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향하여 : 신명기3장12-29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이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생명교회의 창립을 허락하심으로서 교회가 세워진지 일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종교개혁주일에 예수생명교회를 출발하게 하심으로써 세상에 있는 수많은 교회들 가운데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교회의 본질 회복을 위한 거룩한 프로젝트로서 우리 교회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 일 년 간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신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를 제자로 부르심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헌신된 제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사역에 열심을 다하고, 아직도 어둠의 권세 아래 눌려 있는 생명들을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그들을 살리도록 우리들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4주 전부터 신명기를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이 꿈꾸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선민 이스라엘의 준비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로서 교회란 어떤 기준에 이르러야 하는지,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오늘 우리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세워져야 하는지 그 조감도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출발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믿음의 고백 위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주셨고, 지금도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복음을 들고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던 교회가, 수많은 박해와 위기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온 세상을 향하여 퍼져나가던 교회가, 죄의 권세 아래 장악되었던 세상을 변혁시켜 나가던 교회가 요즘 세상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어떻습니까? 영적권세가 약화됨과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 법정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옳고 그름까지 판결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 사람들로부터 거룩한 공동체가 아닌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집단으로 평가받고, 교회를 바라볼 때 고운 눈길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가 힘을 잃게 되었습니까? 물론 주님이 교회의 주인 되지 못하고, 사람이 교회의 주인 되려고 하는 소수의 교회들로 인해 그와 같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교회들에게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래 다수가 아무리 잘해도 몇몇 미꾸라지 같은 이들이 교회를 흐려놓으면 같이 비난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만 잘하면 되지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같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렇게 까지 힘을 잃은 것은 교회의 참된 모습이 세상의 눈에 보여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덜컥합니다. 한마디로 개념상실입니다. 세상에서도 쉽게 행동할 수 없는 일들이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실한 재정문제, 담임목사 세습 문제, 목회자들의 도덕적 문제, 성도들의 집단이기적인 모습, 목회자와 성도의 역사의식 문제 등등 우리를 심란하게 만듭니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고, 함부로 돈을 남용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교회의 재정은 하나님의 것인데 말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패러다임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말씀으로 잣대를 삼고, 끊임없이 교회를 개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 도태되고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500여 년 전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도 중세교회가 매우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고 교권주의가 팽배해지면서 하나님을 위한 교회가 아닌 사람들을 위한 교회로 전락되었습니다. 말씀도 읽지 못하는 성직자들이 수두룩했으니 교회가 뭘 하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자신들의 기득권을 누리는 곳으로만 여긴 것입니다. 오늘날도 몇몇 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편하실 수 없습니다.
오늘 종교개혁주일과 창립1주년 기념 주일을 맞이하면서 앞으로 예수생명교회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지 신명기 말씀을 통해 그려보고자 합니다. 무엇이든 초기에 기초를 든든히 다져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교회도 교회다움이 어떤 것인지 분명해집니다. 이 주변에도 수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간판을 걸었다고 해서 다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유익을 위한 믿음의 공동체가 아닌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어찌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백성으로 만들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택하셨고, 오늘 우리들 또한 택하셨습니다.
