워했던 것입니다. 단지 포만감만을 경험하고 떡의 질량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 속에 이런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저분만 계시면 더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겁니다. 이처럼 빵에 대한 기대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몰려온 것을 간파하신 것입니다.

저들의 주요 관심사는 육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썩을 양식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병이어를 통해 원대로 먹을 수 있는 떡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라 믿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 안에 흘러들어온 우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물질적인 축복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그리스도인, 수많은 교회가 병들었습니다. 하지만 물질적 축복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렇게 맘몬의 노예가 된 이들을 향해 주님은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27a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현실 생활의 문제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면 보다 근본적인 영적인 것들을 바라볼 틈이 없습니다. 자기가 지금 썩어질 것들을 위해 몰입하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양식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입니까? 썩을 양식입니까? 예수님은 썩을 양식이 아닌 오직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은 우리 스스로 이루어낼 수 있는 양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들은 실은 다 썩어질 것들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27b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이 양식은 인간이 자신의 방식대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썩는 양식과는 구별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물질에 사로잡힌 나머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제공하시고자 하는 참된 복이 물질적인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 자들이 다시 묻습니다. 28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물론 이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적 열심에 대한 질문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일이란 자기들이 힘써 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율법적 열심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질문들을 올려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 아닙니다. 주님의 생각, 주님의 뜻에 맞추어가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데, 그것은 다른 특별한 행동이 아닙니다. 단지 믿음에 대한 것입니다. 

29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그 일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내가 봉사하고, 내가 공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나의 행함이 아닌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11:6a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고, 이는 동시에 영생을 보장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다면, 그 믿음이 내 삶을 주님과 동행케 하고, 늘 주님을 힘입어 살아가기에 주님으로 인해 영생을 선물로 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예수님은 찾아온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았으면서도,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보았으면서도, 왕의 신하 아들을 치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물리적인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30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그들은 많은 것들을 보았으면서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다시 볼 수 있도록 구하니 참으로 어이없는 행동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구원자라면 바로 그 표적을 행해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완고함이 얼마나 심한지, 또 집요하게 표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늘 더욱 큰 것들을 보여주셔야만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완악함은 실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계속 새로운 뭔가를 기대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영적인 채워짐은 또한 아닙니다. 가시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가 거듭 진행되어도 예수님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갈릴리 사람들은 여전히 본질적으로 물질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말할 뿐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복이란 공짜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제공해주고, 로마의 황제들을 제거해 줄 정치적 메시아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것들에 집착합니다. 예수님이 가시적인 결과들을 내어주면, 또는 소원목록들을 들이밀고 믿을 수 있도록 결과를 보여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 모두에게 예수님은 행한 기적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갈릴리 사람들은 그 믿음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구하는 표적의 수준은 출애굽 해서 먹던 만나였습니다. 31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유대인들은 어리석게도 예수님께 모세와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들이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광야 백성들은 수많은 기적을 보고 하나님과 모세를 믿었습니까? 아닙니다. 원망과 불평하다가 저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사람들의 모세와 같은 수준을 보여줄 수 있냐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그것 자체가 모세가 한 일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3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참떡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떡이야말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33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세상이 주는 것들의 상당수가 우리를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이들은 이와 같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배를 채울 떡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34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바로 이들이 목적하는 것입니다. 항상 공급받는 떡입니다. 그러나 이것 자체는 실은 썩어질 떡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현실적인 이해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 썩어질 떡이 풍성하게 있을 때는 환호하겠지요. 하지만 그 떡이 없어지면 곧 그 자리를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단순히 떡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더더욱 믿음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떠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떡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에 먹던 만나를 말씀하시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3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지금 유대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먹었던 육체적인 굶주림을 만족시킬만한 떡과 고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떡으로 제시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찾는 썩어질 떡은 일시적으로 생명을 유지시켜줄 수 있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반면에 생명의 떡이라고 스스로 선언하신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하늘로부터 만나를 공급하셨듯이, 또 다시 하늘로부터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써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도록 영원한 참 생명을 얻는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의 선물로 인해 예수님께로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삶에 만족함을 주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사람들은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온갖 형태의 다양한 것들을 질릴 정도로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공허함만이 밀려올 뿐입니다 

그런 이들을 향해 예수님은 헛된 시도를 멈추고 주께로 나오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이 참된 만족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릴지라도 참된 만족을 알지 못한 채 결국에는 허무와 절망, 불행, 좌절, 불안, 두려움 등에 싸여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비참하게 죽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로 오는 사람들에게는 참된 만족과 기쁨이 그 안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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