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3일 주일설교문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요 1장 1-13절]
사람들은 사실보다는 감정에 따라 움직이곤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모호한 감정이 아닙니다. 내 감정이 뜨거워졌다고 해서 은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오직 기독교 진리에 기초할 때만이 지속될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진리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현재적 실재와 그분의 주되심, 오늘 우리 가운데 계신 그분의 임재로 우리가 날마다 나아갈 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과 확신에 힘이 더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에 이르는 과정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성은 단지 그 분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위대한 선생이었다는 사실에 있지도 않습니다. 예수의 중요성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도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영원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생명 안에서 그리고 특별히 우리의 연약함과 고통 안에서 우리와 동일하게 되신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의 투쟁을 함께 나누면서 공감하고 임재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이 세상 속에 친히 오셔서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선포되고 있는 복음입니다.
그렇지만 말씀이 육신이 된 경이로움 앞에서 사람들은 열광하기는커녕 무슨 일이 있는 건지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5절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세상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둠은 지금도 여전히 빛을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무관심하기까지 합니다.
이어 10절에서도 세상의 영적 무지를 지적합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상은 이미 죄로 물들었고, 하나님의 통치와 주장에 반항하도록 변질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피조물로서 더 이상 그들의 원천이신 창조주를 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러한 세상에 오셨고, 어둠으로 대변되는 세상은 어둠의 속성처럼 당연하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택하신 자기 백성들조차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우리를 소름 돋게 합니다. 11절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이스라엘의 거부보다 더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악함을 신랄하게 나타낸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선민으로 삼으시고 말씀의 계시를 통해 보여주신 약속된 메시아를 오랜 세월 목마름으로 기다려 왔던 민족입니다. 참으로 긴 시간의 기다림 끝에 약속대로 그 분이 오셨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보다는 오히려 십자가에 죽이라고 외칠뿐 만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비극입니다. 이런 일이 자행된 것은 약속의 말씀이 아닌 그들의 기대치, 그들의 어둠과도 같은 수준으로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밀하게 메시아를 묘사하고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오늘 기독교 신학의 커다란 아이러니는 인간의 상황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거부당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입니다(요 3:19). 만약 그 계시가 세상의 방식대로 오고, 만약 그것이 세상의 체제들을 긍정하는 메시지이고, 인간의 능력의 확대를 지지해 주는 것이라면, 그런 계시는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둠의 정체를 밝혀내고, 지은 죄를 나열하며, 교묘한 형태를 띤 불신앙의 정체들을 밝힌다면, 혹독한 적대심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지금도 여전히 어둠으로 대변되는 세상은 자신의 어둠을 드러내는 빛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더욱 집요해졌습니다. 거기에 더해 왜곡되고 변질된 종교적 성향을 지닌 그리스도인들도 그와 같은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자기가 기대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면 언제고 예수님을 내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왜곡된 신앙은 믿음의 주까지 배격하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0), 그 누구도 이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늘 깨어있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진리를 거부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선호하는 최신 유행의 진리들로 대체하려는 곳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세상의 함정은 희망을 그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규범들 속에서 찾으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이 꿈이 덧없는 것임을 늘 증명해 왔습니다. 그래도 그 어리석음이 반복됩니다.
종교적인 사람들이 실족하는 함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함정은 인간에게는 영적 자질이 있기 때문에 종교적 헌신과 실천을 통해 구원의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안으로부터의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세상의 질서 안에 갇혀 있어 어둠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는 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순종과 헌신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거짓된 길, 자기 위안의 길, 종교의 길을 가고 있을 뿐입니다. 여전히 그 수준은 빛을 깨닫지 못한 어둠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어둠의 눈으로는 결코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광, 쉐키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인간들이 품어온 반역의 마음들을 실제로 제거해내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 포맷되어야만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빛이신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어둠을 넘어서서 다른 영적 차원으로 나아가는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깨닫지 못한 어둠도 아닌, 영접하지 않은 자기 백성도 아닌,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13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들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어야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분의 이름을 믿고 자신의 삶을 그 분께 바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거듭남은 우리가 추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변모와 희망은 인간 노력의 열매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고, 영접하고, 믿으면 그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주님에 대한 믿음은 엄청난 지위를 우리에게 제공하여 줍니다. 이것은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상관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한 존재이며 하나님이 끔찍하게 사랑하시는 자녀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세가 있습니다. 어둠을 대적할 힘이 있습니다. 사소한 세상의 문제 앞에서 더 이상 작아질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고 있다면 무엇이 무섭고,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걱정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노라 고백하며 주장하는 우리가 자주 무기력하고 불행하며 힘겨워하고 허덕거리는 늪에 빠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둠의 수준이라면,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기 백성의 수준이라면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의 영광 가운데 살아갈 수 없습니다. 빛의 자녀가 아닌 어둠의 자녀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복음의 진리를 알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 분을 신뢰함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아간다면, 그로인해 구원의 복음이 주는 복을 온전히 누리게 된다면 우리는 환희와 기쁨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복음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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