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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삶 : 대하 7:12-16

by 최수근 2015. 1. 11.

2015년1월11일 주일설교문

[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삶 : 역대하 7장 12-16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나는 거룩한 하나님 자녀인가? 

하나님의 임재연습의 저자인 부활의 로랑 형제는 영적인 삶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거룩한 동행 없이 영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와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신앙생활 하고 있다면 분명 잘못 되고 있다는 사인입니다. 2012년 바나 그룹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인 중 40퍼센트는 교회에 다닌 뒤로도 삶에 전혀 변화가 없다고 했고, 예배에 참여하는 5명중 3명은 예배 시간을 통해 새로 깨달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전에 교회에 다녔던 사람들 중 3분의 1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다고 응답을 했습니다 

미국성서공회도 2013년 성경에 대한 견해를 조사했는데, 성경을 통해 영적인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의 수가 꾸준히 줄고 있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믿는 교인들 중에서도 성경을 하루에 한 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은 겨우 20퍼센트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오시지만 시간을 내서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겁니다.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고, 신앙 생활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과 영적인 소통은 점점 더 단절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단절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성도로서의 정체성 상실입니다. 성도란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존재인데 그 구별됨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주변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삶의 모습에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지금 교회의 세속화가 심각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세속화는 점점 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정체성의 혼돈을 겪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에베소서 1:5의 하나님 말씀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택하시고, 양자 삼아주셨을까요? 에베소서 1:51:6에서 하나님은 두 가지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데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와 같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에 택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거듭나지 못한 옛사람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영광을 가리는 자들로 전락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옛사람의 자리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셨는데 말입니다. 그와 같이 옛사람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사랑의 진정성을 믿지 못한 결과이고, 영적인 소통의 부재로 인해 나타나는 심각한 증상입니다 

거룩한 나를 회복하라! 

하나님께서 구속사를 위해 특별하게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 또한 이와 같은 영적 갈등을 끊임없이 겪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씨로부터 이루어진 이스라엘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그들의 역사 속에서 생생하게 경험한 민족입니다. 출애굽과 가나안정복, 사사시대를 거쳐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지는 과정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역대하 7:14에서 그렇게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점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갖습니다. 만일 여호와의 이름을 저들에게서 뗀다면, 하나님이 저들 속에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세상 나라들과 구별됨이 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나라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이처럼 여호와의 이름에 달려 있고 세상과 거룩하게 구별됩니다 

그 점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구분선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그들 위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상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이었습니다. 이처럼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라는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입은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삶을 규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경건함의 의무가 우리에게 요구되고, 경건한 삶이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계승되어야만 합니다. 거룩함이 이루어지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만나 주실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가시적으로 보이는 성전을 세우시고, 거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봉헌 드렸을 때, 솔로몬에게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주시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떠나 각종 우상을 섬기다가 결국 그들의 타락으로 인해 심판을 받았고,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주십니까? 오늘 날 하나님은 우리를 성전으로 삼아주셨습니다(고전 3:16).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고, 교회의 일원이 되는 우리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택함 받은 성도들을 향해 주시는 위대한 축복입니다. 우리가 바로 성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성전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성도로서 구별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벗어났을 때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셨고,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전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없는 성도 또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종교인일 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원칙은 동일합니다. 고전 3:17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백성으로서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지 못했을 때 공의의 하나님은 심판 막대기를 드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심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금 하나님 편에 설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향해 먼저 소통의 문을 닫지 않으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소통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두신 소통의 길은 어떤 길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역대하 7:14에서 그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14절 말씀에서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을 보면 네 개의 동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떠나다”, “낮추다”, “기도하다”, “찾다입니다. 나머지 3개 동사 듣고” “사하고” “고치다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신앙의 삶은 사변적인 것이 아닙니다. 행함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소통의 문을 여는 첫 번째 단계는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악의 길에서 떠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악한 길에서 머물러 있지 말고, 즉시 떠나야 합니다. 교회가 죄인들의 모임이고,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죄를 용납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소통을 가로막습니다. 그 길에서 떠나지 않는 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날마다 옛사람의 자리에서, 구별되지 못하는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더 확실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6: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려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소통의 문을 여는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거룩한 백성이고, 하나님을 유일한 주로 섬기는 언약백성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하심 앞에서 자신을 스스로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오직 은혜를 입어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 앞에 겸손함으로 나와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과 소통의 문을 여는 세 번째 단계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분의 뜻에 반해 무언가를 억지로 하게 만드는 기계적 장치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과의 접촉을 유지하는 방법이고, 그분과 지속적으로 의사소통하는 통로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기도의 중요성을 더없이 강조합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56:7).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33:3).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7).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절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닫힌 기도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올해 기도의 시간을 구별해 놓으십시오. 기도를 통해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네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바쁠 때 일수록 더욱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신앙 생활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주님께 관심을 기울이는 데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방문 때문에 분주했던 마르다처럼 다른 일들에 열중한 나머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있지 못한 겁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임재 앞에 서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엉뚱한 곳에 우리의 시간과 영적인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가 영적으로 채워지기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로 다가오십니다. 이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거룩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은혜가 열립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거룩한 소통이 회복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이렇게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는 온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그분께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약속의 징표였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이 파괴되어 존재하지 않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전 삼아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임재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날마다 그 분을 기도와 찬송과 말씀 가운데 만나 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영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금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실 것입니다. 그와 함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주실 것입니다.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우리를 택하시고 거룩한 성전 삼아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너희에게 있으리라.” 말씀하신다면 정말 그 마음이 무한감동으로 떨리지 않겠습니까? 모든 걱정과 두려움, 염려, 불안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에서 존재를 감추고, 대신에 하늘의 평강이 물밀듯 밀려올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손하게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자들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백성들로 삼으시고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증인이요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올 한해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과 친밀하게 살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위로와 소망,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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