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3일 예수생명교회 주일예배
[천국에서 누가 큰 자입니까? 마 18:1-4]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침공과 유럽의 군비 증강, 대만을 향한 중국의 위협, 우리나라를 위한 북한의 도발, 전 세계를 두 진영으로 나누어버리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반복적인 쿠데타,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누가 큰 자인가?”를 가르는 이 땅의 힘겨루기는 지구촌 평화에 대한 기대를 암울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눈을 국내로 돌려도 이 일은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권도 누가 큰 자인가를 겨루다 보니 그 어떤 조율도 없고 서로 때리기 일쑤입니다. 그로 인해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고 비양심적인 일들이 정치권에서 난무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 없어 보입니다. 누군가를 짓밟고 자기가 올라가면 그만입니다. 사회의 법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본을 보여야 할 지도자들이 이 모양이니 사회도 점점 힘깨나 쓰는 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총체적인 난관 앞에 서면 사람들의 심리가 타자를 배려하고 생각하기보다는 각자 살아남으려고 하는 경향이 난무합니다. 개인의 이기적인 마음들이 극에 달해 서로 무한 경쟁이 벌어집니다.
누가 큰 자인지 겨루는 일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만 큰 자입니다. 실은 무한 생존경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어이없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왕의 디엔에이를 가졌다고 담임선생님을 아들 잘 다루라고 다구쳤던 부모의 이야기였습니다. 자기 아들이 다른 아이들 다 이기고 큰 자가 될 거라는 생각이 그런 부모들의 마음이 아닐지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해서 분명 남는 게 있을 거로 생각하겠지만, 괴물 같은 이들만 세상에 득실거리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심히 두렵습니다.
위대함에 이르기 위한 야망은 인간 성취의 핵심적인 추구입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자체가 그래 왔지 않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누가 가장 큰지 결정이 되면 승자독식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누군가 대통령이 되고 나면 매번 한쪽 진영은 망하는 결과가 반복됩니다. 언제까지 그럴 건지? 마음을 낮추고 생각이 다른 이들을 포용하는 일들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누가 큰 자인지 자웅을 겨루는 일이 심지어 교회 안에도 들어왔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커뮤니티와는 달라야 합니다. 그건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세속적 가치와 무한 경쟁이 들어와 있다면 그건 머리 되신 예수님이 배제된 결과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형교회들이 작은 교회들을 잠식하는 것은 성경적인 측면에서 심각하게 평가해야 할 문제입니다. 은혜로움의 결과가 아닌 경우들이 허다해서 그렇습니다. 소위 대형 마켓이 골목상권을 잠식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나라의 대형교회들이 이 일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물론 자유로운 곳도 있으리라고 믿어요.
예수님은 낮은 곳에 임하셔서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십자가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들의 경쟁을 넘어서서 낮은 곳으로 나아가도록 촉구하셨습니다. 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처럼 제자들의 관심은 그런 낮아짐과 자기희생 같은 곳에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얄팍함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자기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영적 무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자들이 급작스럽게 예수님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약 한 달 정도 지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됩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수난 예고를 하셨음에도 제자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제자들은 굳이 이 질문을 했을까요? 세례 요한과 같은 자라는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해 기대하는 대답은 자기들을 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을 큰 자라고 평가해주실 것에 대한 기대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치 천국을 이 세상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권력과 지위의 원리로 이해하여 자리다툼에 연연했던 것은 실로 천국이 사랑과 겸손과 섬김을 바탕으로 하는 나라임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그런 제자들의 질문을 대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편하셨을 리 만무합니다. 불편한 마음을 절제하시고 한 어린아이를 부르셨습니다. 아이가 나오자 제자들 가운데 어린아이를 세우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시각적인 설명을 시도하신 겁니다.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그런 예수님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지금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나 주목했을 겁니다. 당시 어린아이나 여자들은 사람의 수를 셀 때도 끼지 못하는 열외가 되는 존재입니다. 큰 자와는 동떨어진 이미지라고 생각했기에 제자들은 의아해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기대를 깨어버리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큰 자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는데, 예수님은 그 대답 대신에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자격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천국에 갈 것으로 믿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들어간다는 전제하에 거기에서 자기들이 큰 자라고 하는 평가를 제자들은 실은 받고 싶었을 겁니다. 자기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결단코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으니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특이한 사항이 있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돌이키다’의 헬라어 ‘스트레포’는 물리적인 방향 전환 뿐만 아니라 마음의 변화, 행동 양식의 변화까지도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의 전환, 전인적인 전환인 거죠. 단지 물리적인 전환이 아닙니다.
