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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마4장1-11절

by 최수근 2014. 3. 16.

2014년3월16일 주일예배설교문

[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 마4장1-11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시험 족보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소위 족보를 가지고 시험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족보를 믿고 시험을 준비했다가 완전히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졸업한 장신대신대원입학시험에도 시험 족보가 있습니다. 먼저 입학시험을 치른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족보를 가지고 함께 스터디 한 친구들이 혼자 나름대로 열심히 시험을 준비한 친구들에 비해 좋은 성적을 올리곤 합니다. 그건 합격으로 가는 길을 먼저 경험한 이들이 보다 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길을 안내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주목해서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이들의 성공과 실패가 담겨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주옥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샘플들이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걸 통해 우리는 믿음생활의 시행착오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일들 가운데 힘든 부분도 바로 시험입니다. 매번 세상의 시험에 맞닥트리면 이기기보단 보기 좋게 넘어지는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건강한 신앙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을까요? 앞으로 몇 주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죄의 유혹을, 마귀의 시험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우리가 좀 멋지게 신앙생활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마귀에게 맥없이 얻어맞고 살지 맙시다 

여러분은 마귀의 시험, 죄의 유혹을 이기는 길을 알고 계십니까?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잘 알고 있는데, 우리는 마귀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니 쉽게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그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면 그래서 그대로 시행한다면 수월한 문제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시험에 이기는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도,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이스라엘도 넘지 못했던 유혹의 시험을 예수님은 물리치셨고, 우리들에게 그 시험을 넘어서는 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 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 쉽지 않겠습니까?

 

왜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나? 

보통 우리들이 죄의 유혹을 받는 것은 우리 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스스로 틈을 열어주면서 죄가 우리 속으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반대였습니다. 그 안에 어떤 죄성도 없는 분이시지만, 오직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예수님은 그 어떤 사적인 욕심과 정욕과 자랑으로 인해 시험받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은 시험에 들 이유가 없는 분이신데, 왜 굳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 광야로 가셨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두 왕국의 대결에서 우리들로 하여금 싸워서 이기는 법을 명확하게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참 하나님의 아들들이 어떻게 마귀를 이겨야 할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 배고픔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실 때의 상황은 금식으로 인해 육신이 몹시 지쳐 있을 때였습니다. 무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으니 얼마나 배고프셨고 육체적으로 기진맥진 해 있었겠습니까? 그럴 때 시험하는 자, 곧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그 앞에 섰습니다.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정말 그럴싸한 요구입니다. 예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능력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40일 동안 금식했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니? 너의 육신적인 배고픔을 위해 하늘의 능력을 사용하여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봐라!”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겠다.”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마귀의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주신 능력과 권세인데 자기의 필요를 따라 돌로 떡을 만드는 순간 마귀의 시험에 넘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건 소위 배임죄에 해당됩니다. 

사탄은 우리를 시험할 때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아닌 경제, 물질, 육신의 질서를 따라 살도록 시험합니다. 예수님도 금식하여 주린 상태에 있을 때 배고픈 육신의 필요에 호소하는 마귀의 시험에 직면하신 거예요. 물론 굶주림,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육신의 본능이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본능과 육신의 갈증과 욕망이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가 그 요구들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 건강, 능력, 재능, 돈을 가지고 그 일에 목숨 걸고 살아간다면 당장은 만족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심각한 손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귀는 이를 이용해 우리를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틀 속에 가두어버림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으로부터 분리되도록 만들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용하는 수단이 될 수 없는 분이십니다. 비록 그 목표가 아무리 경건하게 보이더라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는 마귀 앞에서 넘어지는 거예요.

 

예수님의 첫 번째 대응 

이처럼 당장 우리에게 시급한 경제, 물질, 육신의 필요에 대한 시험으로 우리 앞에 선 마귀를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마귀를 대적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답을 우리는 찾을 수 있습니다.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신명기83절을 인용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고,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육신의 필요로만 사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육신의 생명을 위한 떡도 중요하지만 거듭난 자로서 거룩한 생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모든 말씀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한다고 예수님은 응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리신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지녀야 할 삶의 기본적인 원칙을 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경제는 사람들 사이에 인생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경제가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앙을 경제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땅의 풍성함만으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의 가치요, 행복이요, 즐거움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이 가치를 외치지 않는 한 우리는 죽는 날까지 마귀가 갖고 덤벼드는 이 시험에 순간순간 노출되고 말 것입니다. 평생 이렇게 마귀에게 시험거리가 돼서 사시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감으로 더 이상 마귀의 시험거리가 되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시겠습니까?

 

마귀의 두 번째 시험: 과시욕 

첫 번째 시험에 실패한 마귀는 예수님을 순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 두 번째 시험을 하였습니다. 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이것은 예수 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로 결단한다고 하는데, 하나님만을 신뢰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사랑하는 이들을 아무런 해도 입지 않게 하실 거라는 이 시편9111-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성전 밑으로 용감하게 뛰어보라고 외치는 끈질긴 사탄의 시험인 것입니다. 말씀으로 대적하는 예수님을 향하여 마귀도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한 겁니다. 뛰어내려서 말씀처럼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참 아들이고, 없으면 참 아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마귀도 말씀을 인용했지만 이 의도는 말씀을 신뢰함으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이고, 거짓 교사들이고, 거짓 그리스도인들이고,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이단들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잘못 사용하는 일에 우리가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가 두 번씩이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렇게 해보라고 시험한 것은 마태복음3장의 세례사건과 연결이 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시기 전에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는데, 그 때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하나님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두 번에 걸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말하면서 시험을 한 겁니다. 여기서 마귀의 의도는 예수로 하여금 세례 때에 드러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능을 증명해보라는 겁니다. 사람 들 안에는 자신을 드러내고픈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기 과시욕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과시욕은 마귀의 집중공격 대상이 됩니다 

