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6일 주일설교문
[선교적 삶을 삽시다: 마 28장 16-20절]
최수근 목사
여러분이 CEO로서 빅 프로젝트를 누군가에게 맡긴다면 어떤 이들에게 맡기시겠습니까? 그것을 잘 수행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일반 상식을 깨뜨리셨습니다. 전혀 비전을 성취할 수 없어 보이는 이들을 향해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엄청난 과업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4곳에서 마지막 제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선교인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있는 제자들의 면모를 보면 누가 보아도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한 명은 예수님 따라다니다가 삼 년 마지막 끝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했지요, 다른 11명도 배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 다 도망가고, 베드로는 철저하게 예수님을 부인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지시를 따라 갈릴리로 모인 제자들, 거기서 예수님을 뵙고 경배를 드렸음에도 여전히 의심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17절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부족한 모습을 주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오합지졸과도 같은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저런 이들이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만, 예수님은 곧 다가올 시간과 교회사의 2000년을 꿰뚫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제자들의 실상을 보면 지금 우리의 상황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배신하셨습니까? 아직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심하고 있습니까? 최소한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적 삶을 수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첫 단계로서 준비가 된 것이지 있는 그대로 나가면 지속적인 역사가 일어날 수 없고, 초전박살일 뿐입니다. 제자들에게 권세가 주어져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권세, 그분의 통치권입니다.
이 권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으신 권세입니다. 18절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나님께로서 부여해주신 하늘과 땅의 권세, 우주의 통치권을 가지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이루시기 위해 제자를 파송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권세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권세를 힘입어 제자들은 파송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 우리가 선교적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주님의 권세,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킹십, 통치권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로마서 5장 17절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오직 우리는 주님의 통치권을 대행하여 나아갈 때 어둠의 역사를 대항하여 싸울 수 있고, 구원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 제자들에게 권세를 부여해주시고, 파송하시면서 예루살렘과 유대를 넘어 모든 민족에게 나아 갈 것과 그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것을 명하셨습니다.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선교적 삶은 무엇보다도 자기 삶의 범주 안에 안주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넘어 타인에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구원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저들로 하여금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라하신 명령에 충실한 삶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꾸준히 복음이 흘러가며, 복음이 닿는 곳곳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가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를 보아서도 알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그곳에 삶이 뒷받침되지 못할 때, 다시 말해 제자를 삼기 위한 우리들의 삶이 말씀의 실천적 삶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 어느 곳이라도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 참 교회는 세워질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제자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세상으로 나아가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0절a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이 일이 어떻게 해야 가능합니까? 사람들에게 그들의 가르침의 영이 설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제자들이 지켰을 때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께 맹비난을 받았습니까? 그들이 본을 보이기보다는 사람들을 정죄하기 바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가로막았습니다.
이렇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 우리를 통해 생명이신 예수님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우리는 선교적으로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과 삶이 일치 되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믿음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신다면 이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지만 그 길을 좁은 길입니다. 외롭고 힘든 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선교적 삶을 살아가도록 하시면서 그 길을 우리 홀로 가도록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20절b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심으로써 항상 이 지상명령을 지켜가는 선교적 삶을 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임재와 권한 부여가 없다면 제자들은 세계 선교를 생각조차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이 일을 명하실 때 능력까지 주셨고, 주님이 주시는 그 능력은 곧 주님의 임재입니다. 엔 크리스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대위임령은 오늘날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시는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대위임령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나온 반웅입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나서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잡혔습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는 일이 지지부진하다면, 그것은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이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그리고 그 분으로 인해 삶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만남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명하신 것은 선택적 삶이 아닙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선교적 삶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모든 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열방에 복음을 전하도록 제자 공동체를 파송하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습니다. 마 28장 16-20절, 눅 24장 44-49절, 요 20장 19-23절, 행 1장 8절이 그렇습니다.
복음서를 끝맺은 이러한 파송들은 사실상 새로운 언약 공동체의 정체성과 역할을 확립합니다. 선교적 삶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단순한 선교의 실천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교회 자체의 삶과 관련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기 위해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한 몸입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다시 새롭게 되고 회복된 하늘과 땅을 가져오기 위해 세우신 하나님의 장기적인 목적이고, 그 목적의 선봉에 우리는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곳에서 합당한 선교적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행 1:7-8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서 화석화되지 않고 끊임없이 선교적 순종으로 이어지는 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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