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3월17일 주일설교문
[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 빌4장4-7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아침신문을 들고 보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기사거리보다는 우울하게 하고, 염려스럽고, 걱정하게 만드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주변의 이야기뿐이겠습니까? 우리들의 길지 않은 인생도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보단 어려움으로 가득할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오늘 우리에게도 예외 없이 어려움이나, 고난이 다가 올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녕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우울하고, 힘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많은 환난을 겪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끝까지 이 길을 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우울함도, 애통도, 슬픔도 아닌 영원한 기쁨에 있습니다. 이 기쁨은 빌립보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주제입니다. 바울은 매장마다 반복해서 이 기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기뻐하라고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외치고 있습니까?
1. 주 안에서 기뻐하라
바울은 빌립보서 4장을 시작하면서 주 안에 굳게 설 것을 권면하였고,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어떻게 주 안에 굳게 설 수 있을지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2절에서 주 안에서 한 마음을 품고 서로 도우라고 했고, 오늘 본문 인 4절에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세상적인 흐름과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주님의 영향력 안에 있을 때 흔들림 없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든든한 위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라 권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어느 멋진 휴양지에서 행복한 휴식을 즐기는 틈틈이 시간을 내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수감 중입니다. 생명과 사망의 틈바귀에 끼어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여! 내가 잘 참고 견디고 있듯이 여러분도 인내하면서 잘 견뎌내십시오!”라고 썼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고, 당당하게 그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기에 “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감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바울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요청할 수 있다면, 그가 명령하고 있는 이 기쁨은 쾌적한 환경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어떤 특정한 환경에 달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이 주로 우리의 상황에서 기인한다면, 상황이 변하면 비참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오직 우리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 8장10절에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했습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 주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데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상황을 초월해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어려운 갈등과 고통스러운 환경을 굳이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거기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오늘도 우리의 깨어지고 상한 영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분 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이처럼 주 안에서 기뻐하기를 훈련하는 성도는 마음의 고통 속에서 향기를, 자신을 녹초로 만드는 긴장 속에서 안식을, 고독함 가운데 사랑을, 고통스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리심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4절에서 기뻐할 것을 이야기한 바울은 5절에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하였습니다. 기쁨과 관용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요? 관용이란 모든 것이 일어날 만하다고 생각하는 “넓은 마음”이나 “아량”을 의미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적대감이나 악의 없이 불의, 부정, 차별 등을 참아낼 수 있는 겸손함과 견고함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관용을 제대로 보여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대하실 때 이러한 관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고, 바울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관용으로 성도들을 대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관용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 대단히 예민하게 반응하곤 합니다. 이는 분명 관용이 아닙니다. 관용은 사소한 문제에 있어서 지나치게 화내지 않는 것입니다. 일이 지연될 때, 원치 않는 문제가 생겼을 때, 금전의 손실이 생겼을 때, 차를 타고 막힌 길에 서 있을 때, 사람들이 괜히 짜증나게 만들 때, 누군가 내게 실수했을 때, 사람들은 관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관용이 없기에 사람들은 편협하게 되고, 조바심 내고, 견디지 못하고, 강퍅하고,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의 상황에서도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있는 갈등처럼 그러한 피할 수 없는 불일치의 와중에서,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이 너무 그들 자신의 고집을 주장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지 않도록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관념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정답이 아닌데도 그것으로 밀고 나가려고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설득하고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열 내는데 어떻게 기뻐하며, 웃으며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때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너그럽게 사람을 대하고, 자기 자신을 대하고, 환경을 대할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관용을 알게 하라는 권면 뒤에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심판과 구원으로 곧 오시리라는 것을 앎으로, 우리가 논쟁에서 이김으로써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이해하면서, 주고받음에 있어서 보다 자비로운 마음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의지함에서 흘러나오는 훌륭한 상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까우시면 우리 삶에 결코 열 낼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답답할 일도 없습니다. 주님이 오신다는데 무슨 문제가 그렇게 많겠습니까? 두 손 들고 ‘아멘! 할렐루야!’ 할 일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관용할 수 있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주님께 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어떤 자리에서라도 모든 사람에게 여러분의 관용을 보여줌으로써 여러분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기 바랍니다.
