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우리 이웃과 함께!!!
주일예배설교원고

쉐마! 이스라엘(신6장4-9절)

by 최수근 2012. 10. 11.

2012년10월7일 주일예배설교

[ 쉐마, 이스라엘 : 신6장4-9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효과가 없는 경우를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이런 경우들이 참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가 에스컬레이터 사용요령입니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앞에 보면 요즘 이런 문구들이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빨리 가기 위한 시설이 아닙니다. 두 줄로 서서 안전하게 이용해주세요!” 지난 6년 동안 그렇게 많은 홍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보면 오른쪽 한 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왼쪽은 여전히 바쁜 사람들이 걸어서 올라갑니다. 간혹 왼쪽에 서서 타고 가다보면 뒤에서 밀고 올라오는 사람들 때문에 서 있기가 민망합니다. 한줄 타기로 인해 그간 에스컬레이터사고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쇠귀에 경 읽기 식으로 개선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본래 에스컬레이터 한 줄타기 운동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성숙한 시민문화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 90%이상의 놀라운 정착율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사고가 급증하면서 다시금 2007년부터 두 줄타기 운동을 벌였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번 습관화된 일을 고치기란 여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는 한줄 타자고 하더니 두 줄이냐? 지금이 뭐가 어때서!” 게다가 다른 사람들 눈치 보면서까지 두 줄로 탈 이유가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430년간 애굽의 생활에 익숙해 있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수많은 신들에게 노출되어 있었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그들에게는 절실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보면 피는 히브리민족이었지만 삶은 애굽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대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430년 만에 모세를 통해 애굽으로부터 구원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철저한 준비 없이 광야로 나왔으니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그러니 곳곳에서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투정을 참아주셨습니다. 다 받아주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인도하여 모세와 처음 만나셨던 시내산에 도착해서 그들과 시내산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말씀하면서 십계명을 지키도록 요구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요구였습니다.

그리고 돌 판에 십계명을 새겨주셨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십계명 돌 판은 백성들 앞에서 공표되기도 전에,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깨뜨려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우상을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모세의 간절한 중보기도로 더 이상의 화를 모면하였지만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넜지만,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경험했지만, 애굽에서 길들여졌던 옛사람을 버리지 못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생활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가데스바네아에서 치러진 하나님의 첫 번째 시험에 이스라엘 백성은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열두 정탐꾼을 보내고 어떻게 가나안을 점령할 것인가 모색했던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명의 정탐꾼의 말을 믿었습니다. 결국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광야에서 비참하게 죽어가야 했습니다. 저는 출애굽 과정을 볼 때마다 왜 저렇게 되어야할까 이해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렇게 많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전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설령 들었어도 쇠귀에 경 읽기 식이었습니다. 그걸 보면 기적이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외부의 물리적인 힘이 우리의 믿음을 바로 잡아주질 못합니다. 우리 안에서 분명한 내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수많은 기적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게 광야에서 출애굽1세대가 다 죽고 출애굽 2세대가 드디어 가나안 땅이 바라다 보이는 모압평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 모세는 더 이상 가나안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여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도 거기까지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니 모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이 못 들어간다는 아쉬움도 컸겠지만 출애굽 1세대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 출애굽 2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습니다. 이대로 저들이 가나안에 들어간다면 모세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의 끝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새로운 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자 할 때 다시금 시내산 언약을 그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명기는 이렇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세 편의 설교로 이루어져있습니다.

1. 쉐마의 목적

그 신명기 핵심주제가 바로 신명기6장4-9절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명기6장4-9절까지의 말씀을 4절의 첫 글자인 쉐마, 즉“들으라.”는 말을 따서 그대로 쉐마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말씀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죽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있는 그들의 자녀들은 부모들의 실패를 보면서 분명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 점에서 쉐마는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수많은 우상들과 타락한 생활들에 맞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신앙과 삶의 시금석으로 제공된 것입니다. 그들과 역사의 주되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끈임 없이 점검하는 다림줄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후에 유대교는 모든 유대인들이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이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2.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절에서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바로 유일신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놀라운 구속사건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 땅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이집트의 수많은 거짓 신들을 무력하게 만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홍해에서 갈라진 바닷길을 걸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1세대들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만을 그들의 마음에 담아두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옛 자리, 애굽의 자리, 바로에게 종노릇하던 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모압평지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준비하고 있는 출애굽2세대들에게 모세는 그들이 섬겨야 할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선포하였고, 그 진리의 사실을 들으라고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쉐마는 이스라엘의 충성은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께만 바쳐져야 하고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신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급진적인 신앙고백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제1계명의 실천을 요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빈번하게 하나님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 땅의 신들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이스라엘의 신앙을 다시금 점검하였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의 자세와는 차별화되어야 했습니다. 5절에서“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하였습니다. 다하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복잡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명령은 단순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걸라는 요청입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막론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감정적인 차원이거나, 추상적이거나 애매한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계약의 요구들에 대한 복종을 통해서 입증되어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살고, 여호와의 길을 걷고(19:9, 30:16), 그의 계명과 법도와 규례들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준행함으로써 실천될 수 있습니다. 말로만 주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주님을 향한 실천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이 말씀 대하여 칼뱅은 설교하기를 “너는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마치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는 너희 목숨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네 마음 혹은 네 심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굳이 비교하자면 다른 무엇들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끝으로 너희들에게 분배되고 할당된 네 모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명령은, 너희는 가난해질 만큼 재산과 소유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마음과 의지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사랑, 전 자아를 바쳐서 표현되는 사랑, 극단적으로 혹은 상당한 수준의 희생을 동반한 사랑을 우리에게 요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드려지는 어떤 궁극적인 충성도 인간이나 다른 것들이 중간에서 가로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들의 삶을 근거지우고, 존재케 하고, 그의 운명을 형성하는 것들과 사람들에 대한 부차적인 충성들도 물론 가능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관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은 결코 만족스럽게 나눠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올인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궁극적이고 완전한 충성과 복종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로 확실히 향하여 정립되어 있다면 이러한 이차적인 충성들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예 빌미를 제공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 돌판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4. 새기라 가르치라 기록하라

