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우리 이웃과 함께!!!
주일예배설교원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 엡 4장 25-32절

by 최수근 2015. 3. 8.

2015년 3월 8일 주일설교원문

[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 엡 4장 25-32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들 삶의 방식과 자세, 태도에 대한 실제적인 전환을 이루라는 요청이십니다. 과거에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무지함 가운데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해도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후에 세례를 통해 자기부인이 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면, 우리들은 자기중심적이고 다분히 이기적인 삶에서 지체를 돌아볼 수 있는 성품과 삶의 태도로 전환되어야만 합니다. 초보의 단계에서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과정입니다 

425-32절에서는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식이 세 가지 영역에서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언어의 영역, 감정의 영역, 관계의 영역에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은 새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변화를 이루어내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촉구하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만큼 삶에서 열매가 드러나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다면 영적 깨달음은 실제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사람들과는 고립된 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경험하는 신비한 상태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일상에서 거룩함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굉장한 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삶이 뒷받침되지 않아 그 은사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은사를 담지 할 만한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것과 삶의 자세가 하나가 될 때 거기에서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언어의 영역 

새 사람으로서 가장 빠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언어입니다. 우리는 먼저 언어의 영역에서 거룩한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새로운 대화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말하는 이의 속사람을 대변합니다. 언어생활을 통해서 그 사람이 대략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보면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듯한 것 같지만 진실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거룩함으로 아무리 포장한다고 해도 주님 앞에 서면 거짓과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진정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거짓이 아닌 참된 것을 말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먼저 우리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거짓된 것들, 가식, 위선, 허풍, 거짓 고백을 버리고, 정말 솔직해져야 합니다. 진솔해야 합니다. 서로 말하면서도 상대의 속내를 믿지 못한다면 어찌 같은 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입니다. 만일 교회공동체 안에서 서로 진실함으로 말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고 있다면, 앞에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뒤통수를 친다면 그 관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에게서 진솔함이 사라지고 위선, 가식, 거짓을 행하는 것은 갈등을 조장하고 신뢰를 무너뜨림으로써 몸을 붕괴시킵니다. 그러기에 진정 지체의식을 갖고 있다면 거짓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 서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누고, 하나님 진리의 말씀을 나누고,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교클럽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모인 모임이 아니라 진리와 생명과 길이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언어가 담고 있는 내용도, 그것을 표현하는 말도 구별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참된 것을 말함으로써 서로를 세워가도록 요청하셨지만 교회 안에서 여전히 말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경우들이 왕왕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언어의 다스림을 통해 지체들에게 덕을 세우도록 명령하십니다. 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속사람을 오염시키는 더러운 말들이 뭐가 있을까요? 들으면 우리의 내면이 상하고 오염되는 말들이 실은 너무도 많습니다. 속사람을 상하게 하는 더러운 말은 닫아버리고, 지체들을 살리는 언어가 우리에게 넘쳐나야 합니다 

그와 함께 서로를 향해 쓸데없이 떠들어대고, 함부로 말하고,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다 버리라고 했습니다.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말은 심히 파괴적일 수 있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손상시키고, 중상하고 험담하는 말을 그쳐야 합니다. 서로 생명을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새 사람으로서 우리는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격려하고, 성원하고, 위로하고, 세워주는 말로 채워가야 합니다. 이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받아주고, 공감해주고, 마음을 만져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언어가 넘칠 때 우리 공동체는 더욱 따뜻해질 것입니다. 

