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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 빌2장19-24절

by 최수근 2013. 1. 27.

2013년1월27일 주일설교문

[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 : 빌2장19-24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인간관계로 인해 마음 아팠던 적은 없습니까? 일평생 많은 사람들과 지내다보면 좋은 일도 있는 반면에 쓰라린 경험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 점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저와 여러분과의 만남도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우리의 만남이 서로에게 축복이 되고,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선교사 바울도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아픈 기억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 바울이 연결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나바의 조카 마가로 인해 선교사역에서 갈라서야 하는 어려움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디모데후서410절에 보면 아픔 속에서 떠나보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평생 같이 간 동역자들도 있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의사 누가가 있었고,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디모데는 바울이 디모데전서12절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그에게 있어 믿음 안에서 아들 된 자였습니다. 디모데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떠날 때 끝까지 신의를 지켰습니다. 그런 디모데를 바울은 자신이 옥중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빌립보 교회로 갈 수 없는 처기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자기를 대신하여 보내려고 한다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 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려 하는 목적은 그곳의 정확한 상황 파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대해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19절 하반 절에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빌립보교회가 온전한 가운데 있어야 , 바울의 복음을 위한 달음질도 헛되지 않고, 수고도 헛되지 않고, 또한 그가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디모데를 속히 보내고자 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디모데의 파송은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빌립보 교회교인들도 힘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리틀 바울인 디모데를 통해서 바울의 근황도 확인하고, 젊은 목회자이지만 디모데를 통해서 그들 또한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사람인가? 혹여나 사람들을 오히려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든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공동체 속에서 지체 간에 특별히 더 이런 따뜻한 모습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공생애를 통해 예수님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참으로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 앞에서 살아났습니다. 그들이 위로를 얻었고, 힘을 얻었습니다.

