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6일 주일설교문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라: 골로새서 1장13-23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서 탈북을 시도하다가 여러 발의 총을 맞고 쓰러졌던 병사가 무사하게도 잘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 현장에서 누가 이 병사를 후송했는지 아십니까? 미군 항공의무후송팀인 ‘더스트오프’였습니다. 이들 응급전문대원들의 응급치료와 헬기 안에 갖추어진 의료시스템을 통해 1차 위기상황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가까이 있던 국군병원으로 가지 않고, 70여 km 떨어진 민간 병원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총상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권위자인 의사를 통해 수술을 받았습니다.
왜 국군이 옮기지 않고 미군이 옮겼냐? 왜 국군병원으로 가지 않았냐?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저들도 병사를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겠지만 응급의료시스템과 전문요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아마도 생명을 건지지 못했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국군병원의 상황을 몇 개월 고생하면서 경험에 보았기에 이럴 수도 있다는 경우가 이해가 됩니다. 최고의 상태로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면 노력은 엄청 하겠지만 누구도 살리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질병하나 고치기 위해서도 이런 이유로 명의를 찾고 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명의와 최고의 의료시스템을 갖춘 병원을 통해 병이 회복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몸 하나 고치는 데는 사람들이 야단법석을 떨면서도 정작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하지만 몸이 병들면 그 삶이 피폐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영이 병들면 마찬가지로 그 삶이 심각하게 피폐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이 영적인 중병에 걸려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흑암의 권세아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이 상태를 인간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일시적인 방편으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보내 사람들로 하여금 돌이키도록 하셨지만 완전한 처방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죄인 된 인간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야 했고, 하나님께서 오신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성육신의 사건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선언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 2:17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죄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은 반드시 필요한 분이십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인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자신의 죄인 된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설령 문제가 있다고 인정해도 다른 루트를 통해서 그것들을 해결해보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상황이 악화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더 이상 흑암의 권세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죽음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들의 살 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고, 생명의 주관자가 되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구원에 대한 복음은 선포되었고, 사람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던 상관없이 세상 가운데서 놀라운 변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지를 알게 되겠지요.
이처럼 인간을 영적 죽음의 상태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의지이셨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인간들을 포함하여 만물이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20절“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의 이러한 바람이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대속적 죽음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키시되
악한 행실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원수 되었던 우리들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다시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하십니다.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것은 하나님과의 화목의 조건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께 성별된 산 제물이 되었습니다. 흠 없는 최고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온전한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로마서 12장 산 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의 삶입니다. 즉 코람데오의 삶으로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동행입니다. 이것은 본래 사람을 만드신 목적입니다.
이와 같은 코람데오의 삶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는 23절의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흔들리는데, 믿음의 근본이 흔들리는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 분만이 소망이 되심을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거하고 그 터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왜 흔들리겠습니까? 눈으로 확인할 수 없고, 확연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을까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직접 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사 구속받은 우리들을 통해 영광받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고, 그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들 안에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다는 복음의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 된 인간과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작정하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리에게 구원이 이를 수 있겠습니까?
참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해 사람들이 회복되어지고, 거룩하고 흠 없는 산 제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교회가 곳곳에 세워지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복음의 일군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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