1. 거룩한 교회
드디어 40년 광야 생활을 뒤로 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북진하도록 명하신 하나님께서 동족인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는 전쟁을 하지 말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세 나라를 벗어난 이후에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부족들과의 전쟁을 허락하셨고, 더욱이 그들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 죽일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참혹한 명령을 내리셨을까요? 요단 동편에서 진멸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백성들이었고, 두 번째 대상은 바산 왕 옥과 그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요단 서편 약속의 땅, 가나안에 진격해 들어가서도 그 땅의 일곱 부족을 진멸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성경은 소위 헤렘, 거룩한 전쟁, 성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조건 진멸을 명하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멸망시키라고 명하신 나라들에 대한 분명한 두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목적을 대적하는 자들, 즉 시혼과 옥이 그와 같은 기준에 들어 진멸 당했습니다. 신명기2장26절에 이후에 보면 모세가 헤스본을 지날 때, 시혼왕과 평화를 이루려고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요단동편이 본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의 일부가 아님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약속의 땅이었다면 이런 평화의 제스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화친에 응답함으로써 전쟁에 패하여 진멸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끝내 진멸 당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특별히 이스라엘에게 종교적인 오염과 혼합주의의 문제를 야기 시킬 가능성을 갖고 있는 민족들, 즉 가나안 족속들과 아모리 족속들이 멸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걸 보면 헤렘의 목적은 가나안 정착 이후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대한 예배가 타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즉 믿음의 성결함을 지키기 위해 모든 가나안 종교와 문화적인 요소를 제거하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속화된 삶의 터전에서 살았던 그들을 그냥 두었을 경우 끊임없이 이스라엘이 미혹 받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1계명에서“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고 언급하셨듯이 이스라엘은 어떤 다른 신도 섬길 수 없었고, 오직 그들의 헌신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마음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요소들을 하나님은 다 제거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명령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신앙의 순결함을 잃어버렸습니다. 결국 우상숭배가 그 땅에 만연하게 되었고, 영적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명하신 헤렘을 현대의학에서 병균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하는 살균과정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특히 가나안의 농경문화에서 나타나는 각종 우상문화에 접하는 초기 정복시점에 하나님은 헤렘을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영적체질이 죄가 만연되어 있는 곳에 노출될 때 그 싸움이 쉽지 않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성령강림이후 성령시대를 열어주시면서 교회공동체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 위에 세워주시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로서 이 땅에서 성결함을 지키며,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교회는 세상을 향한 날이 무디어졌습니다. 종교적인 관용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품어서는 안 될 것까지, 이것저것 다 품어 버렸습니다. 세상의 문화, 세상의 풍습, 세상의 사조, 세상의 경영노하우, 세상의 리더십,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닌 다양한 구원의 가능성을 제기한 종교다원주의 등이 교회 안에 들어와 교회를 세속화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회의 본질인 복음의 능력까지도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놓아버렸습니다. 이것은 그 옛날부터 사탄이 바라는 바입니다. 타락한 중세교회를 보면서 다시금 초대교회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믿음으로 돌아가자며 개혁을 시작한 종교개혁자들도 이 심각성을 알았기에 교회를 개혁하고자 한 것입니다. 엡6장12절에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권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했습니다. 우리가 어설프게 세상을 대하기에는 세상은 여전히 악이 충만해 있습니다. 대충 세상과 타협하고 살다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여야 합니다.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고 우리에게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됨은 세상과 분명하게 구별될 때입니다. 뚜렷한 거룩함의 좌표가 없이 어떻게 사람들을 의의 길로 이끌어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철저하게 다른 생활양식으로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이처럼 거룩한 성전이 될 때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교제함을 통해 지속적으로 우리가 능력을 받아야 거대한 세상을 바로 잡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이 꿈을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결함을 요구하셨고, 그 일에 장애물이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우리 예수생명교회를 통해 헤렘을 선포해야 할 영역이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하게 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거룩함을 훼손하는, 그리고 성별됨을 방해하는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끊어내어야 합니다.
