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1월13일 주일예배설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빌2장1-11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지난 달 빙판길 낙상사고가 2만4000건이나 됩니다. 누군가는 치우겠지? 하는 생각에 골목길 곳곳이 내린 눈으로 빙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주거용 건물 출입문 앞 1m, 비주거용은 주변 1m까지 소유주나 점유자, 관리자가 눈을 치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벌규정이 없는 권고 사항에 불과해 실제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드물다고 합니다. 혹시 자기 집 앞이나 자기 점포 앞 도로에 내린 눈을 치워보셨습니까? 내 집, 내 점포 앞 눈은 내가 치우는 것이 시민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의식이 실종된 자리엔 빙판길만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아직 우리 사회 전반을 보면 자기 집, 자기 점포 앞 눈 치우는 작은 일상에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의식이 성숙단계에 이르지 못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님비현상, 지역감정, 사회의 양극화문제, 노사갈등, 보수와 진보의 끊임없는 대결 지난 한해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매번 성숙한 사회에 대한 꿈을 가져보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땅엔 자그마한 소망이 있습니다. 860만의 기독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가 타락하면 이것처럼 비극적인 일은 없습니다. 교회의 타락이 극에 달한 중세가 암흑기인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세상의 변혁의 중심에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성숙한 교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준비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지난 몇 주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삶에 대해 에베소서와 빌립보서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예수생명교회와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성숙한 모습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단순한 사람들의 모임, 즉 남자들과 여자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남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빌1:6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삶이 실생활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는 수준은 높은 차원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막연하게 제시되지는 않습니다. 분명합니다.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 하라.”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무엇보다도 그 기준점이 하나님에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좌표를 제시해주시기에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우리가 충실히 밟아 가면 됩니다. 물론 결과는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반면에 타락한 인간들 속에는 너무도 철저하게 잘못된 원칙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기준점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해석하고, 적용합니다. 거기엔 타인에 대한 어떤 배려도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원칙을 따르는 경향이 구별되고, 거룩해야 할 교회 안으로도 들어와 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 안에서 믿음의 상식을 벗어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런 연유로 교회와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삶이 그 영향력을 상실해버릴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해볼 때 억울한 면도 있습니다. 교회가 다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땅의 교회는 하나입니다. 잘못한 교회가 우리와 다른 교회가 아니고 하나이기에 이것을 우리는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마음상해 멈출 수는 없습니다. 성숙한 교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방법을 모색하고, 그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오늘 빌립보서 2장1-4절에서 지금 교회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야 하며, 그 상황 가운데 어떻게 공동체가 성숙한 공동체로서 세워져 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1절에서“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교회를 과연 교회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울이 나열하고 있는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의 교제, 긍휼, 자비 등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안에 영적인 실제들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것들입니다. 세상의 것들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곳이 아닙니다. 권면함으로 사람을 세워가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에게서 주어지는 사랑의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보면 무서운 예언자들만이 충만한 교회가 있습니다. 주일에 피곤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교회에 왔는데, 사랑의 위로와 권면 없이 정죄하고, 가르치려고만 하면 그 교회생활이 행복하겠습니까? 교회의 성숙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권면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교제입니다. 이렇게 매일 성령에 의해 진정한 교제를 누리게 된다면, 서로 성도 간에 교제를 나누지 않고 그 어떤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저에겐 이런 행복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매일 오후가 되면 교회 등나무 아래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고, 교제하고, 같이 공부하고, 밥 먹고,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가장 뜨거웠었고, 가장 믿음이 순수했습니다.
또한 구원받은 자로서 우리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감성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입은 자로서 우리 안에 긍휼과 자비가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세상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으십니까? 사람들을 향한 자비의 마음이 있으십니까? 한없이 우리를 품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이 나를 통해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공동체, 그것이 성숙한 교회의 모습이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겐 참 무서운 면이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실제들을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한없이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그 안에 내재 된 영적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와 같은 영적인 실제들을 갖춘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래서 성숙한 모습이 지속되기 위해선 2절의 말씀이 신앙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2절에“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이것들은 한 마음을 품고 서로 사랑하여 온전히 한 덩어리가 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법이지, 이것들을 의식적으로 구분하려는 표현은 아닙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첫째도 한마음, 둘째도 한마음, 셋째도 한마음, 오로지 한마음을 품어 일심동체가 되십시오.”교회의 본질을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각 지체가 유기적으로 묶여진 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내 몸이라는 지체의식이 우리 안에 생길 때 여기에서 서로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몸의 각 지체는 서로에게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 속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허물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 됨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한 것들을 한 순간 허물어버리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들 속에서 뽑아내야 할 두 가지 독소를 이야기합니다. 3절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했습니다.