이처럼 돌판에 새겨진 계명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이 먼저 그 언약을 어겼습니다.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냥 옛 습성대로, 편한 대로, 자신들의 욕구대로 살았습니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는 모세는 출애굽 2세대를 향하여 새로운 시도를 명령하였습니다. 새로운 언약은 깨어지기 쉬운 돌판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그들에게 기억되어야만 했습니다. 그 일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것이었습니다. 쉽게 깨뜨릴 수 없도록, 마음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계약서들을 쓰지만 진정 마음에 신뢰함으로 쓰지 못하는 계약서들은 언제고 휴지조각이 될 수 있습니다. 산에 가보면 큰 바위에 자기들의 사랑의 고백을 새겨놓은 대단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새겨놓았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이 영원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최대의 걸작품인 인간의 마음에 새기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우리의 생명으로 여기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선언하신 새 언약에 대해서 말했을 때 너무나 분명하게 깨달았던 사실입니다. 렘31:33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라고 했습니다. 새 언약은 ‘마음에’있어야 합니다. 즉 백성들은 그 율법을 내면화시켜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냥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들의 삶이 되어야 했고, 그들의 생명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이 말씀들’과 더불어 행하여야 할 것에 대해 받은 최초의 가르침은 그것들을 심장에 새기고 마음에 간직하고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되도록 만들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계약법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계약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그렇다고 십계명을 법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참 정신을 망각한 것입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만큼 그것을 지킬 때에만 이스라엘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십계명은 동시에 하나님 사랑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5. 네 자녀에게 가르치라.

그 일을 그들은 삶으로 지켜내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자기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사랑을 자녀들과 이웃에게까지 전수해야 했습니다. 7절“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나로부터 시작해서 자녀에게로,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가야만 합니다. 당대에 그치는 신앙을 하나님은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이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는 언약의 징검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어느 특정한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가운데 우리의 전인격을 통하여 거룩하신 말씀이 우리 주변으로 흘러가야만 합니다. 왜 말씀이 단절됩니까? 왜 거룩한 영향력, 거룩한 생명이 흘러가지 못합니까? 내게 담고 있는 말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무엇을 담지하고 사느냐가 나를 결정합니다. 내 삶에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산다면 거룩한 생명의 열매가 나타날 것입니다.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한다면 말씀이 나를 생명으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이 다른 사람까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거자의 삶으로 오늘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담대하게 전하셔야 합니다.

6. 기호로 삼으라

마지막으로 이 말씀들은 우리의 몸, 거주지, 도시 안에 하나의 표지로서 부착되고 유지되어야 합니다. 8-9절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하였습니다. 기호로 삼고, 표로 삼고, 기록하는 행동들은 단순한 외부적인 적용들에 대한 지침이 아닙니다.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와 문에 기록하는 행위들은 오직 하나님의 가르침을 우리 안에 제2의 본성으로 만들고자 시도하는 것들입니다. 요즘도 이스라엘에 있는 호텔 방의 문설주에 보면 다양한 형태의 메주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안에 말씀을 두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이 계명을 몸에 묶고 다니고, 미간에 붙이고 하는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계명을 삶의 동반자, 보호자로 붙여주고자 하셨습니다. 잠언6:20-22에“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말씀합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우리 몸에 지니고, 우리 거처에 보관함으로써, 매 순간 우리는 말씀의 비추임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나누어지거나 다른 것에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은 쉐마의 말씀으로 우리를 삼겹줄처럼 묶어주시는 것입니다. 약 3400년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진 쉐마의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수많은 우상들과 타락한 문화에 맞서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켜야 할 신앙과 삶의 시금석이 되어야 합니다. 헛된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성경에서 약속한 대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