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7일 주일설교문
[예수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회복: 사 11장 1-9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이 시대를 읽어내고 적절하게 대처하려고 하면 두 가지, 계시성과 시의성이 고루 갖추어져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이해, 그리고 그 말씀을 시대의 상황 속에서 읽어낼 수 있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시대가 더욱 그와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때가 더욱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메시아인가?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오심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성경의 상황을 통해 읽어내고, 오늘 우리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어야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바로 설 수 있을 것이고, 그 분과 동행하게 될 것입니다.
주전 8세기 북 왕국 이스라엘은 거대한 앗수르 제국의 침략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고, 남 왕국 유다도 그 위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대로 멸망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이 주어질 것인지? 생명의 기운을 조금도 찾을 수 없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새로운 소망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선포하셨습니다.
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기에서 줄기는 베어 넘어뜨린 나무의 밑둥, 즉 그루터기를 말합니다. 이것은 절망적인 상황을 상징합니다. 잘려나갈 대로 다 잘려나간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싹이 나고, 거기에서 결실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이사야 9장 6-7절에 이어 한 아기의 탄생을 예고하는 예언의 말씀은 절망에 빠졌던 이스라엘에게 희망의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예언은 오랜 동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고, 포로기를 걸쳐 오랫동안 강대국들의 압제, 즉 바벨론, 메대와 바사, 헬라제국에 이어 로마제국의 압제 아래 신음하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이스라엘은 메시아의 대망 속에 살았고, 마침내 메시야를 갈망하고 있던 유대 땅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이 예언의 성취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절망의 자리, 죽음의 자리에서 더 이상 희망 없어 보이는 자리에서 새롭게 피어난 생명의 역사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오심은 바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전환되는 사건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 우리를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실현되어지는 자리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은 단순히 땅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왕국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진동할 나라가 아닙니다. 진동치 아니할 나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은 이 땅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회복되어 그 통치 가운데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세상 왕국, 세상 왕들과는 다른 통치 기준을 갖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메시아가 3-5절에서 다른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시고, 통치하실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의와 진실하심입니다. 5절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 강대국들의 압제 하에서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함부로 판단 당했습니다. 불의함으로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정직하게 공의롭게 대우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하지만 메시아가 다스리는 왕국이 도래하면 세상의 모든 불의함은 사라지고, 공의로우신 메시아의 통치만이 남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통해 그들은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을 향한 위로가 오늘 여러분들을 향한 위로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외적인 것으로 판단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들을 중요시 여기고, 보이는 것들을 통해 판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들의 마음, 그 갈망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를 연약한 그대로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우리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6-9절에서는 메시아가 통치하실 메시아 왕국의 평화로운 모습이 자연의 모습을 통해 그려집니다. 이 그림을 보면 샬롬의 완성입니다. 갈등, 다툼, 폭력은 사라지고 원만한 관계들이 회복될 것입니다. 샬롬의 완벽한 실현이 가능한 것은 9절 하반절의 말씀에 그 답이 있습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샬롬의 실현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오늘을 보면 주님이 오셨고,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아직 이 땅에 모든 반목과 싸움과 불의함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것들은 주님의 재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들 삶의 주변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 주님의 오심을 경험한 우리들은 그 상황들을 그냥 넋 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부여해 주신 삶의 자리에서 이 샬롬이 이루어지도록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며, 품으며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 이상 부조리와 불의와 다툼과 폭력이 그 중심에 서지 못하도록 샬롬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갈등의 자리에 서 있습니까? 생명을 살리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자입니까?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이들이 열매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케 하시고, 우리 서로를 화해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라면 우리는 샬롬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망의 자리, 생명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우리를 하나님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나의 작은 구원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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