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일 주일설교동영상
[주의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시편 119편 33-40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2020년 우리 교회에 주신 비전은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과 계획이 따르지 않으면 한 해 동안 입에만 오르는 슬로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진정 새로워지려면 새롭게 되기 위한 과정에 필요한 인풋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냥 새로워지지는 않습니다.
오늘 시편 말씀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새로워지기 위해 한 해 동안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33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시인은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쳐 달라고 기도합니다. 왜 가르쳐달라고 기도합니까? 가르침을 받고 그것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말씀 안에 서 있겠다는 결단입니다. 디모데후서 3:14에서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가르침을 받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확신할 수 있다면 그 분을 위해 우리는 목숨까지도 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끝날까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툭하면 던저 버리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어 34절에서 시인은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가르침을 받고, 그것을 온전히 깨닫게 되었을 때 시인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온 마음을 다해 지키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말씀을 배우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그 말씀으로 인해 자아가 깨어지고, 우리 자신의 작은 세계관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지식 혁명이 일어나야만 우리는 이전의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벗어버리고 진정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깨닫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말씀의 기쁨이 있을 때 우리는 온전히 주의 계명의 길로 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인도 35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한다고 고백을 합니다.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말씀에 따라 사는 삶 자체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고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앞선 33절 하반절과 34절 하반절에서 말씀에 대한 충성과 헌신의 의지를 충분히 드러낸 시인은 본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자신이 기뻐하는 바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길을 걸어감을 즐거워하지 않고, 그것이 무거운 의무가 되고 짐이 된다면 그래서 그 길이 고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찌 끝까지 그 길에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즐거움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말씀의 빛을 따라가기를 결정하고 나아갈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그런 상황을 그냥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훼방하고자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찢어놓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하나 된 마음으로 주의 증거들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하는데,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세상을 향하도록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이것을 우리 자신이 이겨내고, 아무리 지켜내려고 해도 쉼 없이 도전해오는 사탄 앞에서는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시인은 간절히 기도합니다. 36절에서 자신의 마음이 말씀에 머물러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말씀에 우리 마음이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이 땅에서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목숨 걸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세상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시인이 금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빠차으’ 탐욕은 문맥상 특정한 죄악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 되지 않은 인간의 모든 삶의 방향을 포괄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불의한 이익’을 추구하지 않도록 간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보다 온전하게 헌신하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탐욕으로 향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이유는 사람이 그릇된 욕구, 즉 탐욕에 사로잡히게 될 때 자연스레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이 말씀에 가 있어야 맘몬의 폐해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오직 말씀을 향해 있을 때 우리는 허탄한 것을 바라보지 않게 될 것입니다. 37절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허탄한 것을 보지 않고 말씀을 향할 때 우리가 주의 길에서 살아나게 됩니다. 그 길을 벗어나 허탄한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라 죽은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대변되는 모든 허탄한 것들은 우리의 영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17절에서 이어서 말씀하죠.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살아나기 위해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세워져야 합니다.
38절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향해야 하는 것은 이를 통해 우리가 주를 경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말씀이 든든하게 세워져 가기를 축원합니다.
39절 ”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
시인은 주의 법도를 사모하고 이를 즐거워하며 지키려는 자신의 바람도 있지만 이 마음을 저해하고자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자신 안에 부끄러운 요소들를 제거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런 영적인 싸움이 말씀 안에서 말씀을 의지해서 마지막 날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지켜 행하고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즐거워함으로 나아갈 때, 그 가운데 방해하는 다른 장애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진정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처럼 자신의 사모함을 고백하며 40절에서 주의 의로 살아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40절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는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모함을 힘입어 주의 말씀의 의로 자신을 살아나게 하기를, 말씀 안에서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으로 살아가기를 명하셨습니다.
신명기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올 한해 말씀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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