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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장 5-6절

by 최수근 2020. 7. 27.

2020년 7월 26일 주일설교동영상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장 5-6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요즘 한국 사회 내에 이단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구원파, 통일교 등 국산 이단을 비롯해 몰몬교, 안식교, 여호와증인 등 수입 이단들이 각자 세력을 확장하고자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들에게 미혹되는 이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입니다. 요즘은 카톨릭 등 타종교로까지도 사회봉사운동을 빙자해 접근하면서 세력을 불려가고 있습니다.

이단에 넘어가는 경우들을 보면 여러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기독론과 구원론에 대해 성경적으로 잘 알지 못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어주신 구속사의 그림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해 미혹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려가시는 구원의 큰 그림을 명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은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사역을 우리에게 잘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선택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성령님의 인치심과 보증을 말씀합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권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려가시는 구원의 그림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들로, 양자들로 세워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1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이 일을 기뻐하셨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우리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시며 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존재하기 이전에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들들로 삼기를 기쁨으로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심으로 하나님 앞에 다시금 설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단들은 교묘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 교주들을 신격화하고 자기들의 교주만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왜곡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입니다. 다른 이름은 주지 않으셨습니다.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할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입양을 목적으로 합니다. 택하셔서 먼저 우리를 거룩하게 흠이 없게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거룩하신 아버지의 자녀로 품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돌아온 탕자, 둘째 아들에 대한 그림을 떠오르게 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상속받아 집을 떠났습니다. 집을 떠난 후 받은 돈을 신나게 쓰다가 재산을 다 허비하고 쫄쫄이 굶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달려가 둘째 아들을 안아주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이때 그냥 더러운 몸에 새 옷을 입혔을까요?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온집 안에 악취가 났을 테니까요. 깨끗한 물로 그간의 더럽혀졌던 몸을 말끔하게 목욕시켜 냄새를 없애고, 향품을 쓴 다음에 새 옷으로 갈아입혔을 것입니다. 그 후에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풉니다. 

우리는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었습니다. 죄로 온통 물들어 온갖 악취가 났습니다. 그 끝은 분명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지옥의 형벌 밖에는 없었던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를 소외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돌아온 둘째 아들이 회복되었던 것처럼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말갛게 씻겨주시고,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셔서 아버지 앞에 서게 해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이죠. 이것이 하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5절을 원문에서 보면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은 양자의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를 예정하사 자녀들로, 즉 양자로 받아들여지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실은 양자 개념은 유대인에게서는 통용되지 않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로마 사회에서 통용되던 법입니다.

로마법에서는 입양된 자녀가 친자와 똑같은 권리를 누립니다. 자녀로서의 권리, 부모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거죠. 그런 점에서 사도 바울이 양자의 의미로서 우리들의 자녀 됨을 설명하는 것은 자녀로서의 지위와 신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왕의 자녀로서의 지위와 신분을 갖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의 특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그 분의 것을 전부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독립을 선언하지 않는 한 아버지의 것을 넉넉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양자로 받아들여진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다 주시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즘 주지 않으려는 부모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악한 시대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우리말 성경은 이렇습니다.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됐으니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큰 사랑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 일에 고민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바람이나 인간의 요청에 의하여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와 긍휼로 말미암아서 움직이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양자로 우리를 받아들이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44-6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압도하시는 분으로 불리어지기 보다는 친밀한 아빠로 불려지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어린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보호하여 주는 아빠처럼, 성령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거룩한 삶으로 세워져 가도록 도와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14절에서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성령의 사람, 이것이 아들 됨의 잣대입니다. 

또 하나의 아들로서의 특권은 유업을 받을 자인 것이죠. 상속자입니다.

47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는 모든 특권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구원이며 영생입니다. 

그와 함께 아들 됨에는 특권과 함께 책임도 동반됩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자녀에 대해 갖는 마음은 동일합니다. 자녀가 잘 자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자녀로 성장입니다. 버릇없이 아무렇게나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 자녀로서의 성장과 성숙에서 거룩함은 매우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히브리서 12:10b에서 말씀하죠.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시는거죠.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일은 측량할 수 없는 특권인 동시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계속적인 도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특권들을 누릴 수 있는 것이 구속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 감격적입니까? 감사하고 있습니까? 삶에 있어서 이 진리가 여러분에게 도전이 됩니까?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감동이나 감사가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자녀 됨의 진수를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는 순간, 영적으로 각성하는 순간, 우리는 부르심의 존재론적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5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6절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구원의 그림을 그려가는 하나님의 목적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에 있음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는, 5절의 목적, 아들들을 삼으신 목적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그것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시는 자는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양자로 삼아주시고, 이 모든 프로세스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든 이단들은 이것을 거부합니다. 또 다른 보혜사 교주들을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짐을 이야기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행위들을 요구합니다. 재정적인 것을 요구하고 교주에 대한 헌신과 복종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실패로 보거나 부족한 것으로 보는 거죠. 우리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의 프로세스를 정확히 보고 믿고 알고 있으면 이런 미혹에 넘어갈 일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거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의 목적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습니까?

구원이 언급되는 순간에 가장 우선적으로 말하여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끊임없이 찬송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거죠. 그런데 그 표현이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은 최종적으로 우리 안에서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로 받아들여졌고,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세워갈 때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전인적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시면서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반대로 죄의 진면목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하는 영광을 돌리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죠. 

오늘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르심 앞에 우리는 어떤 삶으로 설 것인지 철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두리뭉실하게, 적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만을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사의 프로세스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주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연합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으로 세워져 갈 것이고,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생명이 흘러갈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으로 서 가는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입술로 그치는 영광의 찬송이 아닌 온몸으로 드려지는 거룩한 영광의 찬송입니다. 

가식과 거짓이 아닌 예수 안에서 그려져 가는 참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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