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8일 주일설교문
[새로운 살 길, 예수 그리스도: 히 10장 19-25절]
한참 20-30대에게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길들이 막혀 있는 데에 이 길이 자신들의 살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희망과는 달리 거기가 살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 여러 명의 20-30대가 비트코인 투자에 실패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생명의 길이라고 여겼는데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길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이 깔려 있습니다. 이 죽음의 길은 우리들을 육체적인 파멸뿐만 아니라 영적인 파멸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옛 말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했습니다. 너무 쉽게 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좀 쉽게 가고 싶은 마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속지 말고, 진짜 생명의 길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박해 이후 흩어진 성도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새로운 신앙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도들 안에 이 길이 아닌가 생각하여 옛 길인 유대교로 돌아가는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외부적인 요인도 작용했습니다. 이것은 그 때의 심각한 교회 안에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신앙 안에서도 반복되는 문제입니다.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출발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찾아오는 회의감, “이 길이 정말 내게 생명의 길인가?” 의구심이 일어납니다. 사탄은 우리의 속성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 약점을 이용해 우리를 슬슬 흔들어봅니다. 그것을 사전에 차단해야 그 시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당시 초대교회 안에서 흔들리는 성도들을 향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믿는 도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그 생명을 이루어주실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땅에서 잘 될 거라는 단순한 소망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흔들리지 말고 굳게 잡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분이 참으로 믿을 수 있는 분이며, 그 약속하심을 신실하게 지켜내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생명의 길을 약속하신 분이 참으로 미쁘신 분, 신실한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수없이 약속을 해되지만 반대로 언제고 깰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의 약속은 신실하게 지켜질 것이기에 우리만 흔들리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번번이 약속을 깨는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약속하시고 행하신 일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회복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었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다시금 열어주셨습니다. 19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실은 대제사장조차도 하나님께 감히 나아갈 수 없어 일 년에 정해진 대 속죄일에 한 번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런 대제사장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아버지 하나님께 감히 날마다, 아니 매순간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채워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매일같이 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상에서 하나님과 대면함이 예수님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주시는 특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특권을 남발해야 할텐데, 그래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텐데, 이 특권을 너무도 아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잘 나아가지 않습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우리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내어 주면서까지 열어 주신 생명의 길인데 말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바쁘고, 심지어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해도, 새로운 살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매일 매일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할 말이 없어도 나아가십시오.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준비 안 된 것 같아도 나아가십시오. 그래야 새로운 살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은혜들이 우리 자신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 못해도, 예수님을 힘입어 아버지께 그냥 날마다 나아가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 신앙과 삶의 격이 달라질 것입니다.
짐승의 피로서는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 번 나아가도록 길이 열렸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우리 마음에 뿌려져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그 거룩함으로 덧입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라면 결국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자격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길이신 예수님 안에서 매일 매순간 오직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일상이 천국의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은 삶은 자기 혼자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면서 함께 가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날마다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든든합니다. 일회성인 이벤트가 아니라 이 일이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습관이 되지 않으면 끝까지 가지 못합니다.
지난 금요일 윤성빈 선수가 스켈레톤에서 아시아선수로서는 최초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 일이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달렸던 트랙을 그는 380번이나 달렸습니다. 본래 실력도 좋았겠지만 매일같이 그 자리에서 훈련했기 때문입니다. 훈련이 일상이니 와서 몇 번 연습한 선수와 게임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돌아보면서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흩어놓고 하나하나 쉽게 요리하려고 하는 사탄과 대적해서 우리는 예수생명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엮어져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권하면서 우리의 살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매일 매일 동행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볼 때 다르게 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루하루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의 삶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주신 샬롬입니다. 이 샬롬의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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