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7월6일 주일설교동영상
[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 마5장5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세상은 누구를 선호하는가?
요즘 같이 강함, 추진력, 결단력 등이 최고의 덕목으로 꼽히는 시대에 과연 ‘온유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들은 온유한 사람들을 약하고 비굴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늘 양보해야 하고, 자신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온유’는 인간이 가져야 할 덕성이라고 했습니다. 온유함은 지나친 분노와 전혀 분노하지 못하는 무능력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쓸데없이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옳은 일을 위해서, 옳은 사람을 위해서, 옳은 순간에 적절한 시간동안 분노하는 사람을 온유하다고 묘사했습니다.
시경에 온유돈후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성정이 온화하고 사람을 잘 이해하며 너그럽고 후덕함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오늘 날 온유돈후를 잃어버렸습니다. 남들을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남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발산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성과를 내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욕하면서 또 내심 부러워합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에 이어서 이 땅의 온유한 자들을 향하여 세 번째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5절“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예수님은 어떤 의도를 갖고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걸까요? 온순하고 순박해가지곤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자들은 늘 소외되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조금 갖고 있는 것까지 잃어버리곤 합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이 세상의 논리가 장악하고 있는 군중들을 향하여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온유한 자가 복이 있고 그들이 결국 땅을 차지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37편11절의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순간 사람들은 시편37편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마태복음 5장5절은 사회학적인 해석이나 인간의 성품과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시편37편에서 드러나고 있는 말씀 속에서 온유한 자의 모형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와 불평, 시기를 멈추라
시편37편은 불의한 자의 폭행과 불공평한 탈취가 난무하는 상황 가운데 놓여 있는 자에게 그와 같은 상황을 불평하거나 시기하지도 말고 부러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1절“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7절“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형통함을 바라보면서 시기하지도 말고, 불평하지도 말고, 화도 내지 말라고 하시니 우리보고 어찌 살라는 말씀인지?
우리가 세상에서 불의한 자들이 잘 나감을 보고, 부러워하고, 불평하고, 분을 내다보면 거기로 부터 또 다른 악이 우리 안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8절에서“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말씀하였습니다. 온유함으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악이 이 땅에 창궐해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앞에
7절“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말씀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마지막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온유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인내하는 자입니다. 3절에“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지금 보여 지는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을 믿고 자신은 자신이 가야하는 길만을 올곧게 가는 것이 온유한 자라는 것입니다. 4절“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온유한 자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입니다. 결국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얄팍한 인간적인 수단과 능력, 인맥 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온유한 자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기뻐하기에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5절“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온유한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기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고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입에 불평도, 시기도, 분노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를 통해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자신을 낮추게 되고, 언제나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온유한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정당한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땅을 차지하는 자
예수님은 이처럼 온유한 자들이 복 있는 자임을 선포하시면서 그들이야말로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표현은 과거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였던 역사적 경험과 연결이 됩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배려로 인해 가나안 땅을 분배할 수 있었듯이, 온유한 자 역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을 누리게 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복 선언은 단순히 문자적인 의미로만 여길 수는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에 대한 보상으로 실제로 땅을 차지할 수 있는 현세의 축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보다 근본적인 성취는 종말론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장차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아 영원히 거하게 된다는 것은 성경의 일관된 사상입니다. 그 점에서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 번째 복도 천국의 복과 연결이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온유한 삶을 살되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작은 보상이 아니라 장차 주어질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보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기꺼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온유한 자는 없어질 땅이 아니라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새 땅 곧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때 우리가 하늘을 보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이 땅의 삶도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온유를 배우라
온유함은 그냥 이루어지는 덕목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로 나아가 그 삶을 배워야 합니다. 마11장29절“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헬라의 사상처럼 인간의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변화된 새로운 성품을 말합니다.
어떤 부당한 환경 속에서도 겸손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이웃을 위해 그들을 품고 자신을 내어 주는 최고 모형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특별히 온유는 그리스도의 관용과는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고후10장1절“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엡4장1-2절“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딛3장2절“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본문의 온유한 자는 외부로부터 닥치는 억압과 고난에 대하여 거칠게 반발하거나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결사적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에서 벗어나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영적 평정을 유지하는 자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말씀하는 온유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한 온유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연약하거나 줏대 없이 이리저리 쉽게 굽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약하고 비굴한 것처럼 보이지만 강포한 자를 굴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품고 가는 힘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생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에 주님을 본받아 늘 온유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온유함은 우리로 하여금 어마어마한 것을 영원히 얻도록 하기 위해, 작은 것들을 일시적으로 포기하도록 우리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길은 세상의 길과 다릅니다. 그것은 자기포기가 세상을 지배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주님을 믿고 내려놓음을 통해 이곳에서 안식의 기쁨을 누릴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가 누릴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생명교회]
블로그 http://jesuslife.tistory.com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csg0914 (최수근 목사 페이스북)
트위터 https://twitter.com/csk1130(최수근 목사 트위터)
유튜브 http://www.youtube.com/csg0914
홈페이지 http://www.jesuslifech.org
교회주소: 서울시 송파구 가락2동 124-22
전화번호 교회: 02-402-9191
담임목사 핸드폰: 010-8021-9001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에 대해 상담하고자 하는 분들은 SNS나 전화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설교동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마5장7절 ] (0) | 2014.07.20 |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 마5장6절] (0) | 2014.07.13 |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마5장4절 ] (0) | 2014.06.29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마5장1-3절 ] (0) | 2014.06.22 |
[ 복음의 경보가 울렸습니다 : 마4장12-22절 ] (0) | 2014.06.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