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일 주일설교문
[부르심의 소망을 알면 인생이 달라진다: 엡 1장 15-19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건 처음부터 주님이 말씀하시는 제자도가 좁은 길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포기하도록 하는 영역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세 가지를 포기하게 하셨습니다. 고향, 친척, 아버지집의 포기입니다. 그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땅과 민족,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후 오랜 동안 지녀왔던 옛 사람의 근거들을 하나하나 가지치기하는 일은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옛 삶의 자리를 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진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복음에 응답하여 나왔다면 좁은 길로 가기 위해 그 출발선에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포기 뒤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놓으신 많은 선물을 우리들에게 약속하십니다. 그 점에서 우리가 복음의 약속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놀라운 선물들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알면 우리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고 듣고 알게 하소서!!! 그리고 그 길에 있게 하소서!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 앞에 선 우리의 인생에 엄청난 변혁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복음에 직면한 우리들 안에서 정체성의 변화, 삶의 자리의 변화, 내면의 변화, 삶의 변화가 혁신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잃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잃는 것과 비교될 수 없는 놀라운 선물을 받습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퉁 치는 수준이 아닙니다. 계산기 두드릴 수 있는 경우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복음의 약속에 대해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을 충분히 알고 깨달음으로서 복음이 경험되고, 신앙적으로 더욱 진보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영적 상태와 유익에 만족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선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통해 알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들었다고 해서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혜사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께 배운 모든 것들이 생각나게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성령은 능력의 근원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알고 깨닫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도록 간청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으로 채우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의 앎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보여 지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향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못합니까?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무한하신 사랑으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면 다가설 수 없습니다. 너무 낯설기 때문입니다. 괜히 두려운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그 중심으로 들어가면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파헤치고 알려고,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극대화 시켜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알라고 그것도 힘써 하나님을 알라고 말씀합니다. 왜 알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우리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생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감추고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다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 소스는 성경에 다 있습니다. 그것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할 때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말씀을 조명해주심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님의 도움으로 영적인 개안이 이루어져 하나님을 알면 그 분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놀라운 복이 있을까요? 바로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부르셨을까요? 우리가 손들고 나온 것은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아무 목적 없이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우리는 아들로, 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들딸로서의 부르심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인 됨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시고, 더 이상 죄인으로서의 옷을 걸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입혀주시고, 하나님과 거룩한 동행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 구원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심판은 우리의 죄가 들어나는 날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의 기쁨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소망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도록 하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는 어둠이 아닙니다. 어둠이 아닌 빛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오늘 만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힘들어하는 걸까요? 오늘과 함께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뿐만 아니라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오늘이 무너져도 힘들어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과 절망, 그 간극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그리스도 밖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지어질 것입니다. 소망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어떤 자로서 살아가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자녀로 부르사 하나님의 영광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다시 말해 거룩한 부르심의 소명을 갖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믿음의 전진을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주께서 주신 부르심의 소망을 갖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빌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부르심의 소망을 알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위해 믿음의 길을 올곧게 갑시다. 그 자리에 어떻게 염려가 있겠습니까? 어떤 걱정이 자리 잡을 수 있겠습니까? 맥없는 인생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색깔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색깔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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