         이렇듯 디모데 파송을 통해 빌립보교회도 위로를 받고, 바울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사람 됨됨이에 있었습니다. 20절에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라고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위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디모데가 그들의 사정을 진실하게 생각하고 걱정해 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생각을 합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서로 만나면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격려와 위로도 없습니다. 그와 함께 바울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디모데는 바울과 뜻을 같이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뜻을 같이 하여이 말이 단순히 마음이 맞고, 코드가 일치한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야말로 바울의 정신과 영혼을 가진, 바울 자신이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일상적인 관계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당선자가 중국특사로 김무성 전의원을 임명하여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김무성 전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전혀 정치적인 성향과 비전이 다른 사람을 특사로 파송한다면 특사를 보낸 사람의 목적과는 어긋난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습니다. 특사를 보내는 이의 마음과 생각이 같아야 목적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디모데는 18절에서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사모하는 바울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 그들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불러주셨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연합하여, 예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현해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디모데가 자신을 파송하고자 하는 바울과 동일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듯이, 우리를 세상에 파송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동일한 스피릿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나아가 저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보면 인간들을 향해 긍휼의 마음을 품으신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진실 되게 여러분의 지체를 생각하고 돌보고 계십니까? 우리의 지체가 아파하고, 힘들어 주저앉아 있을 때, 다가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자기 이익, 자기 안위,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버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예수생명교회가 작은 공동체이지만 그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처럼 디모데가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일의 우선순위가 자기 일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젊은 디모데를 그렇게 신뢰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반면에 많은 이들이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자기 일에 바쁘고, 자기 일이 우선순위이지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먼저 우선되지 않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 우선되지 못하였습니다. 21절에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공사다망합니다. 누가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큰잔치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베풀고 종을 보내 사람들을 청하였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보아야 하겠다.”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야한다.” “내가 장가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지금 임했는데 그것을 거절한 유대인들을 비유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집착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눈과 귀를 막아버려, 도무지 주님을 바라볼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명하신 사역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요즘 사는 모습들이 얼마나 바쁜지? 그것이 주님의 일로 바쁜 것인지, 아니면 일상의 일로 바쁜 것인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 일을 구하며 바울을 떠나고, 그리스도를 떠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디모데는 자신의 일보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일에 앞장섰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에 대한 헌신에서 모든 사람을 능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전히 내 앞 가름하기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우리는 오늘 제자로 부름 받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참 제자라면 우리의 우선순위가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그 분의 스피릿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사명인 것입니다. 저는 종종 바빠서 예배나 말씀공부, 선교와 구제사역에 나오지 못하겠다는 분들에게 이렇게 질문하곤 합니다. “그 일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소중한 겁니까?” “그 약속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일입니까?”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 대게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의미 없는 일에 쫓기듯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열매가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성숙하지 못한 인생입니다. 예수님은 삼년간의 공생애에 집중하며, 복음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먼저 생각한 디모데였기에 그는 바울과 함께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수고할 수 있었습니다. 22절에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바울은 이미 빌립보교인들이 디모데의 연단을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디모데는 그들과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들도 디모데의 사람 됨됨이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려운 복음 사역의 현장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복음을 위해 묵묵히 달려왔던 그의 인품이 사람들에게 검증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디모데는 사람들에게 신뢰받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퇴임한 헌법재판소소장후보에 추천되어 인사청문회를 통해 검증을 받고 있는 후보자를 보면 검증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제가 많다는 것은 결국 인품에 흠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관리가 되지 못해 흠이 드러나고, 결국 사람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디모데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성숙한 인품은 바울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바울을 마치 자식이 아버지를 대하듯 섬겼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자기 이익과 자기 목적을 위해 바울을 버리고 떠날 때 디모데는 끝까지 바울을 섬기며, 바울과 마음을 같이 하여, 복음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를 믿고 안심하여 빌립보교회에 그를 보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단순히 혈연관계가 아닌 복음 안에서 만나고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디모데였기에 바울은 지금 상황을 잘 파악하여 자신을 위로하고, 빌립보 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적임자로 디모데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어떻게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습니까?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복음을 위해 수고했다는 말은 그 당시의 사회에서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전해 받은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바울이 복음 전파라는 중대한 과업에 헌신한 것을 전해 받은 디모데도 역시 바울에게서 그의 과업을 친히 배우고 익혀 헌신한 믿음직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움켜쥐고 있는 이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아버지와 자식 같은 관계가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저는 제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과 능력이 다 여러분에게 흘러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뜻을 같이 하여 동역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고, 복음을 위해 수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디모데는 바울이 복음의 진보를 위해 수고하고 고난을 당한 것처럼 동일한 수고와 고난을 기꺼이 겪으며,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이 아닌 그리스도의 일을 우선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았습니다. 사람들을 돌보고 위로하는데 힘썼습니다. 이런 디모데이니 바울에게는 꼭 필요한 자였습니다.

         23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라고 했습니다. 당장 보내곤 쉽지만 지금은 디모데가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때였던 것입니다. 감옥에서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디모데가 그에겐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관계된 사람들 가운데, 교회 공동체 가운데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께도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성숙한 사람, 디모데를 통해서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저에게도 바울은 너무 큰 사람입니다. 하지만 디모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디모데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모델이 됩니다. 바울은 특히 빌립보2장을 통해서 그 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적은 경험이 적은 그리스도인들이 닮아야 할 분명한 기독교적인 귀감을 보여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모델이 없거나 그 모델을 따르도록 격려 받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형편없거나 잘못된 또는 심지어 위험한 모델을 따르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바울에게로, 바울에게서 디모데에게로 흘러갔던 영성이 오늘 우리에게서도 흘러갈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배워야 합니다.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영적인 모범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 복제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과 디모데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일을 먼저 구하며, 복음을 위한 수고에 앞장 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여러분의 선택은 어떠합니까? 여전히 이 땅에 나의 일에 마음의 우선순위를 두고 계십니까? 우리를 통해 오늘도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우리 옆에 있는 가족, 지인들이 우리를 통해 생명으로 인도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 디모데처럼 세상에 꼭 필요한 복음의 일군이 되어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 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예수님의 자랑이 되는 장성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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