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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라 : 고전 15장 50-58절

by 최수근 2015. 4. 19.

2015년 4월 19일 주일설교문

[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라 : 고전 15장 50-58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부활신앙의 중요성

고린도 교회 안에는 참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들 아래에 하나의 거대한 신학적 오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비록 흠이 많은 우리 몸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고, 마침내 구속받을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들의 관점은 이 몸으로 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눈에 비추어 볼 때 궁극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저들은 도덕적이고 신학적으로 혼란 속에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지금 육신을 입고 사는 이 땅의 삶은 그냥 즐기다 가면 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었고, 실제 저들 속에 그런 모습들이 드러나 보였습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 성경에 기초한 올바른 신학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신학이 잘못되면 그로 인해 나타나는 행동들이 잘못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올바른 부활신앙을 반복해서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 온전하고도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잘못된 부활신앙으로 인해 헛된 길로 빠진 이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신학이 사람들을 우매하게 행동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은 그저 미래에 일어날 종말론적 사건에 대한 지식이 아닙니다. 부활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이 매일매일 직면하는 현재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이 올바르게 자리 잡을 때 그 다음 신앙의 단계로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혈과 육의 한계

지난 두 주에 걸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또한 신령한 몸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죄악 되고 죽을 운명의 몸으로서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1550절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혈과 육은 이 세상의 사람, 곧 자연인을 지칭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죄와 죽음이라는 숙명을 지닌 연약한 존재인 이 세상의 자연인으로서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썩어짐과 부패는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의 일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에 참여하는 우리 몸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다 변화되리니

그런데 여기에서 죽은 자의 부활과 함께 하나의 중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만일 죽지 않고 살아생전에 주님이 오신다면 살아있는 자는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그 구원의 비밀을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에게 증거 하게 하셨습니다.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여기에서 마지막 나팔은 묵시적인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알리는 표징입니다. 살전 4:16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하지만 우리는 이 재림의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그 때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언제 오시느냐 그 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알 수 없는 그 때를 준비하며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론적인 신앙의 삶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종말의 때에 예수님이 오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먼저 일어나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되고, 살아있는 자들 또한 불멸의 몸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사망을 멸하심

이렇게 거룩한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때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됩니다.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4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주전 8 세기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25:8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죽음은 더 이상 인간에게서 자기의 승리를 자랑할 수도 없고, 더 이상 인간을 고통스럽게 쏘는 능력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승리로 인하여 바울은 죽음을 비웃었습니다. 55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죽음 앞에서 태연하게 독배를 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오침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타락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심을 통해서 죄로 인해 비롯된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죄를 통해서 이 땅에서 자기 세력을 확장해 온 죽음은 더 이상 자기를 과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종말에 이루어질 부활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에 사망이 우리 앞에서 완전히 힘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은 우리에게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바울은 죽음을 향해 소리 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약속을 소유하고 있는 자에 대하여 죽음은 영원히 삼킨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율법, 그리고 죽음의 쇠사슬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지금도 우리는 이 세 가지에 대한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패배는 떠나가고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끌어내리는 모든 힘에 맞서 우리에게 이미 이천년 전에 승리를 주셨습니다. 또한 미래에 우리에게 그 승리를 주실 것이고,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그 승리를 주고 계십니다. 바울은 이처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향해 감사를 올려드렸습니다.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또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지막 날의 부활을 보증하셨습니다. 이 승리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우리도 동참해야 합니다. 그와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완성된 승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마지막 때까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승리를 완전히 쟁취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승리의 완전한 열매는 마지막 날에 온전히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감사드린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소망과 이김은 흔들릴 수 없는 매우 확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이와 같은 부활 신앙은 현재 우리의 삶을 다른 차원의 삶으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 현재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시고, 몸을 포함하여 우리의 존재 전체를 새롭게 하고자 하신다면 우리가 바로 지금 우리의 몸으로 또한 우리의 세계와 더불어 무엇을 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소중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너무도 오랜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의 소망에서 현재의 책임을 분리해 내는데 만족해 왔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활과 부활의 약속은 우리를 현재 세계에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 세계로 돌아가게 하고, 현재 삶에서 우리 몸으로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58절 말씀을 통해서 이 땅에서의 삶의 거룩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하나님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을 향하여 부활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권면으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하였습니다.