감정의 영역 

이렇게 언어의 영역과 함께 예수 믿은 이후에도 순간적으로 제어하지 못해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 감정의 영역입니다. 누구나 화를 내고 그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엽총으로 살인을 저지른 이들도 분노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분노의 끝은 늘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함과 분냄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감정은 너무도 쉽게 마귀에게 공략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분을 다스리지 못함으로써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말을 하게 되고, 상대에게 폭력을 가하고, 증오를 낳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 가다보면 분노는 우리로 하여금 몸의 관계 파괴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고, 하나님과의 사귐에서도 벗어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분을 낸다 해도 분노의 불길을 신속히 끄라는 것입니다.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경솔하게 화를 낼 경우, 그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관계를 파괴합니다. 또 반대로 겉으로는 미소 짓는 것 같지만 자신의 속에 분노를 품고 있을 경우에 그 분노는 그 사람을 증오에 가득 차게 만들고 속에서부터 그 인격을 파괴해 버립니다. 요즘 상영되고 있는 킬미힐미라는 드라마에서 내재된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그 안에 쌓여간 분노로 인해 인격이 조각조각 나 일곱 개의 다중인격으로 살아갑니다 

더욱이 마귀는 사람들의 분노를 통해 신나게 일합니다. 만일 분노를 키우면 사탄에게 우리 자신을 넘어뜨릴 틈과 연합을 깨뜨릴 빌미를 그냥 제공하는 것입니다. 물론 분노도 바르게 사용되기만 하면, 잘못을 고치고, 불평을 시정하고, 불의를 바로잡도록 우리에게 동기부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의로운 분노를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의로운 분노는 솔직히 우리 예수님에게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처음에는 멋져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자신과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을 힘들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감정의 밑바닥을 보임으로써 27절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하신 것처럼 그 어떤 틈도 보여 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감정의 영역까지도 거룩함으로 구별시킴으로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차단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관계의 영역 

세 번째 영역은 관계의 영역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 예는 좀 극단적인 예를 들고 있습니다. 28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이 말씀은 어떤 상황을 말씀하고 있는 걸까요? 도둑질은 자신의 노력 없이 쉽게 다른 이들이 쌓아놓은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불의한 행동입니다. 다른 이들 등쳐먹고 살았던 삶에서 이제는 다른 이들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줄 수 있는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요청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선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새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은 그 목적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맘몬을 위해 일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돌아볼 수 있는 관계 우선의 삶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목적은 이 땅에서의 번영입니다. 그러니 그 목적 성취를 위해 남 등쳐먹는 일도 불사합니다. 맘몬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맘몬이 아닌 몸의 지체를 서로 붙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관계입니다 

관계의 영역에서의 두 번째 예는 지체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입니다. 옛 사람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새사람으로써 우리가 관계 중심의 전환을 통해 친절과 긍휼과 용서로부터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 근거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이미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용서하시기로 작정하셨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는 것은 정말 좋아하면서 내가 누군가에 주기를 힘들어하는 것이 우리들 모습이 아닐까요? 이기적인 욕심을 끊어내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받은 사랑을 나누고, 용서함을 받았기에 받은 용서를 나눔으로써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뺏고 빼앗기는 혈투가 아닌 주고 또 줄 수 있는 넉넉함을 이루어가도록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옥과 같은 세상을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구별됨입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이처럼 새 사람으로서 언어와 감정과 관계의 영역을 변화시켜가는 것은 의지적으로 물론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변화가 우리들의 의지만으로는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그것을 끝까지 견인해갈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끊임없이 우리를 이끌어주실 때 이와 같은 영역에서 변화가 가능합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함으로 이끌어가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성령님의 사역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기대치를 이루어드림으로써 성령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순종함으로써 변화를 이루지 못할 때, 여전히 옛 사람의 자리에 머물러 살아갈 때 우리 성령님께서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것은 나아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 삼위일체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 쳐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은 오늘 새롭게 창조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삶에 대한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우리 구원의 날까지 성령께서 우리를 보증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시고 도장을 찍으사 우리를 보증해주시는데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지 않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옛 사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의 미숙함으로 인해 오늘 우리를 견인하시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30절 말씀에서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더 이상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사순절 절기는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신앙의 길을 영적으로 점검하는 기간입니다. 주님의 대속하심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난 우리들의 믿음과 삶이 한층 더 성숙해지는 절기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의 언어와 감정과 관계의 영역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십시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