그럼 돌이키는 것과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는 것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요? 꼭 돌이켜야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될 수 있는 겁니까? 이것은 우리가 마음 먹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자기 의지로 시작된 일은 작심삼일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기 부인과 성령 세례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돌이킴인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이고 정신적으로 유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를 내세우시며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신 것은 어린아이들의 보편적 특징과 관련하여 주신 교훈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에게 절대 의존적이고 부모의 말에 절대 순종하고, 가르침을 단순하게 잘 받아들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경험으로 볼 때 절대적으로 모든 어린아이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어른 못지않은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종종 어린아이도 그런데 자기 고집과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어떻게 어린아이처럼 의존하고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이라는 말씀의 성취는 이것들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제대로 된 순수함으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낮아짐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 겸손은 세상적으로 볼 때는 별것 아니겠지만 천국에서는 다른 평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기대와 가치를 내려놓는 일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그러니 돌이키지 않고서는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니요? 그들이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어린아이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순히 어린아이를 주목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세상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낮추는 것을 배운 바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겸손함이 실종된 시대입니다. 자기만 잘났다고 우쭐대는 세상입니다. 큰 자에 대한 야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제자 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도 여전히 높아지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는 지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한, 높아지기 위한, 큰 자가 되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낮아짐의 자리여야만 합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피곤하고 불행해 보이는 걸까요? 모두가 큰 자가 되고자 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로 인해 세상은 점점 지옥같이 변해가지 않을까요? 계속해서 그로 인한 비극적인 사고들이 지금 이 땅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로만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돌이키는”것도 없습니다. “자기를 낮추는”일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라 부르는 모든 이들이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은 아닙니다. 분명한 제자 됨의 증거를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 증거는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은 “제자도”의 강력한 특징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자를 천국에서 큰 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위대함은 단지 개인적인 성취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위대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겸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적인 패러다임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성취를 세어봅니다.
그러기에 “천국에서 누가 큰 자입니까?” 물어보는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 아닌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 노력으로 헌신했고, 자기들 가운데 누가 가장 많이 일을 이루었고, 그런 성취를 취합해서 그들 가운데 누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인가를 알고자 하였던 겁니다. 제자들의 자리다툼에서도 그들의 생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분명해집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출수록 큰 자가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다스리는 정치적인 지상 왕국을 기대하며 권력에 집착했던 제자들의 영적 무지와 교만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원하셨던 거죠.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은 단순히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에 영적인 변화를 가져오시도록 겸손하게 낮춤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주신 겁니다. 천국은 자신을 낮추면 낮출수록 더 큰 자로 평가받는 역설적 진리로 설명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제시하신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연약함의 상태에 자신을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했다”라는 교만의 강을 건너 “주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낮아짐의 자리에 섰을 때, 그래서 그런 우리를 예수님으로 인해 다시금 세워주실 때 우리는 진정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록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작은 자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라고 일컬어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을 선물로 누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진정한 위대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섬김을 받고자 할 때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섬길 사람, 특히 아무런 권리도 없는 자들을 섬기려고 찾을 때 발견됩니다. 의미심장하게도,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첫 번째 표지는 인자의 최상의 표지인 겸손입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인자가 기록된 대로 겸손히 행하신다면, 하물며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얼마나 더 겸손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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