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5일 주일설교동영상
[신령한 복을 주시다: 요 1장 1-3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을 쳐보면 교보문고에서는 77권의 책이, 예스이십사에서는 92권의 책이 뜹니다. 자기 정체성을 알아가는 것에 그만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를 시작하면서 1절에서 에베소 사람들에게 그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떠한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들이 ‘성도들’이며 ‘신실한 자들’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결과로 2절에서 기원하고 있는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쫓아오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첫머리에 여러 서신에서 반복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 백성의 문제는 언제나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자신들이 구별된 사람들인가를 인식하지 못한 겁니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일들을 온전히 알았다면 결단코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식의 결핍은 치명적입니다. 자기들의 생각과 뜻을 고집하여 가야 할 곳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끝은 망하는 것입니다. 죽음입니다. 호 4:6에서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러기에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이 어떠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고 있어요. 항상 잊지 말라는 겁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지만 또한 그들과는 전적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입니다. 이렇게 세상과 구별됨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열매로 명백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관계에 온전히 서 있을 때 다른 어떠한 것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평안 얻게 되는 거죠.
우리로 이와 같은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 가능하게 된 걸까요? 3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3절은 에베소서 전체의 키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이 모든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기에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소리높여 그 일을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십시오. 모두가 행복해 보입니까? 요즘 3040 세대는 난리입니다. “평생전세난민”이라는 말도 씁니다. 먹고 사는 일이 빡빡한 겁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다른 이들을 향한 저주, 미움, 세상에 대한 불만 등이 넘쳐나고 있어요.
이런 어둠의 상황 속에서 찬양과 감사와 자족하는 마음은 우리 그리스도인을 돋보이게 할 겁니다. 우리가 이젠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거죠.
기쁨과 찬양,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참 기쁨과 평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예배의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양이 쉬운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는 것은 복음을 이해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를 하고 회복하여 새 새명을 주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이 계획을 위해 아들이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인류의 죄를 스스로 담당하셨고, 그들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고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창세 전에 이루어진 계획이었고,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세상이 있기 전에 우리의 상황을 아셨고 자기 아들과 언약을 맺어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던 겁니다.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말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표자요 우리의 중보자시오 우리의 보증이십니다. 모든 복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는 것은 이 복음을 알고 자기의 복음으로 믿고 수용하면서입니다.
그럼,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하는 일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물론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닌 자신을 위한 자리일 뿐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인의 한사람으로 사는 것뿐입니다.
이런 이들일수록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하기보다는 자기 자신들을 위한 것부터 관심을 갖습니다. 영적인 삶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만을 생각하고 자신들의 받을 축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늘의 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시점부터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예배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죠. 무턱대고 축복을 향하여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원천을 생각하고 그 원천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복의 근원은 “그리스도”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을 벗어나면 우리는 결코 어떤 복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모든 복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기 때문이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어떤 축복도 없습니다.
이 점에서 최근의 이단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보조, 보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구원의 은혜는 주님뿐입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른 어떠한 이름이든지 더하는 것은 그 순간 여러분이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복의 유일한 통로요 독점적인 통로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이 사실을 얼마나 잊기 쉬운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노라하면서도 자꾸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받을 수 있는 복이기에, 이 복은 세상이 생각하는 복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복은 하늘에 속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것이기에 신령한 복입니다.
사람은 본질상 신령한 일들에 관하여 하등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대부분 이 세상의 일들에 관해서만 관심을 갖습니다. 집이나 돈이나 사업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즐거운 일들에 대한 것이죠.
그러니 정작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하여 말하기 시작하면 그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돌변합니다. 이야기를 잘하다가도 “그런 말하려면 가라”고 합니다. 그가 성령에 의하여 살리심을 받기 전에는 여전히 그러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는 신령한 마음, 신령한 사고 방식, 신령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중생해야만 이것은 주어집니다.
우리가 누리는 복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복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 왔습니다. 구약에서의 복은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복을 받았는지를 평가할 때, 양과 염소와 소의 수, 그가 소유하고 있는 땅으로 평가했던 겁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복은 땅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 이 세상”이 강조되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기독교가 인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활로를 찾기 위해 번영주의, 상급신앙, 삼박자 축복 등의 원리를 사용했던 거죠.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오니까.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것”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많은 잠시적인 복을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받지만 참된 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늘의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골 3: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이라는 말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함축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우리를 축복하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졌음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분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더 이상 이 땅에 억매이지 않도록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찬송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누리고 맛보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된 이 신령한 복을 누리고 그 누림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감사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소리높여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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