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3월10일 주일설교문
[ 주 안에 굳게 서라 : 빌4장1-3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지난 2월28일 미국 플로리다의 한 주택에서 땅이 꺼지면서 그 집의 침실과 함께 방에 있던 사람을 삼키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위 ‘싱크 홀’이라는 땅 꺼짐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구조요원들이 싱크 홀로 사라진 남성을 찾아보려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싱크 홀은 기반암이 석회질로 이루어진 플로리다에서 자주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성을 띠는 지하수가 석회질을 녹이면서 약해진 지반이 침하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플로리다의 수많은 집을 지을 때 이것을 생각한 사람들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겉으로 보이는 땅은 튼튼해 보이는데, 이런 불상사가 생길지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땅을 기초로 하는 집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오늘 어디에 서 있는지 늘 점검하고 계십니까? 그 자리가 참으로 든든한 자리입니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24-27절에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여러분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든든한 반석 위에 있습니까? 아니면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요? 기껏 세워간다고 세워갔는데 모래 위라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하는 바울에게도 이것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외부의 적대자들에게 핍박을 받고, 내분까지 겪으며 고난 받고 있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들의 삶과 신앙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갈보리 십자가와 재림 사이인 “그 동안”에 어떻게, 어디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빌립보교회의 상황을 보면 그곳의 성도들은 지금 “십자가의 원수들”한 가운데 있었고, 그로 인해 그들의 위협 가운데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현재의 위협에 맞서 주춤하고 물러설 위험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또 교회 안의 연합에 대한 실제적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분열되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는 견고히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박해에 대항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대항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바울은 그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4장1절에서 바울은“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에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이제 사도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바와 바울이 앞에서 말한 것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3장에서 바울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면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는 오로지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 했습니다. 반면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자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성도들에게는, 하늘로부터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형체로의 변화됨과 구원의 완성이 있다는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바울은 핍박받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와 같은 “복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주고 위로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장차가 아니라 이미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기반은 이 땅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주 안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지금 교회 안팎에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들이 그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기에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와 같이 주 안에 굳게 서라’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여기서 2인칭 복수 명령형으로 사용된 ‘스테케테(서라)’의 기본형인 ‘스테코(서다)’는 단순하게 서 있는 자세와 구별됩니다. 이 말은 군인이 부동자세를 취하여 꼿꼿하게 서 있는 것처럼 굳게 서다를 의미합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 단어의 뜻에 부합되게 ‘굳건히 서 계십시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말은 자신의 자리를 반드시 지키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불리하다고 해서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서 물러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외부의 어려움으로 인해 온전한 믿음의 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물러선다면 그래서 적당하게 타협하고 산다면 참으로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장차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선물을 기대하며 서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굳건하게 서 있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신의 권면과 가르침을 기억하고, 주 안에서 굳게 서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를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굳건하게 서 있도록 하는 힘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주 안에서 서라고 할 때 “이와 같이 주안에 서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라는 말은 다음 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에 준해서 행동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2절 이하에서 각론으로 들어가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주 안에서 굳건하게 서가는 것인지 이야기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입니다. 그 중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인 몸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굳건하게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 안에서 같은 성도들과의 연합을 힘입어야만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분열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는 결코 견고하게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장2-3절의 말씀을 보면 빌립보교회 안에는 주 안에서 하나 됨에 대한 실제적인 필요가 있었습니다. 