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2일 주일설교동영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엡 1장 3-4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우리 한민족은 복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많은 행동들을 복과 연결시킵니다. 좋은 일을 하거나 매사에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죠, 반면에 궂은 일을 하거나 한숨을 쉬면, 혹은 다리를 떨면, 문지방에 걸터 앉거나 발로 밟으면 복이 달아난다고 합니다. 과연 좋은 일을 하면 복이 오고, 궂은일을 하면 복이 달아나는 걸까요? 한국인들의 실생활 속에 흘러 내려오는 복에 관한 생각들은 대부분은 그렇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오늘 기독교 안에서도 기복적인 신앙으로 표출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기독교 신앙을 기복적인 생각에서 접할 때는 복음의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고 그 거대한 구원의 은총 앞에 무릎 꿇기보다는, 단지 복 받고 싶은 열망의 충족을 위해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모든 초점이 복에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 마음이 다분히 이기적이기에, 자기의 노력에 따른 성과가 없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의 노력은 지속되지 못합니다. 셈을 해보니 손해보는 장사라고 여기는 거죠.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거나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이라기보다는 미신이요 기복신앙입니다. 이 왜곡된 틀을 깨지 않는 한 우리는 복음의 실체에 접근조차 할 수 없고,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구원의 기쁨이 있을 수 없죠. 단지 자신이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복을 받았는지, 아닌지에 따라 감정이 널 띌 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복은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이 땅의 가치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누릴 상속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것이 피부적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그건 지금, 자신의 현실 문제에 깊이 빠져서 그들 삶의 자리에 허락하신 은혜를 보지 못하기에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고 위의 것을 사모할 때 보여지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복을 주시고자 하는 걸까요? 그 앞에 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절대 은혜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닙니까?
무엇보다도 이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우리의 행동으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신령한 복의 누림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복을 주시기로 하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각자 믿고 있는 우상을 선택합니다. 가장 그럴싸하고 복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쪽을 택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그리스도인 됨은 우리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함으로 되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우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셨을까요? 하나님의 택하심은 세상이 조성되기 이전 아버지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와 함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구속사역을 통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자격도 충족되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택함을 입으거죠. 이것을 정확히 인지한다면 우리는 한 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말합니다. “우리는 논증에 의해서나 이성에 의해서나 하나님이 어떻게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선포하심으로 그것을 안다. 그리고 믿음 안에서 깨닫게 될 때 그 진리가 충분히 스스로 입증되는 것을 체험한다.”
그렇게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택하셨습니까? 어떤 목적을 갖고 택하셨을까요?
1:4b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택하심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는 시작점입니다. 택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이죠. “코람데오”의 삶이 시작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삶에서 다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으로 인해 구원받은 자로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다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잘 보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으니 우리의 안전은 보장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셨기에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택하셨고 그로 인해 구원이 보장되었기에 우리의 삶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나드는 일이 어느 정도 허용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회개하면 어차피 선택하셨으니 용서해주지 않을까 생각하시나요? 한번 택하심은 영원히 유효한 것입니까? 이것을 잘못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죄에 발목 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죄에 대해 죽은 자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선택 교리는 죄에 대한 핑계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룩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 택하셨다고 말씀하는 겁니다.
거룩하다, 흠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자, 즉 제사장의 상태이며 희생제물의 조건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죄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거룩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다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장은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가기 위해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희생제물의 피가 그의 죄를 씻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의 거룩함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분의 거룩한 광휘가 우리의 죄인 된 모습을 감싸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도인 것입니다. 성도가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된 것입니다.
흠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에 상처들입니다. 하나님 백성다움을 보존하지 못함으로써 생겨진 흔적들입니다. 막살아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서, 죄 가운데 있어서 생긴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안전한 손안에 거한다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따른다면 우리는 그 어떤 흠도 없을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흠없이 보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선택 교리는 죄를 조장하기는커녕 우리에게 죄를 금하고 거룩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합니다. 거룩은 바로 우리가 선택받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따라서 우리에게서 선택받았음을 나타내는 유일한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삶입니다. 우리 삶에 거룩함을 드러내어주시는 주님과의 동행입니다. 택하심의 목적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죠. 그러기에 우리의 거룩함은 반드시 드러나야 합니다. 거룩함은 그리스도인의 목적이요 전부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과연 거룩함이 가능한 일인가 생각합니다. 4절에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랑 안에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이 거룩한 단계까지 이르도록 하는 것인데, 이 목표를 위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가르치시고 사랑으로 이해하시고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참으시고 사랑으로 깨우치시고 사랑으로 알게 하신다는 거죠. 하나님은 갓난아이를 안고 무한 사랑으로 키워가는 엄마의 사랑으로 우리를 품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 안에서’ 라는 말은 우리의 삶에서도 적용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무엇이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분과의 동행을 위해 거룩함의 열정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제시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소망을 갖고 성도로서의 거룩함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요일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거룩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거룩한 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더욱 거룩한 산제물로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산 제물로 우리 자신을 드리기를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온전한 예배,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아갈 때 우리는 살아계신 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히 12: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우리가 살아계신 주를 볼 수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허무한 것입니다.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는 은혜를 상실한 것입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라 날마다 거룩하신 주를 보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해 우리는 모든 삶의 자리에서 거룩함으로 서야 합니다. 위선과 가식이라는 삶에 가면을 벗어버리고,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오직 거하십시오.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뜻이 거룩함의 열정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여러분의 삶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고 시원하게 해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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