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2월10일 주일설교문
[ 주 안에서 기뻐하라 : 빌3장1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열렬히 원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누구나 모든 이들은 기쁨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마치 행복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떨 때 기뻐하게 될까요? 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목표한 일을 마무리했을 때, 불가능한 경기에서 이겼을 때, 회사에서 진급했을 때, 결혼했을 때, 자녀가 태어났을 때 등등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 생겼을 때입니다. 국어사전의 뜻을 보면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의미대로라면 우리들이 기뻐하기 위해선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만일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기쁨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우리에게 기쁨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별의별 행동을 다 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행동들도 과하면 문제가 됩니다. 그 행동 자체가 마약처럼 중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약류의 본질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게 아니라 현재의 고통을 단지 잊게 하는 역할일 뿐입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자주 반복해야하고, 더 센 자극이 필요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우리의 현실 자체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를 상하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디에 기쁨의 조건이 있는지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잠간의 희열을 맛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를 망가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그리고 항상 기쁨을 줄 수 있는 진정한 기쁨의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Ⅰ.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기쁘지 않은 상황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쓰는 상황에서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떤 형량이 내려질 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물론 편지 수신자인 빌립보교회의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목자가 죽음 앞에 서 있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에 근심과 염려, 슬픔이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파송해서 바울을 돕도록 했는데 그마저도 병들어 고향으로 돌아와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와 같은 막막한 환경을 뛰어넘어 기뻐하라고 빌립보서를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매장 마다 반복적으로 빌립보교인들을 향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1장18절에서도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했고, 2장17-18절에서도 빌립보교회의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자신이 전제로 드려지는 희생제물이 된다고 해도 기뻐할 것이니 그 기쁨에 동참하자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러다 2장19절 이후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언급하면서 그의 계획들을 개략적으로 말한 뒤에 3장1절에서 다시 기쁨이라는 주제로 돌아온 것입니다. 1절“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끊임없이 기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까? 이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길이 우리의 삶에서 열려진다면 우리는 근심과 걱정, 염려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의 자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Ⅱ. 주 안에서 기뻐하라
바울은 1장18절에서도 비록 자신이 손해를 본다 해도, 그 일로 인해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일이라면 그것 때문에 마음 상해하고, 불편해하기 보다는,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오히려 바울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됨으로써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나는데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보면 바울에게 기쁨의 조건은 다른데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오늘 3장1절 말씀에서 기쁨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씀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기쁨을 발견하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이 너희를 행복하게 만드는 분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떠나서는 어떤 경우에도 기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잠깐 기뻐할 수 있는 일들은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주식에서 대박이 났다든지, 로또에 당첨되었다든지, 집을 넓혀 갔다든지, 시험에 합격했다든지 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경우들을 보면 그 기쁨은 일시적인 기쁨일 뿐입니다. 영원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을 제공해주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다시 공허해지고, 또 허기진 마음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게 될 뿐입니다. 이 일이 죽는 날까지 반복되는 인생, 이것이 주님 밖에 있는 이들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른 차원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자기를 비우고 사람으로 오셔서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으로 하나님에 의해 지극히 높이 올리우심을 받은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갖는 기쁨입니다. 자기를 다 비우신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세상 것으로 채워지는 기쁨이 아니라, 세상 것은 버리고 낮아지실 대로 낮아지신 주님으로 채워짐을 통해 얻는 기쁨인 것입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비움 속에서 오는 기쁨이기에, 바울처럼 감옥에 갇혀 있어도, 어떤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소위 성공하지 못했어도, 주변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도, 오직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쁨입니다. 그 점에서 바울이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하는 것은 주님을 온전히 영접한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고차원적인 기쁨입니다. 세상 것으로 채우고자 하는 이들은 결코 얻을 수 없는 보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체험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첫 번째로 나타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물밀듯 밀려들어와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이 자리 잡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한 사람들의 특징은 기쁨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었기에 늘 기쁨을 유지할 수 있었고, 성도들에게도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도 성도들의 기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장16절 이하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기뻐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여기‘에덴’의 뜻이 바로 기쁨, 쾌락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사람을 기쁨의 동산에 두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건강한 성도라면 오늘 우리의 에덴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의 에덴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여전히 굳게 서 있음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당장에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뭔가 우리가 믿음 안에서 약해진다 싶으면 우리 안에 기쁨이 사라지고, 미소가 사라집니다. 얼굴에 근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건강한 성도들은 항상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지속적인 기쁨은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이미 믿음의 영역이 허물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Ⅲ 두 가지 실천적인 방향
오늘 우리가 주 안에 거한다는 것은 보다 명확히 말하면 두 가지 실천적인 방향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늘 성령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은 기쁨의 영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의 삶의 색깔이 달라집니다. 우울함에서 즐거움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1장6절에서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환난 가운데서도 거뜬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영에 취해 있기에 여전히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염려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시편19:8“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15장10-11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하셨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에 순종함을 통해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믿고 말씀 안에 있을 때 왜 기뻐할 수 있습니까? 기쁨은 어떤 일들이 우리 마음에 흡족한 방식으로 진행될 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주의 말씀보다 우리를 흡족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분명하게 들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수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Ⅳ.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
그렇지만 불행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쁨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 구원받았을 때 맛보았던 기쁨을 상실한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를 기쁨의 근원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밧새바와 동침한 후에 선지자 나단을 통해 그 죄악이 드러났을 때, 시편51편11-12절에서“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죄는 우리 구원의 즐거움을 파괴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여러 환경이 그들을 낙심시켰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받았지만, 그래서 순간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었지만 곧 바로 세상의 근심 염려로 인해 그 기쁨을 순간 다 상실해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기쁨은 좋은 환경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단 그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볼 때 고난의 환경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오직 믿음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쁨이 생기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아무리 외쳐 봐도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기뻐지지 않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온갖 짜증만 나는데.........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삶이 거룩하지 아니하고 또 그들이 앞날에 대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그 기쁨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Ⅴ. 주 안에서 믿음으로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라는 찬송을 지은 크로스비는 어려서 눈을 수술하다가 오히려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노할 일입니까? 하지만 그는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눈 감고 세상을 살면서 찬송가를 지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하는 말이 자기의 눈을 수술하던 의사를 만나면 실수를 한 의사에게 오히려 감사하겠다고 했습니다. 비록 맹인이 되었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기뻤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우리 주님의 긍휼을 어찌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고 인도해주시니 환경이 조금 바뀐다고 해서 기쁨을 쉽게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주안에 있다면 주님이 그 상황에서도 나를 위로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5장7절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주 안에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돌보아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몹시 많은 불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그러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를 떠나서는 그 어느 곳에도 참 평안도, 참 기쁨도 그리고 진정한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주 안에 거함으로써 그 안에서 오직 주님 때문에 기뻐하는 주의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크로스비가 찬송했던 것처럼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이들에게“모든 기쁨과 평강을 충만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기쁨의 능력이 있음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많은 사람들이 이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기쁨의 근원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보다 더 좋고, 더 멋지고, 더 누릴만한 것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생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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