사탄 마귀는 집요한 존재입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 내면에 뭔가 굉장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갈망을 끊임없이 부추겨 오고 있습니다. 그 달콤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래서 자기를 들어내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대응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능력을 통해 뭔가를 보여주도록 마귀는 거듭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여기서 시험하다의 뜻은 도전하다. 도발하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 엉터리 말씀인용으로 하나님을 시험함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마귀가 제안한 대로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오히려 시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뢰는 내가 그분을 의지하고 끝까지 그분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지 그 분의 도움을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출애굽기17장에 이르면 르비딤 광야에서 물이 떨어지고 갈증이 심해지기 시작하자 온갖 불평을 늘어놓으며 모세와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의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맛사라는 곳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사탄 마귀가 쳐놓은 덫에 걸린 겁니다. 그렇게 불신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그들은 광야에 다 죽습니다 

여기에 대해 동일하게 도전해오는 사탄에게 예수님께서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러한 보호를 검증하기 위해 하나님을 떠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구가 아니십니다. 혹시 우리 신앙을 이유로 하나님의 신뢰를 일부러 시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길을 멈추십시오. 하나님께서 행하실 때까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참고 기다리십시오. 그 길이 시험을 이기는 길입니다.

 

마귀의 세 번째 시험: 천하만국과 그 영광 

마귀는 끈질기게 예수님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벌써 두 번의 시험에 완패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평지에서 성전꼭대기로, 성전꼭대기에서 높은 산으로 이동한 것처럼 세 번째 시험은 단수가 높습니다. 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눈 한번 찔끔 감고 나에게 한 번 엎드려 경배만 하면 천하만국의 모든 영광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마귀는 속삭였습니다. 사탄은 드디어 자기 본성을 드러내며 예수님을 유혹한 것입니다. 사탄은 단순히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치명적인 독으로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가 다스리는 이 세상을 빼앗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의 생의 목적과 관련된 이 세상 나라를 절 한 번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더 없이 좋은 거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참 목적을 내려놓도록 하는 소리입니다. 마귀는 십자가 없는 영광, 고난 없는 목적의 성취를 유혹한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 없는 구원을 이루라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탄은 오늘도 고난 없는 영광, 일확천금의 유혹으로 우리들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런 사탄의 시험 앞에서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자신의 영혼을 팔곤 합니다. 이생의 자랑을 위해, 자기의 높아짐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이렇게 행동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 뒤에 펼쳐질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풀무불 속에 던져졌지만 누가 지켜주십니까? 하나님이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전 보다 더 확실한 권세를 왕으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내가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대응 

이처럼 세 번째 시험은 누구를 바라보며, 누구를 예배하며 살 것이냐는 마귀의 시험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인간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만 하면 천하만국의 모든 영광을 제공하겠다는 사탄을 엄히 꾸짖고, 물리치셨습니다. 10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와 같은 마귀의 시험 앞에서 우리는 거듭된 유혹을 뿌리치신 예수님처럼 모든 삶의 영역, 삶의 매 순간 선택에서 하나님만 경배하기를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섬길 수 있겠습니까? 참 하나님의 아들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과정과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아담은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최상의 조건에 있을 때 시험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40일 동안 금식하신 이후 외로운 광야에서 최악의 상태에 있을 때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사탄의 말을 따라 시험에 넘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이 땅이 오랜 동안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신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였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만을 경배하며 섬기셨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자들에게 생명과 승리와 통치권을 되돌려 주셨습니다. 결국 패배한 마귀는 예수님으로부터 도망을 갔습니다.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첫째 사람 아담이 경험했고,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경험했던 이와 같은 시험들은 오늘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회복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로서는 반드시 통과하고 승리해야 할 영적싸움입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길을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사탄을 대항하는 일에 예수님은 신적인 권능에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우리에게 예수님이 시험에 이기신 일은 결코 유익하지 않은 사건입니다 

어떻게 보여주셨습니까? 오직 예수님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유용될 수 있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시험을 이기고 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가 올 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답을 찾는 것입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8:3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6:13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6:16 

이 모든 말씀이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독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신 이유가 뭘까요? 이는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귀의 시험에 빠져 하나님 반대편에 섰던 불신의 모습들을 반향 하는 것입니다. 먹을거리가 떨어지고 굶주림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했던 그들의 모습, 하나님의 권능을 의심했던 불신의 모습,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했던 모습 등을 반향 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거듭 마귀의 이와 같은 시험 앞에서 넘어졌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이 무너짐을 허용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겪은 시험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새로운 출애굽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된 교회는 예수님께서 이겨내셨던 여러 유혹들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그 모든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외로운 광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거기에서 하나님 편에 서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거역하느냐를 결단하도록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시험에 무너져 하나님을 불신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 서시겠습니까? 아니면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마귀를 물리치신 예수님 편에 서시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일치하여 철저히,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만 신뢰하는 곳 어디에서나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사탄의 위력은 무너지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마귀의 시험은 우리의 위협거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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