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6일 주일설교동영상
[주의 계명과 복: 시편 119편 1-8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새해가 되고, 설 명절이 되면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인사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이 인사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는 그냥 굴러들어오는 복일 것입니다. 운수대통입니다. 소위 로또 대박입니다. 다른 하나는 복 받을 수 있는 유효한 일들을 통해 풍성한 결과를 얻으면 좋겠다는 덕담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해석이 좋습니까?
성경에서의 복은 철저하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연결됩니다. No pain, No gain. 그냥 대박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냥 어느 날 하나님의 복이 넝굴 채 굴러들어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편 119편 1-8절은 우리에게 신앙의 기본적인 시각을 건강하게 세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특별히 1-3절은 시편 119편 전체 구절을 개괄하는 선언적인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복이라는 단어를 1절에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 2절에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와 연결해 복되고 온전한 삶의 방편과 목적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해서만 바르게 규정될 수 있다고 노래합니다.
1절에서 시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에서 “행위가 온전하여”라는 표현은 ‘인생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자들’, ‘올바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의 평가가 아닙니다. 3자의 눈으로 관찰하여 그 사람이 얼마나 옳은 삶을 살았는지를 지켜보고 과연 그가 그렇게 살았다고 평가된 결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그가 갖고 있는 도덕적인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것은 그에게 복된 결과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를 복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길입니다.
따라서 1절의 말씀은 성경이 말하는바 복의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사람이 바른 과정을 밟으며 바른길을 걸음으로 인해 성공과 번영에 이르는 것인데, 그 기준이 하나님의 법에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다시 말해 ‘행위 완전하여 복이 있는 자’ 즉 인생을 올바로 살아감으로써 참된 만족과 행복을 소유한 자는 바로 여호와의 법을 행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의 지혜나 궁리,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이나 수양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실은 세상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온전한 삶의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참된 행복과 번영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근본적인 복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며 그 말씀을 생활화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다음 2절에서는 앞선 1절과 마찬가지로 참된 행복과 만족을 보장하는 인간의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말씀합니다. 2절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진정한 의미에서 율법을 지키는 삶이란 그 율법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구하는 삶, 곧 그분과의 인격적인 교제의 과정이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는 곧 율법에 대한 경청과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인격적 관계는 결코 부분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전인격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을 구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 4:29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전심으로 그를 구하면 그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전심으로의 전제, 전심인지의 증거는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중심되는 삶을 살아가면 그래서 주님의 바른길, 생명의 길을 걸어가노라면 그 삶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의 말씀의 기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의 삶에 불의함이 머물 수 없습니다. 3절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행해야 할 옳은 것을 보여주시고, 또 행하지 말아야 할 ‘불의’를 말씀해주십니다. 그래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은 불의를 행하지 않고, 오직 주의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주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4절에서 자신이 법도를 잘 지킨 것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
1-3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의 삶이 참된 행복과 은총의 삶임을 선언하였습니다. 이어지는 4절에서부터 7절까지는 복의 기준이 되는 주의 법을 지키려는 소망을 노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하나님 명령하신 인간 본연의 사명이기에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명하사’ 에 해당하는 ‘치우위타’의 원형 ‘차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삼상 17:20), 주인이 일꾼에게(룻 2:9), 왕이 신하에게(삼하 21:14) 책임을 부과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는 단순한 권고나 부탁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한 명령입니다.
이처럼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하셨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이 반드시 준행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삼중적인 강조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행복과 은총을 얻기 위한 수단이나 선택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본분이요 사명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되며 전심전력을 다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심전력을 다한다고 해서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인은 간구합니다. 5절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시인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이를 위해 시인은 자기의 길을 굳게 정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말씀에 따라 살겠다는 의지를 고백(8절)하기에 앞서서 먼저 자신이 말씀에 따라 살 수 있도록 삶이 흔들리지 않게 해주시도록 간구한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율례들을 성실하게 지킬 수 있도록 내 길을 탄탄하게 하셔서 흔들리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 이러한 간구는 하나님의 율법을 자신의 능력과 힘만으로는 온전하게 지킬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견고하게 붙잡아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계명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며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6절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부끄럽지’라는 말은 보통 ‘실패’, ‘패배’, ‘굴욕’의 의미로 앞선 1절과 2절에서 ‘복’의 의미로 사용된 ‘아쉬레’와 반대의 개념으로 봅니다. 시인은 이러한 반대 개념의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실패, 패배, 굴욕을 당치 아니하리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도 실패를 맛보며 고난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6절에 부끄럽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는 궁극적 실패가 아닌 주님 앞에서 충성된 종임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그가 말씀에 서 있고, 더욱 말씀을 배움으로써 살아갈 때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7절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게 될 때에 우리 완악한 심령이 변화를 받아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선다면 우리는 결코 교만해지거나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헛되이 자기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겠다고 서원하며 하나님의 보호안에 있기를 간구할 수 있게 됩니다. 8절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8절의 고백을 보면 시인이 아직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 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처한 고난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실 것을, 그가 순종하고 지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확신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기뻐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 동행하여 주실 것을 그가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전심으로 주를 구하며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기를 힘쓰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2020년 말씀 안에 거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풍성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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