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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마5장1-3절 ]

by 최수근 2014. 6. 22.

2014년6월22일 주일설교동영상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마5장1-3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왕의 취임연설

마태복음 5-7장은 취임연설의 특성을 갖습니다. 51절을 보면 마치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는 왕같이 앉으시고, 제자들은 어전에 나오는 신하들처럼 나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왕으로서 예수님은 취임연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 그 나라에서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산상수훈이라고 말합니다. 산상수훈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제자들이 품어야할 삶의 기준이자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다른 삶을 요구하십니다. 68절에서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명령은 산상수훈 전체의 어조를 명료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은 이 땅의 삶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고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지 말라는 겁니다. 

구별된 삶의 요구

예수님의 요구는 그 당시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이 아닌 파격적인 것입니다. 이처럼 구별됨을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이런 신분의 변화는 그에 걸 맞는 삶이 요청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그 동기와 행위와 일과 언어와 사상과 우선순위에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맨 앞에 모시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와 같은 선택의 길에 서서 세상이 어떻게 보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선언하시면서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복이 있나니

복은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를 끄는 주제입니다. 복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는 마카리오스라는 단어입니다. 현재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물질적, 심리적인 복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복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 아쉐르와는 개념적으로 좀 차이가 있습니다. ‘아쉐르는 사람이 삶에서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이 실현되는 것을 체험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느끼는 심오한 기쁨을 가리킵니다.

세상적인 복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복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14415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3312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복은 이미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잘하고 있고 그것이야말로 그들에게 복이라고,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나라에서 누리게 되는 복을 선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 반대인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은 부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지상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다.”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와 같은 세상에서 지금 역설적인 일들이 실현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이 말씀은 바로 복음의 선언입니다.

가난의 의미

3절에서 예수님은 첫 번째 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도대체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무슨 뜻에서 말씀하신 걸까요? 헬라어 '프토코이'는 단순하게 일용할 양식이 없는 물질적 빈곤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내적인 위로가 결핍되어 있는 상태의 사람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가난한 자는 경제적 수탈과 사회적 억압에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가난한 자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자들입니다.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가난과 경건이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소외된 삶에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데 힘을 썼고, 하나님께서 관심의 대상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부요한 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6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이것은 부가 가져오는 교만함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부로 인한 자기 신뢰는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와 같은 교만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8:11-18

심령이 가난한 자

예수님은 가난한 자심령이란 말을 첨가하시면서 구약의 가난한 자에 대한 의미를 보다 더 강화시키셨습니다. 66:2“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심령의 가난은 성령으로 새롭게 된 자들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신 영적은혜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공허함을 깨달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 물과 피로 거듭났다면 이 영적인 겸손함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을 의뢰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교만한 자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서기를 실패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칼뱅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그 자신 안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어 자비를 구하기 위하여 성소로 달려가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심령의 가난함은 자기부인이요 자기부정입니다. 그 점에서 심령의 가난은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품성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겸손하게 간청함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는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심령이 가난한 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지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관찰해보면 분명하게 들어납니다. 자신의 영적인 가난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고백함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늘 주님을 사모하고 그 은혜에 목말라있습니까?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주시는 구원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 마음이 가난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이와 같이 심령이 가난한 자를 예수님은 복 있는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바로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로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거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 사람들에게선 상상할 수 없었던 은혜의 선물입니다. 더군다나 값없이 주시기에 기쁨이 배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는 기쁨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은혜로부터 솟아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노력하는 자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주어집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 있는 것은 그 복을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증 받았고, 여기서 누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현실적인 역경에도 불구하고 천국은 이미 그들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삶이 어찌 되겠습니까? 전폭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언어가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굳이 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해서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그 뒤에 따르는 모든 다른 은혜들의 초보요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가난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자만이 이 땅에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위하여 사용할 자유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오직 모든 것을 누리는 자만이 그 어떤 것도 아낌없이 내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자기의 소중한 것들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심령의 가난함을 완벽하게 보여주신 분입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자기를 비어 종으로 오신 예수님,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품어야 할 가난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살고, 그 곳에서 높아지는 방법은 자기를 부인하고 철저하게 자기를 낮추는 영적 가난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것을 보잘 것 없는 인생으로 보지만 예수님은 이 삶을 가장 복된 삶, 천국을 소유한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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