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9일 주일설교원고
[광야에서 깨달아야 할 하나님의 은혜: 신 8장 1-10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자기 어려울 때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좀 잘 되었다고 오히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경우입니다. 힘들 때 돌보아주었는데, 물론 그 일로 생색을 내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감사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난 그렇게 배은망덕하고 몰상식한 사람이 아니라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이 늪 속으로 한 순간에 빠져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탄은 망각과 착각이라는 무기를 통해 우리를 조정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시절, 그 시간을 뚫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님과의 시간들을 잊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기억하라, 잊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래도 죄인 된 인간들은 반복적으로 그 실수를 자행하고 맙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출애굽하였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광야 40년의 힘든 기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형식은 징계의 시간이었지만 결코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간일지라도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의도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시간을 돌아봄으로써 하나님께서 왜,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은 광야를 배열하셨지는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고난이 축복의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도 광야생활을 늘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불신앙의 여정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2절에서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40년의 광야 생활은 노예로 살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훈련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뿌리박혀 있는 노예근성들을 뽑아내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으로의 정화과정을 불평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광야 길을 가게 하시는 이유는 동일합니다. 단지 죽을 고생하라고 보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낮추시고, 하나님 앞에 자기를 온전하게 내려놓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내어맡기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 어떤 마음인지, 우리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를 확인하시는 장입니다. 우리 마음의 바닥이 광야의 불편한 현실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평과 불만, 하나님을 향한 대적으로 그 마음의 완악함을 드러내보였습니다. 이것이 연약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광야를 통해 우리를 다루셨던 하나님의 연단의 시간을 늘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참으로 무릎 꿇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한 순간 고개를 드는 순간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낚아챌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광야 길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힘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깨닫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의 삶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또 주리게도 하시고, 일용할 양식, 만나를 먹여주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살기에 필요한 것에 급급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물질의 지배를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아 말씀에 순종함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건 음식을 거부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먹이시는 공급자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심을 더욱 경험하게 될 거라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생명을 사는 것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산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죽은 것입니다.
우리 삶의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애를 쓰면 물론 어느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에 앞서 성경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가 우선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을 지속시켜주시고, 우리가 번성하고, 약속의 성취에 이르도록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라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은혜 안에 살고, 번성하고, 약속의 성취를 얻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이 일이 어렵다 힘들다 변명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길은 여러 갈래 길로 나뉘어져 있지 않습니다. 오직 두 갈래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순종하지 않으면 심판입니다. 성경은 이 두 갈래 길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공급자가 되어 주실 때,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4절에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광야 길을 가서보면 참으로 척박한 땅입니다. 그들끼리 그 길을 갔다면 그 길은 사망의 길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깨달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심이 우리에게 평안이요 안전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광야의 척박한 길에서도 의복이 해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섬세한 보살핌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신 겁니다.
물론 광야 길이 즐겁고 행복한 길만은 아닙니다. 징계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했습니다. 단순한 징계가 아니라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5절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 나한테 왜 이러세요?” 눈 부릅뜨고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삼아주시고자 다루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겪고 있는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들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6절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아 광야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시간은 절망과 지옥을 경험하는 자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고난의 시간들을 통해 우리를 자녀답게 다루어가려하신다는 것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함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결과를 이루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이를 수 있는 길도 그들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르게 하신 곳에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들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세워놓은 것들은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흩으시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통한 은혜가 있을 뿐입니다. 1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주님의 공급으로 인해 우리는 채워집니다. 그처럼 우리들의 삶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찬송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아직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이 없습니까? 세상의 눈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십시오. 작은 성취에 취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교만한 마음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끊임없이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가 쉽게 넘어질 수 있음을 간파하고 계십니다.
17절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주님이 하셨습니다.” 인정하다가도 어느 순간 우리들의 교만함이 자라 자기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착각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 교만함의 허점을 차단하십시오.
모든 능력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라고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교만의 늪에 빠지고, 우리는 다른 우상의 지배 속에서 피폐한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얻은 모든 은혜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듣고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끊임없이 주께 감사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순간 훅 갈 수 있는 유약하고 유한한 존재임을 잊지 맙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꼭 붙어있어야 살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합시다. 그의 능력, 그분의 생명으로 채워집시다. 그래야 우리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은혜와 결실을 맺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합시다. 그와 함께 아직 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애를 쓰며 달려가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시다. 다른 그 어떤 열매보다도 생명의 열매를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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