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우리 이웃과 함께!!!
주일예배설교원고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까? 롬 8장 1-11절

by 최수근 2016. 4. 10.

2016년 4월 10일 주일설교문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까? 롬 8장 1-11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한 때 수영영웅이었던 박태환의 리우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금지약물 파문으로 인해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했던 선수는 3년간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없다는 규정을 개정하자는 요청에 대한체육회가 개정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스포츠계가 금지약물 복용선수들을 엄격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수하게 자신의 기량으로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과 함께 약물의 능력을 도움 받아 경기에 승리하고자 하는 유혹으로부터 선수들을 지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뉴스를 듣다가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지극히 그리스도인다운 정상적이고도 건강한 에너지의 공급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지 수시로 나 자신을 체크해보아야 하는 게 아닌가 말입니다.

크리스천 도핑테스트 

만약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도핑 테스트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의 각양각색 금지약물을 복용하다가 믿음의 레이스에서 선수자격 박탈을 당할 그리스도인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 국가대표인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슨 힘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능력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롬 9b에서 우리 안에 있어야 할 분이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님이 거할 때 나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거하심으로 우리가 더 이상 옛 사람의 본성으로 살아가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9a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성령 안에서 해방 

우리가 이처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 안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 있습니다.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어떤 정죄함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좀 부족하다고 해도, 무슨 이유든 누가 우리를 싸잡아 욕하고 비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설령 그렇게 하는 자가 있어도 거기에 마음 상할 일이 없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의 정죄로부터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정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죄를 사슬을 끊어주셨는데 나를 향한 모든 정죄와 판단의 소리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합니다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해 칭의와 성화를 이룰 수 있다고 했지만, 결코 율법은 우리의 칭의와 성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그 어떤 능력도 없습니다. 물론 율법의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육신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타락한 상태에 빠져 있는 인간으로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죄를 정하여 주셨습니다. 의롭다 여겨주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다.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이와 같은 죄 사함의 은총을 통해 성령을 따라 행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정죄가 아니라 율법의 의로운 판결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4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타락하여 하나님과 분리된 옛 사람의 삶을 살아가면서 결코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무의미한 노력이 아니라, 교만한 자기 의로서가 아니라 성령님께 순종함으로써 내가 할 수 없네요.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그 의를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따르는 자의 시도는 이 땅에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 vs 영을 따르는 자 

그 점에서 세상은 두 영역에 속하여 살아가는 자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을 따르는 자요, 다른 하나는 영을 따르는 자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자기 의, 자기 생각, 자기주장, 자기 정욕대로 움직이는 자입니다. 자기의 뜻이 우선되는 자인 것입니다. 다분히 세상의 질서를 따라 사는 자입니다.

반면에 영을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기를 기뻐하는 자입니다. 그와 함께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는 자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질서를 따라 사는 자입니다. 전자는 월드시스템, 후자는 워드시스템입니다 

이 둘의 열매와 행동의 차이는 너무나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먼저 생각의 차원이 다릅니다.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볼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부터 시작해서 그 스펙트럼이 다양할 것입니다. 정리하면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연결됩니다 

반면에 영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는 것입니다. 나의 즐거움과 기쁨, 누림보다는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가, 사람을 살리는 일인가 

그러니 그 열매도 상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한쪽은 사망이고, 다른 한쪽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그것은 육신의 생각의 끝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의 파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7a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생각의 어긋남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하게 되어 있습니다. 7b“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여러분 생각하나 잘못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시겠습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과 비딱 선을 타도 저렇게들 죽을 고생인데, 하나님과 원수가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사망입니다.

결국 세상의 질서에 취해서 살아간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이것은 우리를 부르신 목적과 부르심에 응답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위배되는 삶입니다 

성령의 사람

이처럼 바울이 육과 성령을 나란히 대조시키고 있는 것은 성령의 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시대를 대변하는 육의 세력이 함께 현존함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 속한 자도 여전히 육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자들이 이와 같은 삶의 도전에서 우리로 하여금 자유하게 하신 은총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소위 육에게도 성령에게도 속하지 않는 중립지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에 속하지 않는 것 자체가 바로 육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없는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또한 성령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궁극적인 근거는 성도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인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바로 성령 안에 있는 자이며 성령 안에 사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이 주는 모든 억압과 삶의 무거운 짐, 얽매이기 쉬운 죄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