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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하나님 말씀 앞에 서자: 느 8장 1-12절

by 최수근 2020. 1. 12.

2020년 1월 12일 주일예배설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자느헤미야 81-12

 최수근 목사 

새해는 사람들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출발하기 좋은 시점입니다. 지난해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에 여러분들은 어떤 결단을 하셨나요?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획들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성장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92: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성장하리로다.”

더욱이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지며 그로 인한 성장의 목표가 분명합니다.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렇게 우리가 자라려고 하면 우리의 성장을 저해하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심령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4:23-24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새로워짐은 감정적 변화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변화는 금방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말씀 앞에 선 유대인들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82절에 일곱째 달 초하루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71일은 유대 종교력을 말하는 것인데, 절기로는 나팔절이라고 합니다. 이날은 민간력으로 11일 새해입니다. 새해에 백성들이 모여 나팔절을 지키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8장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은 포로 귀환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이후 포로로 많은 이들이 잡혀갔습니다. 그후 주전 538년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첫 유대인 무리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다시 세워지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들에 의해 온갖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핍박을 이겨내며 그들은 먼저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 뒤로 80여년이 지나서 두 번째 유대인 무리가 제사장이자 학사인 에스라의 인도로 돌아오고, 그 후 느헤미야가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이 두 사람은 이스라엘의 영적 갱신을 위해 함께 노력하였고, 많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런 영적흐름 속에서 새해를 마지한 것입니다. 이들이 모이기 며칠 전까지는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벽 건축을 마치고 바로 며칠 만에 맞이하는 나팔절, 신년에 수문 앞 광장에 모인 것입니다.

그들이 모인 목적은 축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역사를 마쳤다고 축하하고자 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먼저 요청하였습니다. 8: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오도록 자발적으로 요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아가다가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살면서 그들은 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절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발적으로 모였을 뿐 아니라 신앙 지도자 에스라에게 율법 낭독을 요청한 것은 당시 이들이 예루살렘 성벽 중건 과정을 통하여 신앙적으로 매우 고양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52일만에 성벽재건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기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적 열정은 곧 말씀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감격 그리고 통회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나팔절에 있었던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반웅을 무려 12(1-12)에 걸쳐 길게 언급하는데 이는 이 행사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삶을 살고자 하는 내적 회복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새로운 전기가 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의 열정 없이는 하나님 말씀 앞에 서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때문입니다. 이 열정을 다시 추스르고 영적인 흐름을 잡아가기 좋은 시점이 새해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섭시다. 그리고 내일부터 성경 읽기를 다시 시작합시다. 우리는 변함없이 말씀 앞에 서야만 합니다. 그리고 경청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믿음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듣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받고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1절에 그들이 말씀 듣기를 자청한 것처럼 갈망하는 마음에서부터 들을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밭이 기경되어 있는 것이죠.

2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제사장 에스라가 알아들을 만한사람 앞에서 말씀을 읽었다고 하였습니다. ‘들어서 이해할 만하다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알아들을 만한이란 말은 단순히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그저 지식적으로 알만한 능력을 지닌 대상을 가리키기보다는 율법의 의미를 분별하여 깨달을 수 있을 만한 능력을 지닌 대상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절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이 낭독되는 상황을 묘사하는 1-12절 단락에서 이 동사는 매우 중요한 핵심 단어로 등장하는데 그것은 이 단어가 율법을 백성들에게 낭독하는 궁극적 목적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낭독하는 궁극적 목적은 그들로 무엇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하게 하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자기 자신의 실상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에스라가 낭독하는 말씀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무려 여섯 시간 말씀을 읽은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과 열심이 얼마나 대단하였던지 그들은 다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빼앗기거나 흐트러짐 없이 6시간 이상을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그와 함께 말씀을 읽고자 할 때 말씀 앞에선 백성들의 행동이 어떠한지 5절 이하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5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책이 펼쳐지는 순간 그 앞에서 일어섰습니다. 이것 역시 그들이 선포되는 율법의 말씀에 복종하고 또한 말씀에 따라 행할 것을 다짐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은 행동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자들의 겸손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어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자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6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자 모든 백성은 그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인 신뢰와 복종과 경배로 화답하였습니다. 이제 선포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청종의 자세를 갖춘 것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고 아멘하겠습니다. 이런 자세라면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뜨거운 열정과 자세는 놀라운 영적 회복의 물결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8-12).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단지 듣는다고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8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본문의 표현은 오늘날의 상황으로 보면 성경공부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나눔을 통해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통해 이루신 구원의 은혜들을 알아 가는 것처럼 이 날 레위인들은 백성들 중간 중간에 들어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듣고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하게 말씀의 뜻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다 우는지라.” 앞선 4-8절에서는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고 레위인들이 그 말씀을 알기 쉽게 해석해 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율법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백성들은 모두 울었습니다. 여기서 우는에 해당하는 보킴울다란 뜻의 동사 빠카의 분사형입니다. 이처럼 분사형이 사용된 것은 백성들이 잠시 잠깐 운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느껴 울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하여 진정한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읽어주는 율법을 듣고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고, 하나님의 계명과 자기들의 행위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 크게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이에 에스라는 격려하는 말로써 이들을 진정시키면서 율법의 본 목적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에 있다는 점을 똑똑히 알렸습니다. 기쁨의 근거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분명한 가르침을 주셨다는 데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무관심하실 수 없다는 표입니다.

이에 모든 백성이 가서 즐거워하며 나팔절을 보냈습니다. 12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에스라와 레위인들이 낭독하고 해석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알도록 가르쳤던 바로 그 말씀을 그 백성들이 밝히 알았기 때문에그들은 자신들의 처소로 돌아가 기쁨의 잔치를 베풀 수 있었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그 백성이 율법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은 즉각적으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심정적 변화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깨달은바 그 말씀에 따라 즉각적으로 그들의 슬픔의 자리를 걷어내고 곧 즐거움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처소로 돌아가는 행동적 변화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렇듯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심정적 변화와 행동적 변화가 항상 함께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나팔절이 오늘 여러분의 2020년을 여는 새해, 나팔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 하나님 말씀 듣기를 기뻐하며 그 말씀 앞에 설 때 회개가 일어나고 영적 각성이 일어나 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 앞에 서면 말씀은 우리를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바로 그 자리, 회개의 자리로부터 우리는 기쁨의 자리로 나갈 수 있습니다.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말씀 앞에서 새로워지는 역사가 없이 우리에게 그 어떤 영적 기쁨도 없습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날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약함이 들어나고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복과 변화의 역사를 통해 말씀의 기쁨이 여러분 안에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말씀을 새로워지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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