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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마 17장 14-20절

by 최수근 2023. 8. 30.

2023년 8월 6일 주일예배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마 17장 14-20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과거에 수월하게 해냈던 것이라 이번에도 잘 될 거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달려들었는데,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으시지요? 여러 변수가 작용한 결과일 겁니다. 그걸 단지 읽어내지 못한 거죠. 특히 다른 이들 앞에서 내가 전에 이걸 해냈었고, 지금도 할 수 있다고 해서 나섰는데 실패한다면 끔찍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런 곤란한 일을 겪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함께 산에 올라간 사이에 제자들에게 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서 내려오시자 한 사람이 달려와 꿇어 엎드려 간청합니다. 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이 사람의 아들이 간질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질병이 아니었어요. 뒤에 상황을 보면 간질의 원인이 이 아이 안에 들어온 귀신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고치고자 예수님을 찾아왔을 텐데 예수님은 계시지 않고 제자들만 남아있자 급한 마음에 제자들에게 아들을 고쳐 달라고 했던 겁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17: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축사에 대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고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쫓아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전에처럼 단번에 귀신이 나가질 않습니다. 예수님은 계시지 않고, 사람들은 정말 고칠 수 있을까 쳐다보고, 제자들이 얼마나 애를 썼겠습니까?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라는 말에서 제자들의 고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제자 저 제자 돌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동원해봐도 귀신이 나가지 않자, 이것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얼마나 조롱했겠습니까? “주의 제자들이 그랬으니 말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로부터 상황을 들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여러 마을에 파송하면서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고, 실제로 그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의 부재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패스워드는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대적하면 나가고, 믿음이 없으면 나가지 않습니다. 주신 권세이지만 믿음이 없다면 결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권세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그 권세를 주신 주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수많은 시간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면서 말씀해주셨고, 보여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에 예수님은 분노하셨던 겁니다. 17:17b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철없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을 호되게 꾸짖은 예수님은 귀신 들린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축사의 장면을 매우 단순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데리고 오자 바로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17: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치유의 장면을 병행 본문인 마가복음 9장에선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선 귀신이 격렬하게 저항하였습니다. 9: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바닥에 구르는 아이를 바라보시면서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물으셨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아버지는 대답합니다. “어릴 때부터였습니다. 귀신이 이 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지곤 했습니다. 선생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제발 불쌍히 여겨 도와주옵소서.” 이 아이가 처한 상황이 매우 심각하였습니다. 이처럼 위기에 놓여 있는 아들로 인해 아버지의 음성에서 절박함을 느낄 순 있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모호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 예수님께 이 아이를 데리고 올 때는 치료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이 사람의 마음속에 불신이 싹트기 시작한 겁니다. 수많은 치유의 사건들을 보고 들었지만, 한 번의 실패가, 얼마나 우리의 믿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으로 영향을 받는 믿음은 믿음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불신앙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도 아이의 아버지의 그런 불신앙을 꾸짖었습니다. 9:23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오직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믿는 자라면 능히 하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는 즉시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고, 예수님께 다시 소리를 질러 간곡하게 청하였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제자들과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 사이에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없음을 질책하셨을 때 즉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엄중하게 꾸짖는 말씀 앞에서 즉시 믿음 없음을 회개하고, 믿음 없는 것을 예수님께 도와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부족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태도에서 믿음 성장의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 사람은 모호했던 믿음에서 그 믿음의 상태가 분명해진 겁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예수님께 다시 한번 더 간절히 간구할 수 있었던 거죠. 그는 예수님이 자신에게 신앙을 열어주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과의 차이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앙이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에서 불붙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영구적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한 번 가지면 그 소유가 언제나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완전한 신앙의 소유자는 없습니다. 그것은 끝없이 갱신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칼뱅은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완전치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분적으로 불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신다. 우리에게 믿음이 조금만 있어도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신자로 여기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앙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믿음이 없었지만,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믿음을 달라고 청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충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제자는 매 순간 자신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우리는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축사의 중심에서 귀신과의 투쟁이 아닌 믿음을 위한 투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본질입니다. 귀신을 쫓아냈다가 본질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으면 귀신은 100% 쫓겨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귀신을 꾸짖었습니다. 9:25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예수님의 명령에 귀신은 아이로 하여금 소리 지르며,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쫓겨나 갔습니다.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족했습니다. 우리 문제 해결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권세 있는 말씀이면 됩니다.

이것을 지켜보면서 제자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들었음에도 자신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몰랐습니다. 예수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창피한 줄은 아는지 조용히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17: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에 예수님은 분명하게 대답하셨습니다.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능력했던 것은 믿음이 작아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예수님은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뭔가 모순이 되지 않습니까? 이건 단지 질량의 비교가 아닙니다. 믿음이 작다고 하신 것은 그냥 작은 겁니다. 하지만 겨자씨는 그 안에 자라나는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우리 주님과 살아있는 관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이 우리에게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한 지식은 늘어나는데 실제로는 인격적 관계 안에서 살아있는 관계에 머물러 있지 못하다면 우리의 믿음 또한 굳어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런 화석화 된 작은 믿음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위험한지를 강조하고 있는 거죠.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에 대한 신실한 의존 없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사실과 분명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능히 해내지 못할 것이 없음을 날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0절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묻는 대답을 통해서 기도에 대한 문제로 이 일을 전환시켰습니다. “왜 자기들은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질문하는 제자들에게 막 9:29에서 말씀하시기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신 걸까요?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능력은 기도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6장에서 선교 파송 시에 귀신 쫓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냈었고, 그 후에도 그런 능력이 계속되어, 언제고 그들 마음대로 능력을 행사하면 될 줄로 알았습니다. 여기에서 또다시 제자들의 영적 무지가 드러난 거죠. 이것은 자신들의 능력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는 권능이 하나님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도록 하는 행위가 바로 기도입니다.

제자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할 때, 예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귀신을 제어할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경험을 의존하였기 때문에 귀신을 축출하는 데 실패한 겁니다. 이미 능숙하게 잘하는 일일수록 주님 앞에 엎드려 더 간곡히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결국은 믿음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렇게 믿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공급해주시고, 생명 살리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깊은 차원은 치유와 온전함을 이루는 능력의 원천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린 아이를 내게로 데려오라.”하셨습니다. 다른 곳에서 이 아이는 치유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에게로 와서 치유 받았습니다. 그건 예수님이 치유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로부터가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도움을 얻기 위하여 사람들이 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소년의 아버지도 예수님에게 데려왔지, 제자들에게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능력이 발휘되는 통로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끌어안고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능력이고, 예수님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려 할 때 그들은 예수님 밖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자신들의 뜻과 힘만을 의지하려 하면 할수록 그들의 무능함은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 거죠. 이처럼 능력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배제하고, 자신의 힘을 의존하려는 의지를 극복하는 것이 참된 믿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는 자기 능력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자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믿음으로 따르며 능력의 원천이신 예수님과 연합한 자들입니다. 이 연합 안에 견고하게 머물러 계십시오. 우리 주님으로 인해 그 능력이 흘러가는 통로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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