하나의 독소는 다툼입니다. 다툼이란 말은 경쟁이나 이기주의를 말합니다. 이것으로 인해 당파심, 집단의식, 특정한 편견에 따라서 생각하려는 경향 등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이기심에 근거한 분파주의에 따라 행동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출신지역과 신분과 지위에 따라서 서로를 나누고자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영남, 호남의 극명한 갈등구조, 보수 우파와 급진 좌파 간의 반목, 이번 대선에도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런 세상의 반목하는 경향 들이 교회 속으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이기주의적인 것과 시기와 경쟁은 가장 해로운 것들입니다. 교회의 연합을 방해하고, 하나의 교회를 분열시켜 무력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서 뽑아내야 할 또 하나의 독소는 허영심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 생각하는 과대망상이나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헛된 생각에 따라 행동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속엔 은근히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기 보다는 자기를 들어내고 싶은 마음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고 봅니다. 솔직함보다는 과장되고, 포장된 모습을 추구하다보면 언제나 우리는 성숙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다툼과 허영의 마음을 버리라고 했는데, 우리 안에 다툼과 허영대신에 들어와 자리 잡아야 할 것들은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겸손한 마음은 본질적인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스스로와 상황에 대해서 겸손한 마음을 가짐으로써 다른 사람을 우리보다 더 좋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허영심을 버리고 겸손으로 행동하라는 말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절실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내세우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사랑과 더불어 우리 기독교에서 최고의 덕목입니다. 반면에 그 반대는 교만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교만, 즉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헬라적 휴머니즘의 전통은 인간을 우주의 중심이요 만물의 척도로 여기면서 인간의 자기주장도 미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그와 같은 행동을 인간이 교만해져서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라고 규정하고, 바로 그 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에서 분리되고, 자신의 제한된 자원에 갇혀 죽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창세기3장에 담겨 있는 아담의 타락입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은혜를 입은 자들로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주권에 의지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 안에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나 지혜가 없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자신 안에 무슨 덕목이 있거나 자신이 무엇을 성취하였더라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구원을 주시고 모든 좋은 것까지 선물로 주시는 주를 자랑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겸손은 피조물인 우리에게 요구되는 근본적인 자세요, 구원받은 자들의 표징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덕 입지 못한 사람들은 인본주의적 사고에서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스스로 구원자로 생각하는 허영심을 가지고 삽니다. 교만은 이런 자들의 표징입니다. 이렇게 가득 찬 허영심을 버리고 겸손함으로 우리는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4절에서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은 자신의 것들만 돌아보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습니다. 자기 일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 자신의 주장, 자신의 장점 등을 두루 칭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 것들에만 집중하다보면 교만해지거나 허영심에 빠지고 이기적으로 변하며, 분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공동체를 허무는 독소입니다. 우리들의 미숙함이 공동체의 성숙함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바울은 그리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6장2절의 말씀과 맥을 같이합니다. “너희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지체로 하여금 영적인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에게 도움을 베풀 의무가 있습니다. 자기 한 몸 돌보는데 바쁜 인생은 결코 성숙한 인생, 복음에 합당한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이익을 생각해주고,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 신뢰하고 견고한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교회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 빌립보 교인들이 해야 할 일들을 앞에 언급한 바울은 그것을 저해하는 독소들을 배격하고, 그것들 대신에 겸손과 남을 고려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권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공동체의 삶을 꾸려 가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는 길입니다. 여기에서 교회는 하나 됨의 지체의식을 갖고 내적으로 화평과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바깥으로는 교회가 더욱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성숙함을 이루는 가장 결정적인 힘을 갖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은 특별히 다른 어느 것보다도 그리스도의 마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하기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선 세상 사람의 마음과는 다른 차원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품어야 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 6절 이하의 그리스도의 본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6절에“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그 근본이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주시는 분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과 동등 된 자리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이 매우 겸손한 마음을 갖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분이시지만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겸손함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는데서 멈추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7절에“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진정한 겸손의 마음은 온전히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점은 내려놓고, 자기를 비우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8절“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기를 낮추심으로써 죽기까지 복종하심은 십자가에 죽기 위함이셨습니다. 바로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이야말로 겸손의 마음을 넘어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위해선 뭔가 할 수 있지만, 남을 위해, 그것도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기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낮아짐으로 인해 더 높아짐의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9절에“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0절 이후를 보면 그 낮아짐으로 인해 하나님은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늘과 세상으로 하여금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리스도의 영광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죄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비우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제한적이고, 약한 우리의 마음으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결코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전환되어야만 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고 내 열정이 아닌 그리스도의 열정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그 열정이 꽁꽁 얼어붙어 빙판이 된 이 땅을 녹일 것입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의 믿음의 영향력이 이 땅을 장악하기 시작하고, 교회공동체로 하여금 성숙한 교회임을 증거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생명교회]
블로그 http://jesuslife.tistory.com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csg0914 (최수근 목사 페이스북)
트위터 https://twitter.com/csk1130(최수근 목사 트위터)
유튜브 http://www.youtube.com/csg0914
홈페이지 http://www.jesuslifech.org
교회주소: 서울시 송파구 가락2동 124-22
전화번호 교회: 02-402-9191
담임목사 핸드폰: 010-8021-9001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에 대해 상담하고자 하는 분들은 SNS나 전화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주일예배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 빌2장19-24절 (0) | 2013.01.27 |
---|---|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 : 빌2장12-18절 (0) | 2013.01.24 |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라 : 엡4장11-16절 (0) | 2013.01.07 |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향하여 : 신명기3장12-29절 (0) | 2012.10.28 |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신앙: 신명기2장1-15절 (0) | 2012.10.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