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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누구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롬 8장 28-39절

by 최수근 2016. 4. 24.

2016년 4월 24일 주일설교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롬 8장 28-39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저는 얼마 전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는 내심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 건져주실 것을 기대 해보았지만 그에게서 기적은 없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일이 전개될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과연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모른 체하고 계신 걸까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는커녕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와 같은 불확실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이점에서 여러 모델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것에서 우리의 최고의 선을 위해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8:28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이 매순간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 모든 영향, 모든 생각들을 엮어 가시면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고자 하십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질병, 재난, 사망, 절망과 같은 위기들을 사용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 가는 도구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 속에서 이와 같이 행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 안에서 이와 같이 행하십니까? 하나님은 설령 그것이 좋은 일이든, 혹은 나쁜 일이든 그 모든 상황들을 엮어서 궁극적인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 가시는데,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서 이와 같이 행하심을 우리가 분명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확신과 신뢰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는 사실에 기초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붙잡고 가시는 것은 부르신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29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받게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된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장목표입니다.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장래에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예정은 우리를 부르심으로써 역사적으로 적용이 됩니다. 그 분의 부르심은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다가옵니다. 복음이 능력으로 그들에게 전파되고 그들이 믿음의 순종으로 반응하는 바로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신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는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불필요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복음 전도는 하나님이 정하신 바, 그 분의 부르심이 그 분의 백성들에게 이르고 그들의 믿음을 일깨우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해주고,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은 마침내 우리를 공동 상속자인 그리스도 안에서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세워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바울은 아버지와 아들이기에 주어지는 놀라운 약속에 대해 몇 가지 수사적 질문을 던지면서 그 실체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31절에서 바울은 묻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에 대한 답은 아무도 없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을 향하여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 눈에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할수록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행동도 강도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비록 현실은 이렇게 두렵고 떨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움츠러들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의 편이 되어주시는데 감히 누가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심은 차원이 다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전적으로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아들까지도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함에 어떻게 응대하시겠습니까? 자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이미 주었다면 그보다 작은 것들에 대해 하나님은 연연해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러기에 바울은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묻습니다.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신 자들을 위한 대속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도 크고 놀라운 선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것은 은총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필요한 모든 영적 은혜들을 아낌없이 지속적으로 주실 것입니다 

누가 고발하리요

이렇게 아들까지 내어주심으로 택하신 자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의롭다 하셨으니 누가 감히 그들을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33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이미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우리의 빚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변제되어 죄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는 이미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에 대한 어떤 고발도 법정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더더욱 어느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최고의 변호사이십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도 우리를 정죄하시지 않는데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1절에서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이와 같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을 눈여겨 볼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감히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35절에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다 끊을 수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고통과 억압과 불행과 상실이 하나님의 자녀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닥친 현실이 36절의 말씀과 같아도 말입니다.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죽음과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멈추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

오히려 이와 같은 상황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게 하기는커녕 이 모든 일에 맞닥뜨린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의 이김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완벽한 승리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힘겹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해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지금 고난 중에 있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뒤쳐져 있다고 해서 참으로 실패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약속 가운데 견고하게 자리 잡고,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아간다면 우리는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다시 한 번 더 확신합니다.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38-39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는 억압, 편견, 핍박, 가난, 끊임없는 실패와 무기력함의 고통을 겪다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지, 또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조차나 하시는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육신이 가장 편안할 때 우리는 보살핌을 받는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가 역경을 당할 때는 버림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신실한 제자들은 늘 고난을 당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이 그들을 집어삼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와 같은 확신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것은 오늘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는 이것을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나이다외치고 전쟁터로 나가 싸워 승리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세상을 향한 외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시려고 독생자를 희생시키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대가를 치르시고 지금은 아버지 우편에 앉아 중보하시는 아들이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고난에 참여하시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영적 추진력이 되어 주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이렇게 나와 함께 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선언하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기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주께서 우리를 대승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의 모든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느 누가 우리를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감히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음을 믿고, 오늘도 우리를 넉넉하게 이길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6:33b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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