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5일 주일 설교문
[누구를 따라 살고 있습니까? 엡 5장 1-2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어떤 자녀입니까?
며칠 전 아침에 교회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데, 저 앞에서 몸이 불편한 어르신 한 분이 보행기를 의지해서 어렵게 길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쉽지 않아보였습니다. 헌데 그 옆에서 따라오고 있는 아들의 발걸음 또한 이상해보였습니다.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딛는 아버지의 느린 걸음걸이에 보조를 맞추느라 거의 제자리걸음하듯이 아들도 걷고 있었습니다. 잘 걷지 못하는 아버지를 배려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려는 아들의 마음이 그 걸음걸이에서 진하게 느껴져 저의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저는 두 사람을 지나쳐 가다가 돌아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옆에서 따라가고 있는 저 아들은 아버지에게 어떤 아들이었을까?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였을까?
모든 자녀들이 다 아버지를 사랑하며 따르고, 연로하여 나약해진 아버지를 돌보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따르고, 누가 돌볼 것 같습니까?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지난 시절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았던 자녀들입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사랑에 감사하는 자녀들이 힘없는 아버지를 배려하고, 돌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녀들일 수록 어렸을 적에 보면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기에 자기는 커서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인품, 행동 하나하나를 닮아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커가면서 점점 더 그 삶 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이 땅에서 자녀와 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습처럼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하나님 앞에 선 저의 모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아버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내 삶에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닮고자 애를 쓰고 있는가? 정말 하나님을 배려해드리는 아들인가?
하나님의 사랑
오늘 에베소서 5장 1절 말씀에서도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누구의 사랑을 받은 자녀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대한 어떤 기억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 값진 것인지 깨닫기 시작하면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단지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니라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주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을 지금 믿고 이 자리에 앉아 아버지 하나님을 예배하고 계신 겁니까?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이 느끼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입니다. 종종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았던 이미지가 하나님 사랑을 알고 느끼게 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는 반대로 그 상실감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도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로 인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제가 할머니에게 핍박받았을 때 아버지는 방관자였습니다. 든든한 저의 보호자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피폐해질 수 있었던 어린 시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보호해주신다는 성경 말씀이 크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상처받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멍 뚫린 어린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셨습니다. 그렇게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믿을 때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 할머니로부터의 핍박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 안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크게 위로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로 인해 암울할 수도 있었던 청소년 시절 진정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어린 시절 무조건적인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할 때는 몰랐는데, 어느 순간 제가 영적으로 자라가면서 제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싹텄던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 아버지를 위해 내 삶을 드려야겠다는 헌신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세상과 구별 되게 살려고 노력했고, 늘 하나님 아버지 곁에 있기를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을 본받아
이와 같은 마음은 느닷없이 튀어 나온 마음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고 자라온 자녀라면 당연하게 아버지를 본받고자 하는 것이 정상적인 관계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그 분의 이름을 부르고, 또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자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을 본받아 살아가고 있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위선적일 뿐만 아니라 뻔뻔스럽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에베소서 5장 1절 말씀에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은 오직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먼저 사랑하사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은 우리들을 향해 거룩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살도록 요청하십니다. 어린 자녀가 부모를 본받듯이 하나님을 본받도록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옛 사람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면 결국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5절“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본받는다는 말은 모방하고 따라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불신자들 가운데도 때때로 도덕적인 삶의 모범으로서 예수님을 모방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진실로 본받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범을 따름으로 하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가게 되며 라이프스타일이 하나님 나라 자녀답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물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닮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똑같이 닮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 살고자 하는 믿음의 전진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본받아 살아가도록 우리가 부름 받았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나아갈 때 우리를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무엇인지 2절 이하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
그 첫 번째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와 같은 사랑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2절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이야말로 성도로서 따라야 할 하나님 자녀로서 삶의 본보기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죄 가운데 죽어가고 있던 우리를 살리기 위해 대신 죽으셨고, 우리의 평화를 위해 대신 수난을 당하셨고, 우리의 기쁨을 위해 대신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사 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가를 나타내는 확실한 기준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죽기까지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은 다함없이 주는 사랑입니다.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위치, 권세, 영광을 다 내놓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어떤 전제조건도 없이 값없이 내어주셨습니다.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사 번제단에서 향기로운 희생 재물이 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랑의 기준은 자기희생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기준을 요구하셨습니다. 요 15: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말씀하셨을 때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 사랑은 애정을 넘어 자기희생의 섬김까지 나아가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와 같이 사랑하셨음을 보고, 그 사랑에 감동한다면 그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도 실제가 되어야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다하는 것 정도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별될 수 있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체를 향한 우리들의 마음과 세상을 향한 우리들의 마음의 수준과 삶의 수준을 높일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또 지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적으로 바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가 된 것처럼, 성도들의 희생적인 사랑의 삶도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로 드려지게 될 것입니다. 롬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였습니다. “거룩한 산제사”는 제물이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제물이 활동하는 가운데 그 생애 전체를 하나님께 헌신하고 지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불신자들은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사랑에 자신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갈 때 그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닌 사랑의 본질을 닮도록 부름 받은 자녀입니다. 구속자이신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을 반영하도록 부름 받은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하나님을 끊임없이 닮아가고자 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올려드릴 때 우리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하는 자녀가 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철저하게 누구를 따라 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여전히 옛 사람의 구조를 따라 살고 있다면 우리는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일 수 없습니다.
새 사람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모든 행실에서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야합니다. 우리의 기준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행동 하나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져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것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으로 큰 특권이며, 영예이며, 참으로 높은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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