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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검증하라: 빌립보서 1장 1-7절

by 최수근 2019. 2. 24.

2019년 2월 17일 주일설교원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검증하라: 빌립보서 11-7절]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은, 복음의 축복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그 조건을 지키는 데에는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누리고 싶어 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 지불은 인색합니다. 하지만 결국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순리입니다.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성경의 모든 약속은 거기에 덧붙여져 있는 조건들을 지키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약속에 따르는 축복에 다가 설 수 없습니다. 순종하면 받고, 불순종하면 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분명하지만 인간의 타락 이후 인류는 두 종류의 사람으로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약속을 믿고 가는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믿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약속으로 가는 길은 한산한데, 세상의 길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양쪽 길을 왔다 갔다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줄타기는 결국 실패입니다. 아무것도 누릴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런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부적 하나를 더 챙기고자 하는 종교인일 뿐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가장 불행한 일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아닌데, 그리스도인 것처럼 확신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덧칠한 것들이 일순간에 깨어져 드러나고 맙니다. 이것이 터지는 순간 자기만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소위 부비트랩이 되어 다른 지체들에게까지 치명타를 날립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로 믿고 그 복음의 길에서 대가 지불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은 환경과 조건이 어떻던,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간에 그들 안에 주신 내적 기쁨이 지속될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바로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이루어가는 길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을 참 그리스도인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고 확실하게 이해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위대한 편지 안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결코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좀 좋은 소리로는 들리겠지만 여기 하나님의 약속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영적인 선물들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레마의 말씀, 나의 복음으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에 관해 몇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검증해야 합니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고 있는 자입니다. 17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그리스도인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여야 합니다. 은혜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존재가 아닙니다. 솔직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아래 거할 수 있도록 긍휼의 눈으로 우리를 살피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어 그 은혜를 매 순간 누리고 있습니까? 오직 주님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고 고백합니까? 이것은 나의 상황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자각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은혜 안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으면, 그것을 자각하고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자리마다 불평과 탄식이 아닌 감사가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왜냐고요? 만일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면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내가 어디를 가든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지 나는 아버지의 보호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8:31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나아가 그런 감사와 함께 우리는 그 무한하신 은혜를 나눠야 할 사람들이 떠오를 것이고, 그래서 자신만 그 복음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바울은 빌 14-5절에서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기도했다고 했는데, 그들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은 적극적으로 복음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고 하셨던 것처럼 은혜에 참여하고 나눔으로써 우리는 복이 흘러가는, 은혜가 흘러가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지 않고 화가 흘러가면 그것이 어찌 그리스도인의 삶입니까? 자기가 좀 살아보겠다고 다른 사람 죽이면 그게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입니까? 자기 좀 불편하다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공격하면 그게 무슨 그리스도인입니까?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에 함께 참여하는 자라면 우리는 서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위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관계 안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는 내 안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발생하는 것들입니다. 은혜가 없는데 어떻게 평안하겠습니까? 은혜가 메마르면 심기가 불편해지고 과민해집니다. 그로 인해 모든 환경이 왜곡되고 길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에게 화가 나 다투고 나아가 모든 사람과 다툽니다. 이 문제해결의 열쇠는 내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 이렇게 은혜가 회복되어야만 그 삐뚤어짐이 치유가 되고 샬롬이 이루어집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성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라는 말은 부르심을 받아 따로 구별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따로 거룩하게 구별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세상에 살고 있지만 다른 존재들입니다. 세상의 힘 안에 예속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은총 아래 있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두 도성의 시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고 구별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 안에 있는 성도들이 모인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멸망과 사망의 질서로부터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하여 여러분을 성도로 불러내셨음을 믿습니까? 참으로 믿는다면 스스로를 세상 사람들로부터, 세상의 행동과 행실 그리고 관습으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구별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우선순위입니다. 그러고 나서 세상으로 나아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즉시 세상에 함몰될 것입니다.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세상을 향해 거룩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영향을 받고 세속화되어버립니다. 우리를 성도로 불러주셨는데 말입니다.

말씀에는 놀라운 위로와 위안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축복을 너무도 적게 누리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 은혜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가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위안은 성도들, 즉 자신이 따로 구별되었음을 인식하고 더 구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성도들만을 위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싸구려 은혜가 아닙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안에는 이런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마음은 그와 같은 선물을 원합니다. 거짓 선지자 발람도 민수기 2310절에서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결과를 꿈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한다면, 의인의 삶과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살기는 회피한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합니다. 자기 누릴 것 다 누리다가 그런 축복을 얻고 싶어 합니다. 결국 그 끝이 어찌되겠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인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약함을 강함으로, 끈기 없음에서 지속함으로 바꾸어줄 수 있는 외부적인 상황이 우리에게는 24시간 내내, 그렇게 평생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성도됨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성도됨을 이루기 위해서 단순히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나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울이 말하고 있는 바가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의 성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바울이 말하고 있는 모든 것에 절대적으로 핵심입니다. 복음은 모호하고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선한 삶을 살라는 권면도 윤리적인 교훈도 아닙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구원이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윤리교사가 아니십니다. 구원자이십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본질이 아니라면, 그리스도가 절대적인 핵심이자 중심이 아니라면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매우 선하고 종교적인 사람일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이기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 분의 십자가와 부활이 온전히 우리를 위한 것으로 여겨지고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분과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성도됨이 그리스도의 거룩함, 그 분의 의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생명의 연합으로 인해 예수님의 생명이 내게 있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으면 좀비적인 가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좀비의 특징은 산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 성도됨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은혜 안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확신합니까? 그분과 함께 죽고 부활했음을 믿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어 그 생명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6절 말씀의 확신이 우리의 확신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은 생명 살리는 일이요 구원의 일입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사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우리에게 실재가 되고 적용되며,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완성을 보장해주십니다. 우리가 진행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견인하시는 것입니다. 끝까지!!!

이러한 놀라운 약속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의 성도들,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받는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자신의 이기심,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 은혜를 힘입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오. 오늘 하늘의 약속이 여러분의 약속이 되어 그 약속을 누리는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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