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우리 이웃과 함께!!!
주일예배설교원고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요 2장 1-11절

by 최수근 2019. 3. 26.

2019년 3월 24일 주일설교동영상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요 2장 1-11절]

기독교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났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채 예전의 삶의 자리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가만히 있어서 지금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변화의 주체는 우리가 아닙니다. 내가 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힘과 지혜, 능력으로는 같은 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오늘 변화를 위한 표적이 필요합니다.

요한은 표적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표적이란 적은 믿음만이라도 갖고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열리고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현재 속으로 임하는 순간입니다. 표적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땅에서 하늘의 현실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첫 번째 표적의 이야기 주제는 변화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실 때, 그리고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말하듯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실현되는 다른 차원의 현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물리적인 어떤 변화가 아닙니다. 화학적 변화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다시 회귀할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변화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 된 일인지 어느 순간 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뭔가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 땅에서의 혼인잔치는 마을 잔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며 공생애가 시작된 지 사흘째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 일은 일상적으로 있는 일입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음식물을 조달하는 일을 어느 정도 책임 맡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 당시 결혼식은 때로는 일주일씩이나 계속되었기에 많은 양의 음식과 포도주가 필요했는데, 그만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연회는 갑작스럽게 중단되었고,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소리에 애를 태우게 됩니다. 이 상황은 축하하러 온 손님들을 대하는데 심각한 실책이었고, 신랑 측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이런 경우에 소송을 제기하는 일까지 있을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음료가 고갈된 문제를 알려줍니다. 아직 그 어떤 능력이 드러난 것도 없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포도주가 없다고 하였을까요? 그녀의 요청은 본질적으로 그 분에게 자신의 필요를 알리는 것으로, 중보 기도에 대한 아주 좋은 모범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분 앞에 우리의 필요를 내려놓고,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응답하시도록 그 분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요청한 후에는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꺼이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는 기도는 공허랄 뿐입니다. 사람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하지만 그 기도를 뒤따르는 순종은 올려드리지 못합니다. 나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단만을 촉구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하십시오. 이것을 주십시오!!”

어머니의 이와 같은 요청에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 도움을 주기를 주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이루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렇지만 예수의 머뭇거림 가운데도 어머니는 단호하게 종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이 말씀은 기독교 시대에 있어서 하나의 표어가 되어 왔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생명의 소유자요, 공급자요, 변화의 주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순종한다는 것이 요한에게는 제자도의 본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던 가나안 여인에게 거절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 여인도 예수님의 단호한 거절 앞에 더욱 간절하게 요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이것이 순종입니다. 여기에서 회복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인들을 향해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이르시기를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사용되는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하인들은 물을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거기까지 좋았습니다. 그러자 당혹스러운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그냥 물일뿐인데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니요? 포도주가 떨어져 당황하고 있는 연회장에게 뜬금없이 물을 갖다 주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라고.... 그런데 물을 떠보니 그것은 물이 아니었습니다. 포도주였습니다.

하인들이 가져다준 포도주를 맞본 연회장은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해 신랑을 불러 이야기합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지시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아주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한데도 그 명령에 순종하며, 그에 따른 보상을 받습니다. 혼인 예식에 생기를 불어넣어 다시 즐거움이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에 의하여 생활의 질서가 뒤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 상황에서 연회장과 사람들, 심지어 신랑조차도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았던 하인들은 알고 있었기에 조금만 상황을 살펴보면 알 수도 있는데 즐길 뿐이었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지금 포도주가 된 물이] 어디서 났는가에 집중되었을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예수님의 어머니나 예수님의 새로운 제자들에게만 현실적이었습니다. 11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아는 것만으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묻는 것만으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변혁의 시대에 처한 사람들의 실존입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그 분의 빛 속에서 볼 수 있을 때만이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가나의 기적은 아들 예수의 숨겨진 영광이 평범한 가족 연회에서 계시된 장면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절대적인 새로움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삶의 새로운 모습이 교구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움 속에 있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압니다. 믿는 다는 것은 이제 옛 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가나의 결혼식에는 아마 마을 사람 대부분과 이웃 동네의 여러 사람들이 참석했을 것이다. 잔치 자리에서 포도주가 동나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일이 아니라 체면상의 수치요 사고였습니다. 이렇게 잔치가 끝난다면 가족들은 오랫동안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이 일이 자신들의 결혼생활에 불운을 가져다줄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에게 오셔서 뜻밖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신비한 주님의 긍휼을 목격하였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것을 통해 예수님이 사람들의 삶에 지금도 어떤 영향을 미치시는지 보여 주려는 게 이 이야기의 의도가 아닐까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자신의 실패와 실망을 마음속에 떠올리면서 기도하고 싶을지 모릅니다. 변화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는 마리아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에만 일어난 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전 생활의 밋밋한 물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 생활의 환희와 경이로움 사이의 대조를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영광을 식별해 내는 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하나의 표적입니다. 여기서 단순히 기적을 보고 놀라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이 기적이 나타내는 표징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때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주시려는 복이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 현실로 가는 길에 우리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제자들은 바로 이런 의미로 이 사건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만나지 며칠 만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그들 속에 생겨난 것입니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분과 동행할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다시금 우리 안에 회복의 기쁨, 삶의 희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