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5월26일 주일설교문
[ 건강한 교회입니까? : 행2장42-47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50일간에 걸쳐 말씀과 기도로 예열된 시간 후에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강력한 성령의 임재 후에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선포하였습니다. 담대한 베드로의 선포 앞에서 3000명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50일 사이에 나약해보였던 제자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자그마한 교회에서 하루 사이에 중형교회로 커버렸습니다. 이 수치라면 수십만 명 교회로 발 돋음 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2장42절을 보면 숨 가쁘게 진행되던 오순절의 놀라운 역사가 마무리 된 이후 뭔가 임팩트가 있는 이벤트가 아닌 일상으로 돌아가서 이루어지는 교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생각에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나아가지 않고 있어 아쉬움이 드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여기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가 순간적인 열정, 간헐적인 폭발, 피상적인 것들로 물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부흥을 꿈꾸고 있습니다. 실은 교회는 부흥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부흥하는 것이 아니고 그 부흥과 열정을 구체화시켜 건강한 교회로 발돋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의 표지
누가는 초대교회의 튼튼한 기초가 어떻게 세워져 가는지 42절에서 복음이 사중으로 구체화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42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세워주신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복음의 실현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 성도의 교제, 성찬, 기도입니다. 이 네 가지는 건강한 교회의 요소로서 함께 갑니다. 서로 분리할 수 없고, 하나라도 빠뜨리면 다른 모든 것이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1. 사도의 가르침
초대교회 생활의 첫 번째 요소는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에 헌신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유다를 대신해야 할 자를 찾는 것이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을 목격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들었던 사도들은 성령임재를 통해 미완성이었던 복음의 퍼즐이 그들 속에서 완성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게 베드로의 설교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이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사도들의 메시지에 하나님의 권능이 실린 것입니다. 그 말씀의 진정성으로 말미암아 3000명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고, 사람들은 놀라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권세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43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그와 함께 사도들은 하루에 삼천 명으로 부흥한 교회의 성도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알려진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복음을 지속시키는 일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그들 속에 깊이 뿌리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자체는 교회가 내부적으로 복음의 내용과 적용을 깊이 생각하기 위한 지속적인 시도의 일부이고. 이 시도는 교회가 자체의 사명에 계속해서 충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결코 한 주간을 단위로 오순절 부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한순간의 감정적 폭발에서 또 다른 어떤 것으로 떠밀려 다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즉시 가르치는 과제를 찾아서 스스로 교회됨과 되어져야 할 교회의 위치를 똑바로 지켰던 것입니다. 아무리 성령 충만을 받고, 권능을 경험해도 가르침과 평생에 걸친 끊임없는 배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빠르게 주변 문화의 세계관이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우리의 내면을 끊임없이 복음으로 채우지 않는 한 우리 주변에 가장 설득력 있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요소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희미한 영향력이나 기억정도로만 남게 되거나 우리의 신앙은 화석화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전수된 사도의 가르침을 성경을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우리가 헌신할 때 우리 예수생명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우리도 건강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배우는 일은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평생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잘 운동하는 것처럼 평생 이루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말씀을 배움에 지겨워하는 순간 우리는 병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좀 더 임팩트한 프로그램에 신경 쓰기 시작하는 한 교회는 건강함을 잃어가게 될 것입니다.우리 죽는 그날까지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가르칩시다.
2. 성도의 교제
두 번째 초대교회 생활의 요소는 성도의 교제였습니다. 초대교회는 교제에 힘썼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그 가르침이 성도들의 삶에 녹아들어간 결과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이는 오순절의 진정한 기적이란 여기에서 보여진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의 교제는 단순히 어떤 온정을 가진, 인간애에서 비롯된 형제애나 자매애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 가족으로 살았습니다. 한 지붕 아래 한 가족으로 살면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집안은 콩가루 집안입니다.