2. 약속을 성취하는 교회
하나님이 가나안의 정복 과정에서 본래 약속하신 땅은 요단 서편 가나안이었습니다. 요단 동편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비전은 가나안입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진격하기 전에 헤스본과 바산을 점령한 후 르우벤과 갓, 므나셋 반 지파가 요단 동편에 눌러 앉게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앞으로 가나안으로 진격해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전체 열두 지파가 하나가 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두 지파 반이 미리 땅을 분배받음으로써 그 힘이 분열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모세는 이에 그 땅에 주저앉을 수도 있는 지파들에게 명령합니다. 18절“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의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아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르우벤, 갓, 므나셋 반 지파가 선봉에 설 것을 명령했습니다. 만일 두 지파 반이 자기들만의 성취에 만족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른 형제들의 일을 방관하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기에 모세는 이스라엘의 공동의 목표인 가나안 정복이 마무리 될 때까지 이스라엘 군대의 선봉에 서도록 그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들은 사실 선봉에 설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들은 이미 기업을 차지했는데 굳이 위험한 선봉에 서야 하겠습니까?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봉에 서도록 요구하였고,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몫을 미리 주셨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의 과제가 끝나기 전에 자신들만의 안락을 추구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의 공동체이자, 그들 자신만의 노력으로 그 땅을 성취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참 모습은 갈라디아서 6장2절에서도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씀했듯이 서로를 돌아보며 함께 가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만일 개인의 성취에 만족하며, 다른 지체들을 배려하지 않는 교회라면 결코 성숙한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선이 개인의 선보다 앞서야 합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 원칙입니다. 개인의 이익만을 챙기기 전에 공동체의 선을 함께 도모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교회는 교회다워집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사회에도 팽배해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 깊숙이까지 이런 풍조가 들어와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짐을 지는 성실함 뿐만 아니라 약한 다른 이들의 짐을 앞장서서 짊어질 수 있는 섬김을 우리에게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예수생명교회는 그런 믿음의 전통이 세워져야 합니다. 소외되는 이 없이 누구나 같은 비전을 가지고, 끝까지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옆에 분들을 보시면 전우애가 느껴지십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입니다. 그러니 같이 성장해야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밸런스가 깨지면 비정상적인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이 일을 하나 남의 눈치 살피지 말고 언제나 선봉에 섭시다.
3.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교회
요단 동편의 땅을 차지한 지파들에게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선봉에 설 것을 요청한 모세는 이제 자신의 꿈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간청을 했습니다. 25절“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하지만 하나님은 매몰차게 거절하였습니다. 그 대신에 그 땅을 바라볼 수 있도록 까지는 허락을 하셨습니다. “너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모세가 어떤 자입니까? 지난 40년간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씀을 받았던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해 지도자였던 모세를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은 지난 40년간 모세를 섬겼던 여호수아를 담대하게 하여 백성들을 거느리고 건너가도록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모세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심 때문에, 가나안으로 들어갔다면 어찌되겠습니까? 아마도 모세의 끝은 비참하게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교회세습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세습을 통해서 자기의 자리를 다른 형태로 연장시켜 유지하려고 하는 일들 때문입니다. 얼마 전 90세가 넘은 목사님이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자신의 맏아들에게 무리하게 교회를 세습한 것을 회개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 끝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게다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 은퇴나이까지 연장해서, 그것도 교단헌법에 걸리니까 교단탈퇴까지 하면서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국교회가 삽니다. 우리는 분명 알아야 합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었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다음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계의 지도자들이 다음 세대를 기도하며 준비하기 보다는 자기가 편법을 써서라도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니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에서 우리 교회는 거룩한 교회, 함께 가는 교회로서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내가 아니면 안 돼 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앞으로 나아가야 미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지 못하면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도 없고 존속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지금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겪고 있는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기가 있습니다. 그 이후를 대비하지 않고 있다 보면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키우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와 재력이 필요합니다. 길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어느 날 갑자기 모세 앞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밑에서 40년 동안 준비된 자였습니다. 물론 모세도 하나님이 왕궁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준비시키셨습니다. 교회가 다음 세대, 다음 세대의 리더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여호수아는 그 일에 실패했습니다. 결국 그로 인해 여호수아가 죽고,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 암흑시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한 로드맵을 갖고 사람을 세우고, 훈련하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준비시켜 가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필요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지식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로서 이루어집니다. 왕궁에서 세상교육도 필요했지만 광야에서 영적훈련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는 영적 훈련을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생명교회는 또 하나의 교회로 이 땅에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교회의 모습을 세워가도록 하나님이 시작케 하셨습니다. 똑같이 하면 우리교회는 약속의 성취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에 선봉에 설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격 미달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공동체로서 그래서 더러운 세상을 정화시킬 수 있는 영적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서로 짐을 지는 교회, 함께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지금부터 준비하여 주님 오심을 대망하는 교회공동체가 됨으로써 우리는 멋진 교회를 꿈꿀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생명이 되신다고 외치는 믿음의 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생명교회는 예수님의 돌보심과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 신명기 말씀을 통해 보여주신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 이 시대를 살리는 일에 부름 받고, 쓰임 받는 교회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되는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리며,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있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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