3.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모든 사람에게 관용함으로 기쁨을 지키도록 권면한 바울은 두 번째 ‘전천 후 기쁨’의 비결로서 6절에서“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고 권하였습니다. 6절 말씀에“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염려함으로써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황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지켜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계속 염려하게 하는 일들을 우리에게 보내면서 우리 머리를 염려로 가득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결국 염려로 마음과 생각이 영향을 받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리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가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책이나 모임에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를 악물고 염려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합니다. 그러자마자 다시 염려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기 시작합니다. 맞습니다. 염려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일상의 수많은 염려들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이것은 대책 없는 금지 명령일 뿐입니다. 단지 염려하지 않는 것은 수동적인 자세이고, 능동적으로 우리 삶에서 염려를 넘어 기쁨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그 염려케 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와 간구를 드리라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뭔가 자기 삶에서 염려가 된다면 그러면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면 되는 것입니다. 염려가 몰려올 때는 한 구석에 틀어박혀 불평을 하기가 가장 쉽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갈 때, 우리는 해방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우리는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경험을 통해 실제로 찾아내는 것은 다릅니다. 염려하는 문제들에 대해 확실하게, 오랫동안, 충분히 기도한 때가 마지막으로 언제입니까? 염려하는 문제들을 끄집어내어 자세히 하나님께 아뢰어 보았습니까? 하지만 삶이 너무나 바빠서, 우리는 3분 남짓한‘경건의 시간’도 할애하지 못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염려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나님이 계시는지 의심하고 염려하곤 합니다. 기도는 신뢰의 행동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인지하고 그 필요의 충족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과 그 분의 신실하심에 대해 확신함으로써 더욱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는 길은 모든 일을 기도로 채우는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바울은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기도를 드리라고 촉구합니다. 그가 빌립보교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였던 것과 똑같이 지금 그는 항상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선물이 이미 우리의 소유라는 사실을 신뢰함으로써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감사는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불평과 불만은 우리에게서 기도의 날개를 잘라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누구나 감사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일 때 조차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간구와 근심거리와 함께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리는 것이 우리 기도에 변함없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가장 극단적인 슬픔과 고민 가운데 빠져 있을 때에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상황 속에는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어려움 속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들어있음을 알고 감사드려야 하며 축복이 들어있음을 고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으심으로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되는 특권, 그리고 이 세상과 다음 세상에서 이 큰 구원 때문에 주어지는 하나님 자녀 됨의 축복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감사함으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항상 무언가 달라고 하며, 풀어주십시오, 해결해주십시오 하는 것은 감사가 부족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5절에서 “주께서 가까우시다”는 종말론적인 고백을 했는데, 이러한 고백에 근거하여 성도들은 고난과 불의, 억압과 대적에도 불구하고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함으로써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렇게 그리스도인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고 염려함이 아닌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는 파괴적인 염려의 끝이 되며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케 하는 수단이 됩니다. 7절에“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 우리를 모든 문제에서 확실히 벗어나게 해줄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다스릴 것을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평강이 파수꾼같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를 안정시켜 주고, 우리를 보호해주고, 우리를 주님의 기쁨으로 채워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 주위에 요새를 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하나가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품을 수 있음으로써 든든하게 주 안에서 세워져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방비상태로 있다 보면 사탄에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지배되어, 걱정과 근심, 염려, 불신으로 가득 차게 되어 하나님과 온전하고, 건강한 관계를 이루어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그 대신에 기도하기를 배우겠다고 결심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영적 활력을 강화시켜 주는 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행함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데, 은혜를 얻는 데 있어서 그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당한 상황과 어려움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 마음을 지켜주시는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의 기쁨과 기도와 평강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는 말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노력이나 상황의 변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곧 다시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기쁨과 기도와 평강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모든 기쁨이 되고,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고, 우리의 평강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보내면서 나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도록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염려와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항상 기뻐함으로써 그 어떤 환경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주 안에 든든하게 서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근심과 염려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의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나아가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 되게 하시고, 그 모든 은혜로 인해 저희 마음과 생각을 든든하게 지켜주시어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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