44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절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가족의 의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서로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갑을 열어젖힌 교제였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다른 사람의 필요를 예민하게 느끼는 마음을 각각의 성도 안에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마음은 신성불가침처럼 여겨졌던 사유재산을 하나님께 바쳐 이웃을 사랑할 정도까지 활짝 열린 마음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초대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돈을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일을 그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돈을 순교시킬 줄 알아야 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주의 법이나 프롤레타리아 이념이나 군중심리, 집단정신으론 실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군중심리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여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이 일에 실패하고 맙니다. 이와 같은 헌신은 오직 성령에 강력하게 사로잡힐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와 함께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집에선 식탁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주일에 한번 만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매일같이 교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라고 한가했겠습니까? 오늘 우리와 상황이 달라 그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 옛날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신분의 구별은 식탁에서 가장 냉혹하게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함께 먹는다는 것은 연합과 일치와 깊은 우정의 표시이고, 사람들 사이에 쳐져있던 사회적 장벽이 무너졌다는 눈에 보이는 표시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초대교회와 똑같은 방법으로 예수생명교회도 성도의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이들이 이와 같은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는지 의미를 찾고, 지금 일반적인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교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성도의 교제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도의 교제를 등한시하면 우리들은 서로 고립되고 대게 살아있는 믿음을 지속하기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아무리 강력한 구원을 경험하고 강력한 간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신앙을 계속 지켜주고 영적 고도를 온전히 유지해주는 성령 충만한 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내 급격한 영적 경화와 냉담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에 친밀하게 접촉된 가지만이 결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생명교회 안에서 세상에서 누리지 못하는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힘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서로의 짐을 지어줄 수 있는 교제의 기쁨이 있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 할수록 내가 가진 물질, 사회적인 지위, 기득권을 강하게 부인하고 그것들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자유함이 더욱 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것이 두려워서 성령 충만을 거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성찬
세 번째 요소는 성도가 빵을 떼는 일, 즉 성찬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구원행위를 성찬식을 매주일 행하면서 지금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다시 경험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반복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떡을 뗄 때마다 주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심을 느끼면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그 안에서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매주일 행해졌던 떡을 떼는 일이 지금 한국교회 안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등한시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일 년에 두 번 정도 성찬식을 하고, 많아야 매월 한번 씩 하는 경우일 뿐입니다. 매주일 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성찬의 의미가 강력하게 성도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지 못하고, 단지 상징적인 행사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도로서 성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기치를 올리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의 예배가 말씀의 예전과 더불어 성찬예전이 이루어질 때 그 예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내년부터는 월1회는 성찬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4. 기도
네 번째 요소는 기도입니다. 초대교회는 기도에 힘썼습니다. 처음 제자들은 기도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성령강림을 통해 그들은 기도의 힘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늘 깨어 기도에 힘썼던 것입니다. 교회가 이 모든 일을 하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늘과 땅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늘의 능력이 아닌 이 땅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보고 교회라고 할 수 있고,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연결고리를 잃어버렸는데 말입니다. 기도는 교회와 성도를 받쳐주는 힘입니다.
물론 오랜 동안 기독교의 가정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교회에 가는 습관이 되어 버린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이 따분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없이는 교회는 교회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르침과 교제, 서로 나눔과 떡을 떼고 기도하는 일에 균형이 잘 잡힌 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성령의 바른 구체화의 표와 오늘의 교회 활동을 측정하기 위한 표준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도들의 열정이 어디에 소모되고 있습니까? 복음의 본질적인 부르심이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활동이 복음을 대치하고, 온정에서 나온 분주한 활동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는 공동체에 대용으로 제안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는 세상을 향한 쇼가 아니라 우리가 하늘의 사람들임을 보여줄 수 있는 분명한 복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교회가 될 때 교회는 이 땅에서 교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고, 그 다음 단계로 교회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의 확장
교회가 세상의 상식을 깨고 자리매김해 갈 때 세상의 반응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복음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와 같은 삶은 모든 백성들에게 칭찬을 들으며 구원받는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오게 했고, 사마리아로, 이방으로 마침내는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온 백성의 칭송과 교인의 증가는 결국 성도의 변화된 삶의 열매입니다. 매력이란 사람의 이목을 끄는 힘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이런 매력이 있을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실망하여 교회가 나아가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기독교인이라고 여기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신을 우리는 초대교회의 네 가지 요소가 명확하게 이루어짐을 통해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약했던 12명의 제자들, 마가의 다락방 120명의 기도의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작은 불꽃은 성령의 임재라는 놀라는 경험을 통해 세상 공동체와는 다른 혁신적인 공동체를 이루었고, 이들이 실천하며 살았던 신앙의 원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였습니다.
사도행전2장42-47절은 아주 미미한 출발을 보였던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의 경계를 넘어 세계인의 복음이 될 수 있었던 내적 요인을 조명해주고 있습니다. 가르침과 떡을 떼는 일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수직적인 관계가 정립될 수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세상의 상식을 뛰어넘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 수평적인 관계를 바르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균형 잡힌 건강한 영적인 힘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이 힘이 자리 잡고 우리를 통해서 그 힘이 다른 이들에게로, 다른 믿음의 세대에게로 흘러갈 수 있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교회로 이 땅을 변화시키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다시 읽고 우리 교회 안에서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지 않는 일을 간구해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구원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안에 성령충만함으로 인한 아름다룬 결실들이 있기 원합니다. 성도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 안에서 변화되어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늘의 가치로 서게 하시고,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을 무장하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게 하시고,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삶과 기도의 삶을 통하여 믿음의 건강함을 이루어갈 수 있게 하옵소서. 이렇게 건강한 교인, 건강한 교회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수교회를 세워가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앞장서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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