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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

by 최수근 2013. 6. 2.

2013년6월2일 주일설교문

[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예수님을 따랐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목적과는 다른 목적들을 가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할 때 제자들은 이 땅의 나라에 대해서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좋은 자리를 차지할까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돈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300데나리온에 해당되는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부었을 때 참으로 아까워하며 여인을 야단쳤습니다. 그런 연유로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 영성이 저들에게 흘러가지 못했습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병 고치는 능력과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주셨지만 제자들에게 한 아버지가 귀신들린 아들을 데려왔을 때 제자들은 고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어느 한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깊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주신 선물을 누리지 못하고 그 어떤 감응도 없이, 능력도 없이 교회를 들락 달락 하고 있는 오늘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마침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오심을 통해 나약했던 제자들은 성령 충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성령 충만을 경험한 사도들과 제자들은 확연하게 달라졌습니다. 공동체의 모습도 변하였습니다. 사도행전242-47절을 통해 하나님은 이들의 변한 모습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르침과 성도의 교제와 떡을 뗌과 기도에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통해 제자들의 시각과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영적인 권세가 저들을 통해 다시금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3000명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을 수 있었고,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성령강림을 통해 하늘의 능력과 담대함으로 무장한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교회를 세워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났던 기적을 사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면서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오전9, 12, 오후3시에 걸쳐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제 구시는 오후3시에 해당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이 되면 유대인들은 가까운 회당이나 성전을 찾아갔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기도에 힘썼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제일 밖에는 이방인의 뜰이 있었고, 이 뜰과 안뜰 사이에는 장벽이 있는데, 거기에는 아홉 개의 출입문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문이라는 성전 문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가장 애용하는 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통행하다보니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한 거지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제를 공적을 쌓는 좋은 방법으로 여겼기에 그렇게 구걸하는 거지들에게 동전을 던져주었습니다.

2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길 한편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거지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여느 날과 같이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기 위해 성전 문 한쪽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보다 나은 조건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식탁으로부터 던져지는 부스러기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희망은 없었습니다. 성전으로 나아갔지만 이렇게 다른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갔고, 거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 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기를 소망하며 나온 이들과 앉은뱅이 거지처럼 인간적인 목적을 갖고 나온 이들 두 부류가 교회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베드로와 요한입니까?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거지입니까? 베드로와 요한 같은 이들은 지성소까지 나아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지만 앉은뱅이 거지와 같은 이들은 성전 문에만 머물러 사람들만 바라보다 갈 뿐입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거지가 마침 바라보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불쌍한 표정으로 구걸하였습니다. “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빵 한 덩어리 살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머리를 조아리며 두 사람을 향해 두 손을 모아 내 밀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베드로와 요한은 동전 몇 개 던져주고 거지를 지나쳤을 겁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경험한 지금은 그 옛날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구걸하는 거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를 보라!”대게 사람들이 동전 몇 개 던져주고 가지 거지에게 귀찮게 자신을 보라고 하진 않습니다. 매일 그 문을 지나 성전으로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은 다리를 못 쓰는 그 사람을 보고 분명 그러려니 했을 것입니다. 거지도 굳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 거지에게 우리를 보라는 요청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거 뭔가 굉장한 걸 내게 주려나 하는 생각에 거지는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하지만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말할 때 그 기대는 곧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순간 실망하는 거지의 귀를 다시금 솔깃하게 만드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그래도 동전 몇 개는 주겠지 생각하고 있던 거지에게 베드로가 힘 있게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에게 은과 금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받은 이후 이 땅의 것들은 그에게 별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그렇게 갖고 싶었던 것들이지만 성령의 오심을 통해 무엇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베드로는 은과 금, 보석보다도 귀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능력, 새로운 삶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비밀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것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그 보다 더 귀한 하늘의 것을 얻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소유한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베드로는 거지를 향해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그것은 그렇게 잘나고 기고만장했었던 예전에는 감히 외쳐보지 못했던 외침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다리를 못 쓰는 거지에게 고침을 받기 원하느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곧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권세를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단호하고 간결한 명령은 나면서부터 한 번도 일어서보지 못한 거지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거지에게 가장 절실한 소망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로 하여금 일어서라는 말은 그의 믿음을 요청하는 명령이었습니다. 순간 그는 망설임과 동시에 내가 일어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망설이며 주저앉아 있는 거지의 오른손을 붙잡고 힘을 주어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거지 또한 그 손을 꼭 잡고 그 힘에 의지해 일어서보았습니다.

회복

7절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절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말 작은 믿음이었을텐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순종했을 때, 평생 걷지 못해 말라버린 그의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겼습니다. 거지는 자기도 모르게 용수철처럼 뛰어올라 두 다리로 섰습니다. 평생 걸을 수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서 있는 자신을 신기해하며 걸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치료를 경험한 그는 그 즉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걸어보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벅찬 가슴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성전 문에 앉아 사람들에게 구걸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기막힌 인생을 탓하며 주저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거지는 자기가 요구하는 것 이상의 넘치는 은혜,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은혜, 진정한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거지는 그 날 살아갈 수 있는 돈을 구걸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누군가 그를 업어다 성전 문에 내려놓으면 기도하러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하루를 연명하던 의존적인 삶을 청산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는 자유를 하나님은 그에게 주셨습니다.

더욱이 성전 바깥에 앉아 있던 다리 못 쓰는 사람이 성전 안으로 걸어 들어가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서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이름이 회복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설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회복은 일시적인 회복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에게 선포될 때 그 이름의 권세로 하나님은 우리들 삶의 근본적인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주십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예배가 살아나게 됩니다.

증인

9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절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회복된 그는 즉시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치유 받은 많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영광 돌리지 않은 것을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서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쳤을 때 아홉 명은 자기 집으로 즉시 돌아갔고, 한 명만이 예수님께 나와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한명의 문둥병자처럼 이 거지는 단지 걷고 뛰며 치료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을 넘어 성전에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백성들은 예수님 생전에나 볼 수 있었던 기적으로 인해 심히 놀라워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심리적인 놀라움이 아니었습니다.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백성들에게 베드로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을 때 믿는 자가 남자의 수만 오천 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을 때, 우리 자신의 필요를 채워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채워졌을 때,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기 시작할 때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 안에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그 어떤 사람에게도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면서 우리는 그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제자들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가 고백했던 것처럼 은과 금은 우리에게 없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권세를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소유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세상을 살리라고명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로 사람들을 살리는 제자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날 겨우 필요한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애쓰는 성전 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 거지처럼 사시겠습니까? 그 차이는 우리가 성령에 이끌림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새로운 가치를 심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드러난 기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음을 결정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에 의지하여 예수님의 치유와 기적을 재연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이로 인해 예수님의 대행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었습니다.

불행한 크리스천이 어떤 이인지 아십니까? 은과 금도 없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도 없는 자들입니다. 더 불행한 크리스천은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없지만 은과 금을 믿고 큰소리치며 사는 이들입니다. 가장 행복한 크리스천은 은과 금은 없지만 모든 생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풍성하게 누리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름을 은과 금보다 더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는 주저앉아 있던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 능력으로 회복되어, 그 권세를 품고 세상으로 나아가 내 증인이 되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귀하게 여기게 하시고, 그 이름의 권세를 통해 먼저 우리들의 삶이 변화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받고 세상 가운데 나아가 세상을 이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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