2절에“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말씀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서 영향력 있던 두 여인을 향하여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을 것”을 당부함으로써 서로의 차이를 해결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두 여인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힘쓰던 자들이었지만, 어떤 문제를 놓고 서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 다툼의 문제가 교리적인 것인지 또는 윤리적인 것인지, 아니면 교회적인 것인지, 또는 개인적인 것이지는 바울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이 다투었고, 그로 인해 성도의 교제에 심각한 분열을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교회 안에 패가 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교회 안에도 이런 다툼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렇게 그들의 다툼은 매우 두드러졌고, 교회의 하나 됨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1절에서 말하기를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이런 존재로 보아야 한다면 다툼이나 분열은 실로 창피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고 화목케 하신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무시해 버리고, 그리스도가 대신하여 죽으신 사람들에게 너무 가볍게 죄를 범하는 우리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 바울이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면, 이런 분열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두 여인을 향해 바울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는데, ‘마음을 품다’라는 동사 프로네인이라는 단어는 ‘마음을 쓰다’, ‘느끼다’, ‘생각하다’라는 복합적인 뜻을 가진 동사로서 감정과 생각, 느낌과 의도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서로 동의하라’는 정도가 아니라 동일한 감정, 동일한 느낌, 동일한 태도 등을 포괄하는 온전한 화합의 삶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주 안에서 굳게 서 있기 위해선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연합된 교회만이 세상의 위협과 죄의 유혹에 직면해서 굳건하게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적인 부조화가 자리 잡고 있는 곳에서는 외적인 패배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 낸 ‘제2의 전선’에서 서로를 향해 은밀히 전투를 수행하고 있다면, 세상과 접촉하는 주요 ‘전선’에서 어떻게 악의 권세와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적싸움이 끝날 때까지 주와 함께 굳게 서서,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승리할 수 있고, 우리의 교회를, 우리의 삶의 자리를 복음에 합당한 모습으로 지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편지를 보내는 내내 그들이 어떻게 그 상황에서 바로 서야 할지를 말씀하였습니다. 1장27-28절에서 교회에게 “한 마음으로 서라”고 명하였고, 2장2절에서도 “한 마음을 품으라”했고, 4장2절에서도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요구한 것입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오디아가 순두게에게 합해야 하는 것입니까? 순두게가 유오디아에게 합해야 하는 것입니까? 불행하게도 이런 방법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빌립보서2장에서 그 비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같은 마음을 가지려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설명한 것이 빌립보서2장6-8절 말씀입니다. 그 마음은 바로 겸손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죽으리만큼 자신을 낮추는 마음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려면 죽기까지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 속에는 근본적으로 겸손이 자리 잡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들 스스로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겠습니까? 사람들 속에는 근본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만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려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했을 때 가능합니다. 그 점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했던 두 여인들도 어떤 면에서는 귀하고 좋은 것들이 있었지만 다른 면, 그들이 서로 화합하고 일치해야하는 면에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 간의 분열은 세상에 대한 교회의 전신갑주에서 심각한 약점입니다. 아킬레스건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들이 겪는 어려움이 거의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결국 복음의 길에서 벗어나 십자가의 원수들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차원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때문에 교회는 상호 도움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 내에 다른 성도들로 하여금 문제가 있는 여자들을 도우라고 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어려움은 그냥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짐을 나누어질 때,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을 도울 수 있을 때 교회는 평안하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주 안에서 굳게 세워져 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장5절 하반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교회 안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 우리의 표준은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들 가운데 화평도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어야 하고 사랑도 그러하고 인내도, 겸손도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겸손이나 사랑은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되게 하지 못합니다. 어느 순간 기분 나쁘면 서로 틀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비일비재합니까? 이래서 우리가 어떻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드러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낮아지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와 같은 구속사를 통해 이 땅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 세상이 아닌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세워가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늘 무너지고,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는 인생이 아니라 우리에게 놀라운 기회를 주신 예수님, 든든한 반석이신 예수님 안에서 그 어떤 타협과 죄의 유혹에서도 더 이상 그리스도인다움을 내팽개치지 않고, 그리스도인다움을 지켜갈 수 있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 그 어떤 자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저희들을 지켜 주옵소서. 주 안에서 굳건하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사탄은 그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를 넘어트리고자 합니다. 거기에 맞서서 굳건하게 서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 안에서 한 마음을 품게 하소서. 각자의 마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서로 짐을 지어주며 돕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서로를 섬길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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