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7일 주일설교동영상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 15장 16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내게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고 하면 어떨까요?
골라 보고, 골라 먹고, 골라 만나고, 자신의 삶에서 선택에 대한 자유가 없다면? 정해주는 대로만 간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힘이 들겠습니까? 나아가 우리의 궁극적 운명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없다면, 그래서 나는 정해진 코스대로 갈 수 밖에 없다면 어떨까요?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에서는 실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자유와 선택을 통해 인간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말했습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에 향한 신앙에 대해서도 자신의 필요로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자신이 분명한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적 사고는 다르게 접근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고백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 자신의 수고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하셨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의 출발이 하나님의 택하심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행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바울의 고백 속에서 보듯이 우리의 선택과 책임보다 앞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행하심이 우선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근본적인 택하심으로부터 오늘 우리들의 삶이 세워져 가고 있음을 성경은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불붙는 떨기나무 앞에서 부르셨습니다.
출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여호수아도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민 27: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다윗도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삼상 18: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이 흐름 속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제자들이 스승이신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어느 날 그들 인생 가운데 불쑥 찾아오셔서 그들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막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주님의 마음 속에 먼저 그들을 향한 택하심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자원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택하고,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주체적으로 생각해서 우리가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 라는 말씀에서 단호하게 그것을 천명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에서 가지가 생성되는 것입니다. 결코 가지로부터 포도나무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주권적인 주님의 택하심에 우리가 순종하는 선택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고, 교회공동체 또한 동일하다고 믿습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 어떤 이들은 자기가 개척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하나님이 예수생명교회를 택하시고, 하나님이 세워주셨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택하셨고 주님이 시작하셨기에 그 결과에 대한 불안함이 전혀 없습니다. 주님이 책임져주심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을 위해 택하셨습니까? 주님이 제자들을 택하신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제자들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입니다.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 하고”
한 개인의 삶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의 부르심, 택하심에도 열매에 대한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삶에서 제자다움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열려야 합니다.
제자다움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거룩함의 열매요, 정결함의 열매요, 세상과 구별됨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통한 생명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교회에는 어떤 열매를 기대하실까요?
교회의 부르심의 목적은 성경의 관점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선교적 공동체입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막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눅 24:47-48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러기에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열매가 교회 안에서 드러남은 물론이요, 그 안에서도 분명한 선교적인 열매가 맺혀야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쪽 짜리입니다. 중세교회가 아무리 타락했어도 예수회와 같은 선교적 소명을 감당하는 공동체들이 있었기에 그 영적 흐름이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둘째, 우리를 택하심은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께 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하심입니다.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로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기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약공동체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사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렘 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우리는 기도의 시간을 아까워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기도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기도할 때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기대하시는 선교적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안디옥교회가 이것에 대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행 13:1-3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지난 8년의 세월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해 일하실 선교적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선교적 열매를 맺도록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이에 우리가 더욱 기도하며 선교적 열매를 맺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주의 이름이 온 열방에 드높아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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