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8일 주일설교동영상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장 1-9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목사
베데스다는 히브리어로 은혜의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베데스다 못 주변 정자에는 언제나 수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못에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진위가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사람들의 허무한 바램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수많은 병자가 그렇게 덧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중병에 걸린 자들로서는 어쩌다 그 순간이 와도 잡을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신속하게 누군가 뛰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베데스다 못에서의 절망은 깊어만 갔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떠난다고 해서 다른 치료의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날 이 세상이 베데스다 못처럼 여겨집니다. 많은 이들이 천우신조의 기회를 잡고자 저마다 바쁘게 살아갑니다. 오직 그것만이 사람들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쉽게 다가오지 못합니다. 아니 그런 희망 자체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희망이 체념과 절망으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렇게 삶은 고착되어 가고, 의미 없이 살아갑니다.
베데스다 못에서도 절망 가운데 무려 38년을 기다렸던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38년 동안이나 온몸이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를 도와주는 자, 심지어 거들떠보는 자도 없이 그는 그곳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허망한 기대로 38년을 기다렸습니다. 그 마음의 상처는 깊어질 대로 깊어졌습니다. 몸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베데스다 못에는 절망의 소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속에 못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수많은 병자가 있는데, 38년 된 병자에게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주목해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병이 오래된 것을 보셨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가가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보통은 환자들이 찾아와 병 낫기를 간청했는데, 38년 된 병자에게는 예수님께서 직접 그가 낫기를 원하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각 그는 낫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네!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의 상황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요? 그는 자기가 병을 고칠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했기 때문입니다. 7절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 언젠가 “물이 동했다” 외치는 소리에 못 속으로 먼저 뛰어들고 싶었지만 자기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기회를 다른 이에게 빼앗겼다는 억울함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필요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통속적인 수단에 의한 치유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절망을 뚫고 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간절한 마음보다는 자신의 절망만을 예수님께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는 너도나도 38년 된 병자의 억울함이 있습니다. 해결되지 못한 상처, 고통, 문제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못가에 있는 38년 된 병자처럼 신앙적으로, 정서적으로, 관계적으로 모든 것이 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왕의 신하에게서처럼 어떠한 신앙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예수님께서 낫고자 하는 그 사람의 신앙의 일면인 의지를 시험하실 때, 그 환자의 유일한 대답은 불평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병자의 억울함과 삶의 희망 없음을 보시고 그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가 간절히 원하고 낫기를 원한다고 말하지도 않았지만, 믿음이 없어 보였지만, 그런 그에게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여주셔서 즉시 그의 고통을 풀어주셨습니다. 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은 말씀만으로 충분하신 분이십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습니다. 말씀의 권세로 병을 치료하셨습니다. 그것도 네 병이 나았다고 하지 않으시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를 또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마비된 그의 한계 속에 갇혀 일어서지 못하는 자가 아닌지 말입니다.
그 사람의 상황은 마비가 된 채 38년이 지난 자였습니다. 그렇게 낫고 싶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베데스다 못 속에 자신을 던지지 못했던 자였습니다. 그런 자를 향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의 선포는 허황된 말처럼 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났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도록 명하셨는데 이 명령은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이 병자의 삶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앞에 나오는 왕의 신하처럼 말씀만 듣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났고, 자리를 둘둘 말아 들고 걸어갔습니다. 굉장한 힘에 휩싸인 것처럼 그는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그의 인생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지속 되어 온 우리들의 필요를 다루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결해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로인해 그 나약한 자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나서 살기 시작하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것을 명령하시는 능력의 주님을 믿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절망의 자리에서, 불가능의 자리에서 우리를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됩니다.
이렇게 38년된 병자가 치유된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9절 하반 절에서 말씀합니다. “이날은 안식일이니.....” 물론 이것 때문에 이어지는 상황에서 안식일 논쟁이 벌어지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계획이 드러나지만 저는 안식일 논쟁보다는 38년 된 병자의 치유가 일어난 날이 안식일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안식일은 단지 율법적으로 지켜야 하는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날입니다. 오늘날 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날을 기억하고, 그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며 예배하는 날인 것입니다. 그렇게 예배하며 주의 샬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에게는 진정한 안식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어느 날 불현듯 그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시면서 그에겐 안식이 다가왔습니다. 38년 동안 그렇게 안식을 누리지 못하던 자가 예수님 때문에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베데스다 못가에서처럼 소망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38년 된 병자는 자신의 마음을 간곡하게 올려드리기보다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도 불쌍히 여기신 주님으로 인해 치유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안식의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이 은혜는 저 38년 된 병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께 낫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시오. 자기의 처한 상황 때문에 불평하지 마십시오. 할 수 없음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단지 낫기 원한다고 말씀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지금 마주하고 있는 문제의 자리에서, 아픔의 자리에서, 고통의 자리에서, 절망의 자리에서, 모든 것이 마비된 상태에서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그 상황 속에 오셔서 그 어둠의 틀을 깨뜨리고 일어서라는 주님 말씀을 오직 의지하여 믿음으로 일어나 걸어가십시오. 거기로부터 우리는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갇혀 있던 억압의 틀이 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안식 없던 삶의 자리에 영원한 안식이 임할 것입니다.
'설교동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생명의 떡이니: 요 6장 26-35절 (0) | 2019.08.12 |
---|---|
오병이어의 기적: 요 6장 1-15절 (0) | 2019.08.04 |
내 아들을 고쳐주소서: 요 4장 46-54절 (0) | 2019.07.25 |
빈 무덤에서 나오라: 마 28장 1-10절 (0) | 2019.05.04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 3장 16-21절 (0) | 2019.05.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