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3월3일 주일설교문
[ 그리스도를 본받아 : 빌3장17-21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다섯 살에 동네 교회의 문을 들어선지 46년이 지났습니다. 46년 내내 저는 줄곧 교회 안에서 자라왔습니다. 신앙이 성장하고, 신학교에 들어가 전도사, 목사로서 사역을 하고 지금 예수생명교회를 개척하고 1년4개월이 지났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저는 결코 혼자 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힘만으론 올 수 없었습니다. 중요한 길목마다 저의 모델이 되었던 분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을 바라보면서 저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에게 조금의 힘이라도 될 수 있다면 저의 앞에서 달려가고 있는 다른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 볼 것입니다. 물론 그분들에게서 100% 만족할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그마한 단점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들어난 그 분들의 장점을 보려고 합니다. 그 분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했는지, 어떻게 십자가의 길을 따라갔는지 보면서 저도 그렇게 실천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믿음에 있어서 중요한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예수님에게서 시작이 됩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누구보다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진 이후로 목회자로서 목양에 힘을 썼습니다. 주변에 수많은 이단들의 공격 앞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립되어있지 못한 그들에게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자신을 본받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
3장17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말씀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어떤 업적이나 공로를 많이 쌓았기 때문에 본받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본으로 제시하여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고자 한 것입니다. 바울의 삶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었습니다. 고전11장1절에서“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했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겸손하게 내려놓은 것, 고난 받으신 것, 그 분의 죽음 등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것들을 바울은 좇아가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2장1절부터 3장 끝까지 그리스도를 모방함에 대해 일관성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받도록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요13장15절에“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길을 지켜본 베드로도 예수님의 말씀과 고난 받으신 것을 떠올리며 베드로전서 2장21절에서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출발점이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도 바울을 본받음으로써 그가 그렇게 본받고자 했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인격, 모든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가 발견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과정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단기속성과정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오랜 시간 그 분을 닮아가고자 노력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2.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반면에 그 길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구원을 찾지 않았고, 자기 의를 통해 얻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이들을 볼 때마다 너무도 안쓰러워 눈물이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그리스도 반대편에 서 있기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8절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 반대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에 우리의 죄를 지심으로, 우리의 빚을 면제해주셨고, 우리의 과거를 씻어내시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우리를 재창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걸까요? 로마서8장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음에도 여전히 죄 안에 거하고 있다면, 그런 죄의 습관들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의 귀함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속에 살고 있다면,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새로운 생명을 이루셨는데도 여전히 옛 생명의 속박에 묶여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는 사실이 충격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분명하게 적의를 품은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누군가가 우리를 귀찮게 하거나, 예수님의 요구에 대해 직면해야 하거나, 우리 자신을 그 분께 드린다는 다소 위협적인 일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9장 은 열므나 비유에서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사람들을 그 분의 “원수”라고 묘사하였던 것을 상기해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의 왕 됨을 인정하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 안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교사들이 이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향하여 19절에서“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서지 않는 한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말씀하신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사, 즉 구원의 사건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어리석음이나 하나님의 저주를 상징하는 것이라면서 적대시하였고, 율법에 의한 자기 의를 내세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방도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거부하는 그들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들 자신을 섬기는 우를 범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그들의 신은 배요”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적인 허기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개인적인 만족 외에 어떠한 필요도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욕망이 그들의 삶을 지시하였습니다. 결코 그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 앉으실 수 있는 자리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것은 생명 얻음에 대한 기쁨이지 개인적인 잘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인데, 빌립보교회 안으로 들어와 빌립보교회의 교인들을 혼란스럽게 한 거짓 교사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이 사람들의 욕망이 삶을 지배하였기에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이들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자랑거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가치는 완전히 이 땅에 매여 있었습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바울은 평가합니다. 그들의 모든 관심, 관점, 사물을 보는 방식, 사고의 틀 등 이 모든 것은 이 땅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고, 이 세상의 시야에 제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들을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날마다 마주치게 되니 알게 모르게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어려움을 예상하면서 저들의 시선이 오직 바울에게 쏠릴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가고 있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나의 기준점이 잘못되어있다면 어떤 열심을 품고 있어도 그 열심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어떤 사람들 옆에 서계십니까? 신앙 안에서 감사가 있고, 긍정적인 마음이 있고,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믿음 안에서 걸어가는 이들, 날마다 성장하는 이들 옆에 서계십니까? 아니면 늘 투덜거리고 있는 사람들 곁에 서 계십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관계에 대해 철저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투쟁과 긴장, 그리고 끊임없는 유혹이 오늘 우리에게 사람들을 통해서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은 축복과 저주,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 전체는 생명을 선택하기 위한 전투입니다. 여기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려한다면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막힐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십자가의 원수로 그리스도의 반대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늘의 시민권자
반면에 자신을 본받으라고 외치고 있는 바울을 보면 그는 하늘, 그리고 하늘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에 방향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달리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하늘의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20절a에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의무와 권리는 이 땅의 것이 기준 될 수 없습니다. 이 땅의 가치관과 혜택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행해야 하고 하늘의 신령한 것들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기에 그 약속을 믿고 주님의 재림을 기대한다면, 이 땅에 시선을 두지 않고, 하늘에 우리 시선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20절b“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왜냐하면 하늘로부터 예수님이 오심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의 의로 구원을 완성하려고 노력하는 삶이 아닙니다. 이미 이루신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의 고난에 참여하도록 그리스도를 본받고,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를 갖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 분을 기대할 때 우리는 이땅에서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21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통치자이신 왕 중의 왕, 주의 주가 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권능으로 보잘 것 없던 우리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비천한 몸, 즉 죄악과 죽음에 노출되어 있는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때 죄와 죽음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삶의 끝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15장49절“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영성은 천국을 그리워하는 태도, 영원한 가치를 바라보는 삶,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열심, 그리스도께서 친히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시고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제와 같이 변하게” 하실 날을 고대함을 떠나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 땅에 우리의 시선이 머물러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바울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할 때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그를 본받아 행할 것만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를 본받음을 통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본받을만한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자신도 본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을 얻었다면 또한 나에게서 다른 이에게로 생명이 이어져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믿음의 계승의 완성입니다. 이렇게 바울 서신에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본받고 또 그 삶을 살면서 다른 이들이 그 삶을 살도록 보여주는 삶”입니다.
처음 믿으신 분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시간이 지나면 다 알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저절로 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에게서 기도를 배웠고, 교회생활을 배웠고, 말씀을 배웠고, 자기훈련의 원리들을 배웠습니다. 다른 이들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기본생활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새로이 회심한 세대들에게 거룩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말과 행동의 기준을 세워 행동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가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세대를 잘 돌보고 건강한 그리스도인들로 세워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순종입니다. 오늘도 내가 먼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고, 그 삶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복제하여 그대로 살아가는 본받음의 역사가 일어나 여러분으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믿음의 네트웍이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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