이 권면의 말씀은 지금 부활신앙에서 흔들리고 있는 고린도교인들에게 참으로 적절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아주 쉽게 동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온전한 믿음을 위해 우리들은 위대한 하나님의 진리에 견고히 서서 세상이 뭐라 하든지 믿음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합니다. 즉각적인 것을 좋아하는 현대 사회의 풍조에서는 이 믿음에 흥미를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한 승리를 지금 맛보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과 약속의 현격한 차이를 보고 실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차례 반복되다보면 소위 냉소주의의 덫에 걸리고 맙니다.

그래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중요합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갈 때 어떤 시험이나 유혹, 핍박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과 약속 위에 늘 서 있지 않는 한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어 되는 사탄의 시도 앞에서 결국은 무너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받은 것은 언젠가 무너져 내릴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리스도의 터 위에 깊이 뿌리를 박고 견고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삶의 중심을 널뛰기 쉬운 우리 자신에게 두지 마십시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환경에 따라 널뛰지 않고, 지금 우리의 일에 집중할 수 있고, 마침내 그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 일에 힘쓰라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재능, 우리의 사랑, 우리의 생각, 우리의 행동거지, 우리의 성실, 우리의 일상적 노동, 우리의 봉사와 섬김, 우리의 믿음, 우리의 전 존재를 어떻게 받으실까요? 이것들이 무익하게 끝나리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받으셔서 어떻게 각양각색의 줄로 새 창조의 영광스런 태피스트리를 엮어 내실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실은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당장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약속의 말씀 위에 견고하게 서서 그 날을 소망하며 꿋꿋하게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요동치지 않고 우리의 신앙적 중심을 지켜갈 수 있을 때 우리가 비로소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오늘 말씀은 두 번째 권면으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하였습니다. 부활신앙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들이 할 일은 이러한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오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것입니다 

무엇이 주의 일일까요? 에베소서 210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이루어가는 일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지고, 그 은혜를 이웃과 나누고, 결국 이 일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과 연결이 됩니다. 그로 인해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미의 관심사는 영혼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그 점에서 오늘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는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지 알 수 없지만 성령의 인도 안에서 내 일이 아닌, 주의 일에 힘쓸 때, 부끄럽지 않은 우리들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사를 제쳐두고 흰옷 입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예수님 오심을 무작정 기다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소위 종교적인 자기 열심에 빠지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잘못해석해서 주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를 버리고 어리석게 행동했던 사람들이 바울 때도 있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잘못된 종말론에 빠져 그렇게 행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기만족을 위한 열심히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심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다른 길에 서서 이렇게 주의 일에 열심을 품고 나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어찌 평가하겠습니까? 세상이 볼 때는 헛된 것처럼 보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런 평가에 귀기울이다보면 우리는 마음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 우리의 수고가 헛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 땅에서의 주를 향한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의 일에 열심을 다한 우리들의 수고를 주님께서 보증하사 헛되지 않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좀 참을성이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 안에서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영광의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모든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믿음의 인내가 필요할 때입니다. 오늘 우리 확신의 기초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잠자는 모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도 참여하게 되는 부활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날이 이르기까지 각자 삶의 자리에서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가 손을 뻗쳐야 할 영혼들이 있고 완수해야 할 사역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가 하나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한 몫을 담당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여러분의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게 손해가 아닙니다. 그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수고를 보장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수고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엄청난 약속과 보상에 참여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궁극적인 승리를 이룩하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 믿음은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깊이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또 그 때문에 수고하는 모든 것을 멈추거나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거나 뒤로 물러서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종말을 살아가며 부활신앙 가운데 견고하게 서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믿음의 경주를 마쳤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기쁨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함께 우리의 수고를 보증해주시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 나라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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