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7일 주일설교문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전해라: 롬 8장 12-17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실존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 이미 이루어졌고, 지금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 이루어질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안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첫째, 과거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십자가 구속과 부활의 사건에 서 있습니다. 둘째, 미래에 하나님의 백성과 온 세상을 위해 행하실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역사에 대한 소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셋째, 현재에 그리스도인 됨을 인쳐 주시고 성도들을 견인해 가고 계시는 성령님에 사역에 근거를 둡니다.
빚진 자
죄인이었던 한 인간이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힘입어 일어나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복음의 능력 안에 살아가고 있는 로마 교회의 형제들을 향하여 감히 외칠 수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들이다.”
빚진 자는 채무에 대한 상환책임이 있지만 요즘은 설령 파산한다고 해도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시대는 지금보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상당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채무자와 그의 재산, 그의 가족 모두 다 채권자의 처분에 달려있었습니다. 잘못하면 노예로 팔려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채권자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빚을 다 갚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원금은 도저히 우리 능력으로 갚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악덕사채업자에게 평생 시달리는 불쌍한 채무자와 같은 신세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갚아도 원금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단지 은혜로 구원받아 거듭난 자들로서 옛 사람의 자리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이지, 육신에 빚진 자가 아닙니다. 육신에 빚진 자라면 육신이라는 채권자의 권력에 순종해야 만합니다. 마음과 몸을 육신을 위해 봉사해야 하며 육신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는 수고하며 일하지만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에 육신에 빚진 자가 아니요 하나님께 빚진 자이니 육신의 요구에 져서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신은 죄로 인해 정죄된 우리 자신이며, 그리스도 밖에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던 자의 현존입니다. 그러니 그 때처럼 죄가 손짓하는 대로 예하며 스스로 망가지고 무너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육신의 소욕대로 사는 삶이 지속되는 자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비록 처음에 죽음에서 출발했지만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하지만 그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그냥 거대로 산다면 어찌되겠습니까? 롬 8장 13절 말씀처럼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왜 죽습니까? 육신은 단지 인간의 연약함을 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근원지입니다. 그러니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의 자리에 머물러 있겠다는 선언이고,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죄의 끝은 결국 죽음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습니까? 반대로 하나님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심해야만 합니다. 그 빚 때문에 하나님은 죽을 때까지 육신을 따라 살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오해하면 율법지향주의, 금욕주의로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의 능력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그러니 우리의 해야 할 것은 오늘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안에 싹트고자 하는 죄의 구체적인 음모를 깨트리고 우리를 새롭게 하실 수 있도록 길을 열어드려야 합니다.
몸의 사악한 행실을 처리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 뿌리를 뽑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육신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이 일은 성령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렇지만 성령은 우리의 반응과 상관없이 그의 일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힘이 우리들로 하여금 육신의 행위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도록 주권을 내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기를 중단하고. 성령이 그렇게 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 안에서 옛 세계 안에 이미 새 세계를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긴장을 날마다 갖고 나가야 합니다. 거룩을 향한 도전을 미래의 언젠가로 미루기만 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시급하게 행하지 않고, 여전히 육신에게 마음을 쏟다보면, 죽음과 같은 비참한 실존이라는 피할 길 없는 종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미루다보면 어느 순간 영적으로 완전히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을 통해서 우리 몸의 잘못된 행실을 죽이고, 생명을 향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렇게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임으로써 죄의 음모가 분쇄되고 생명에 이르는 길이 열려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됨의 증거라고 놀랍게도 선언합니다. 진박 감별사처럼 성령님이야말로 “크리스천 감별사”이십니다.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종으로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엄위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 우리는 종의 영을 받았습니다. 종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를 두려움 속으로 몰아갑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루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노예로 소유할 전적인 권리를 가지셨지만 매매 증서를 찢어버리시고 입양서류를 기안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단순히 더 친절하고 더 온화한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향해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빠! 하나님!” 지금 우리에게 친근한 아버지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로 하여금 “아빠”라고 부르짖도록 격려하는 성령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그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어” 확신케 하십니다. 16절에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심령에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도장을 꽉 찍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아들 됨, 곧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17절 a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양자된 자녀는 새로운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포함하여 친자녀의 모든 혜택을 법적으로 보장받습니다. 우리는 빚을 갚아야 하는 노예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의 유업을 할당받을 권리를 소유한 아들의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모든 것을 우리도 함께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거기에는 값비싼 대가가 따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도 함께 동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7절b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빚진 자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유업에 이르는 길, 영광으로 향하는 길은 고난의 길을 따라 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길은 홀로 외롭게 가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 곧 하나님의 상속자들을 영광스러운 유업으로 인도하실 것을 굳게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믿고, 오늘도 우리는 이 길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꿋꿋하게 달려가고 있는 겁니다. 힘들어도 쉽게 투덜거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길 끝에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도상에서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더 이상 종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상속자다.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다. 그 끝에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여해주신 아들이자 상속자의 당당함으로 오늘 세상 앞에 서서 세상에 머리 숙인 자가 아니라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아가 아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십시오.
'주일예배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장 1-13절 (0) | 2016.05.08 |
---|---|
누구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롬 8장 28-39절 (0) | 2016.04.24 |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까? 롬 8장 1-11절 (0) | 2016.04.10 |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롬 7장 14-25절 (0) | 2016.04.03 |
사망이냐 영생이냐 : 롬 6장 15-23절 (0) | 2016.03.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